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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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114 – 117
로마 vs 파르티아

아르메니아 왕위를 두고 다투다 전면전이 됐다. 트라야누스는 인도로 가는 교역로까지 노렸다.

크테시폰 함락 116

결과로마 최대 판도를 만들었으나 후방이 잇따라 봉기했다. 후임 하드리아누스가 곧바로 유프라테스까지 물러났다 — 확장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3년 · 로마 최대 판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트라야누스정치110 · 로마를 가장 크게 만든 황제
AD 53 – AD 117

속주 히스파니아 출신의 첫 황제. 다키아의 금으로 로마를 다시 짓고 동방으로 진군했다.

  • 다키아 정복 — 오늘날 루마니아
  • 제국 최대 판도 달성
  • 빈민 아동 부양 제도 알리멘타
하드리아누스정치122 · 장벽을 쌓고 제국을 순행한 황제
76 – 138, 재위 117 – 138

확장을 멈추고 지키기로 한 황제.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세우고, 재위 절반을 속주를 돌며 보냈으며, 판테온을 다시 지었다.

  • 하드리아누스 장벽(122)
  • 제국 전역 순행과 속주 정비
  • 판테온 재건, 바르 코크바 반란 진압
카니슈카정치130 · 불교를 실크로드에 실은 왕
AD 127 – AD 150 재위

쿠샨 제국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인도·중앙아시아·중국을 잇는 교역로를 쥐고 그 길로 불교를 북쪽에 퍼뜨렸다.

  • 간다라 미술 — 그리스식 얼굴의 불상
  • 제4차 불경 결집 후원
  • 불교가 중국에 들어가는 통로를 엶
장형과학132 · 후한의 천문학자
78 – 139

최초의 지진계를 만들다

  • 지동의 발명 132
  • 혼천의 개량
  • 원주율을 정밀 계산

그 무렵의 사건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100
악숨
홍해를 쥔 아프리카의 제국.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홍해로 나가는 길목에 섰다. 자기 동전을 찍은 아프리카 최초의 나라 축에 든다. 통돌을 깎아 세운 오벨리스크가 가장 큰 것은 33미터였다. 이슬람이 홍해를 쥐면서 고원 안쪽으로 물러났다.
100
모체와 나스카
얼굴을 그대로 빚은 토기, 하늘에서만 보이는 그림.
북쪽의 모체는 사람 얼굴을 사진처럼 빚었고 금세공이 정교했다. 남쪽의 나스카는 사막 바닥의 돌을 걷어 내 수백 미터짜리 선을 그렸다. 두 문화 모두 긴 가뭄과 엘니뇨에 시달리다 흩어졌다.
100
옥에오와 푸난
메콩 삼각주에서 로마 금화가 나왔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큰 나라로 꼽히는 푸난의 항구다. 인도 상인과 중국 사신이 드나들었고, 발굴에서 로마 안토니누스 시대의 금화와 인도 보석과 중국 거울이 함께 나왔다. 운하를 파서 배를 안쪽까지 들였다.
100
호프웰의 길
대륙을 가로지르는 물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하이오의 무덤에서 로키산맥 흑요석, 오대호 구리, 멕시코만 상어 이빨, 애팔래치아 운모가 함께 나온다. 나라도 도시도 없었지만 북아메리카 절반을 잇는 교환망이 있었다. 종교 의례가 그 길을 움직였다고 본다.
80
콜로세움 완공
5만 명을 수용한 로마의 원형경기장이 열렸다. 개막 축제 100일 동안 맹수 9천 마리가 죽었다.
네로의 황금 궁전 연못 자리에 베스파시아누스가 짓기 시작해 아들 티투스가 완성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 처형이 무료로 열렸고 황제가 민심을 얻는 장치였다. 지하에는 승강기와 통로가 있었다. 5세기까지 쓰이다 지진과 채석으로 허물어졌고, 중세엔 성당 건축의 돌 창고였다. 「콜로세움이 서 있는 한 로마도 선다」는 말이 전한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원정

전쟁 · 114 · 제국이 가장 컸던 순간

아르메니아 왕위를 두고 다투다 전면전이 됐다. 트라야누스는 인도로 가는 교역로까지 노렸다. 로마 최대 판도를 만들었으나 후방이 잇따라 봉기했다. 후임 하드리아누스가 곧바로 유프라테스까지 물러났다 — 확장의 한계를 인정한 것이다.

【그때 그 자리】 AD 114년이다. 트라야누스는 이미 다키아(지금의 루마니아)를 정복해 금광을 얻었다.

동쪽에는 파르티아가 있었다. 로마와 200년 가까이 대치한 상대다.

BC 53년 크라수스가 카레에서 참패해 군기를 잃은 이래, 로마에게 파르티아는 갚지 못한 빚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명분은 아르메니아였다. 두 제국 사이의 완충 왕국인데, 파르티아 왕이 로마와 상의 없이 자기 조카를 왕으로 앉혔다.

실제 동기는 여럿으로 본다. 예순 넘은 황제의 마지막 원정이라는 점, 인도로 가는 교역로를 쥐려 했다는 점, 알렉산드로스를 의식했다는 점이 거론된다.

【어떻게 흘렀나】 아르메니아를 속주로 삼았다. 이어 메소포타미아로 내려갔다.

116년 파르티아의 수도 크테시폰을 함락했다. 로마 황제가 그곳에 들어간 첫 사례다.

더 내려가 페르시아만에 닿았다. 배를 보고 인도로 가는 상선이라는 말을 듣자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내가 젊었다면 인도까지 건너갔을 텐데.」

이때가 로마 제국의 최대 판도다. 500만 ㎢가 넘었다.

【그래서】 곧 무너졌다. 뒤쪽에서 반란이 터졌다.

메소포타미아 전역이 들고일어났고, 동시에 키레네·이집트·키프로스에서 유대인 봉기(키토스 전쟁)가 났다. 도시가 통째로 파괴됐고 양쪽에서 수십만이 죽었다.

트라야누스가 하트라를 포위하다 실패했다. 더위와 물 부족으로 물러났다.

117년 돌아오는 길에 병으로 죽었다.

【남은 것】 후계자 하드리아누스가 즉위하자마자 메소포타미아를 전부 포기했다. 국경을 유프라테스로 되돌렸다.

정복보다 유지가 중요하다는 판단이었다. 그가 브리타니아에 장벽을 쌓은 것도 같은 생각이다.

로마 원로원이 새 황제를 맞을 때 「아우구스투스보다 운이 좋고 트라야누스보다 훌륭하기를」이라 외쳤다. 그가 좋은 황제의 기준이 된 것이다.

로마에 트라야누스 원주(圓柱)가 서 있다. 높이 30m에 다키아 전쟁이 나선으로 새겨져 있다 — 2,60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가장 넓었던 순간이 곧 물러서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다키아 전쟁 바르 코크바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