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미국 단극 체제가 흔들리고 중국이 부상했다. 아랍의 봄이 내전으로 번지고, 팬데믹이 국경을 닫았으며, 유럽 한복판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얻었다. 외환위기를 겪고 세계 경제에 깊이 편입됐다.
왜1948년 정치 지도자 암살을 계기로 벌어진 '라 비올렌시아'(약 20만 명 희생)의 혼란 속에서 농민들이 자위 무장조직을 결성했는데, 이 중 일부가 이후 공산주의 게릴라 FARC로 발전했다.
결과게릴라가 마약 밀매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전쟁은 이념 대립을 넘어 마약 전쟁의 성격까지 띠게 됐고, 이에 맞서 지주와 마약상들이 만든 우익 민병대까지 가세하며 반세기 넘게 여러 세력이 뒤엉킨 저강도 전쟁이 이어졌다.
왜다수 신할라족과 소수 타밀족 사이의 오랜 차별 문제가 폭력 사태로 번지며, 타밀족 분리독립을 내건 무장단체 LTTE와의 내전이 시작됐다.
결과LTTE는 자살폭탄 테러를 널리 활용한 초기 무장단체 중 하나로도 알려져 있으며, 전쟁은 26년간 이어지며 수만 명의 민간인 희생을 낳았다.
왜1991년 독재자 시아드 바레가 축출된 뒤 후계 권력을 놓고 여러 씨족 기반 군벌이 난립하며, 소말리아는 사실상 중앙정부가 없는 붕괴 상태에 빠졌다.
결과1993년 미군이 주도한 유엔 평화유지 작전이 모가디슈에서 현지 민병대의 강한 저항에 부딪혀 헬기 두 대가 격추되고 미군 18명이 전사하는 '블랙호크 다운' 사건이 벌어지자,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급속히 개입에서 발을 뺐다. 이후로도 군벌 난립이 계속되다 2000년대 들어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알샤바브가 세력을 넓혔다.
왜소련 해체 때 체첸이 독립을 선언하자 옐친이 무력 진압에 나섰고, 푸틴이 두 번째 전쟁으로 완전히 평정했다.
결과그로즈니는 두 번 완전히 파괴됐다. 수만 명이 죽었고 모스크바 극장·베슬란 학교 인질극 같은 테러가 이어졌다. 친러 카디로프 가문이 체첸을 다스리며 명목상 끝났다.
왜9·11 테러 뒤 미국이 빈 라덴을 숨겨 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 침공했다.
결과정권은 두 달 만에 무너졌으나 탈레반은 파키스탄 국경에서 되살아났다. 20년, 2조 달러, 미군 2,400명과 아프간인 수십만이 죽은 뒤 미국이 떠나자 열흘 만에 탈레반이 돌아왔다.
왜장기 집권한 초대 대통령 사망 이후 후계 다툼과 이민자 출신 국민 자격을 둘러싼 남북 간 갈등이 겹치며 나라가 사실상 남북으로 분단됐다.
결과2010년 대선에서 패배한 현직 대통령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물러나기를 거부하면서 다시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결국 프랑스군과 유엔군의 개입으로 그가 체포되며 끝났다.
왜친서방 노선을 걷던 조지아가 러시아계 분리 지역인 남오세티야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려 하자, 러시아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대규모 군사 개입에 나섰다.
결과닷새간의 짧은 전쟁으로 러시아군은 조지아 영토 깊숙이 진격한 뒤 철수했지만,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에 대한 실질적 지배력은 이후에도 유지했다. 이는 옛 소련권에서 러시아가 무력 개입도 불사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로, 이후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병합의 예고편으로도 자주 언급된다.
왜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시위를 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종파와 외세가 얽히며 여러 겹의 전쟁이 됐다.
결과13년 만에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인구 절반이 집을 잃었다.
왜튀니지·이집트의 아랍의 봄이 리비아로 번졌다. 카다피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자 반군이 조직됐고, 유엔 안보리 결의로 나토가 공습에 나섰다.
결과42년 집권한 카다피가 8월 트리폴리 함락 뒤 도주했다가 10월 고향 시르테에서 붙잡혀 살해됐다.
왜친러 대통령이 시위로 물러나자 러시아가 표식 없는 병력을 투입했다.
결과총성 거의 없이 반도를 병합했다. 8년 뒤 전면전의 예고편이었다.
부패와의 전쟁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임기 제한을 없앴다. 일대일로와 미국과의 대결 속에 「중국몽」을 말한다.
「담대한 희망」으로 당선됐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건강보험을 개혁했으며 빈 라덴을 사살하고 이란·쿠바와 손을 잡았다.
KGB 출신으로 1999년 권력을 넘겨받았다. 체첸을 짓밟고 올리가르히를 길들였으며 크림을 병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고 쫓겨났다 돌아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세계를 바꿨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고 했다.
동독 출신 물리학자가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유로 위기와 난민 100만 명을 감당하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27세에 권력을 이어받아 고모부와 형을 제거했다. 핵·미사일을 완성했다며 트럼프와 세 차례 만났으나 비핵화는 없었다.
고졸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됐다. 탄핵을 이겨냈고 권위주의를 걷어냈으며, 퇴임 뒤 수사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납치와 사형 선고를 넘긴 야당 지도자가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다. IMF 위기를 넘기고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군 쿠데타 실패로 투옥됐다가 선거로 대통령에 올라, 막대한 석유 수익을 빈곤층 지원에 쏟아부으며 저소득층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언론·사법부 장악과 반대파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군을 이끌고 라이베리아 내전을 촉발한 뒤 1997년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이웃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반군을 지원하고 다이아몬드 밀매에 관여한 혐의로, 퇴임 후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전직 아프리카 국가원수가 됐다.
인종분리 정책에 맞서다 종신형을 받고 27년을 갇혔다. 나와서 복수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세웠다. 가해자가 사실을 말하면 사면하는 방식이었다.
1994년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래 30년 넘게 집권하며 소련식 국가 통제 경제와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왔다. 2020년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자국 영토를 병참 거점으로 제공했다.
아버지에게 권력을 물려받은 첫 공산 세습자. 대기근 속에 선군정치를 폈고 핵실험으로 세계와 맞섰다.
게릴라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오슬로 협정으로 자치정부를 세웠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고 라말라 관저에 갇힌 채 죽었다.
최연소 의원에서 40년 야당 투사로 살았다.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시행했으며, 임기 말 외환위기를 맞았다.
개혁과 개방을 밀어붙였고, 그 끝에서 소련이 해체됐다.
소련 해체로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15년간 극단적인 개인숭배 체제를 구축했다. 스스로에게 '모든 투르크멘의 지도자'라는 뜻의 '투르크멘바시' 칭호를 붙이고,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달(月)·황금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웠다.
1991년 8월 탱크 위에서 연설해 보수파 쿠데타를 무너뜨렸고 넉 달 뒤 소련을 해체했다. 충격요법과 혼란, 그리고 푸틴에게의 승계로 끝났다.
CERN의 물리학자들이 문서를 나누게 하려고 HTML·HTTP·URL을 만들었다. 특허를 내지 않아 웹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됐다.
이란과 8년을 싸우고 쿠웨이트를 삼켰다가 미국에 쫓겨났다. 2003년 침공 뒤 땅굴에서 붙잡혀 교수형을 받았다.
쿠데타로 처형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로, 1988년 이슬람권 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부패 혐의로 두 차례 실각과 망명을 겪었으나 2007년 귀국해 재기를 노리던 중 선거 유세 도중 암살됐다.
12·12의 동지였으나 직선제를 받아들여 당선됐다.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소련·중국과 수교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를 맺었다.
「악의 제국」이라 부르며 군비를 늘리다 고르바초프와 핵을 줄였다. 감세와 규제 완화로 미국 보수의 상징이 됐다.
해당 없음
전쟁 · 2011 · 봄이 겨울이 되기까지
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시위를 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종파와 외세가 얽히며 여러 겹의 전쟁이 됐다. 13년 만에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인구 절반이 집을 잃었다.
【그때 그 자리】 2011년 3월이다. 남부 도시 다라에서 10대 소년 몇 명이 벽에 낙서를 했다.
「이제 네 차례다, 의사 선생」이라는 내용이었다. 안과 의사 출신인 대통령 바샤르 알아사드를 가리켰다.
그해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정권이 무너진 뒤였다. 「아랍의 봄」이다.
아이들이 붙잡혀 고문당했다. 가족들이 항의하러 모였고, 보안군이 발포했다.
【왜 그렇게 됐나】 배경이 쌓여 있었다.
아사드 부자가 41년을 다스렸다. 비상사태법이 1963년부터 이어져 있었다.
알라위파가 소수인데 권력을 쥐고 있었다. 인구의 다수는 수니파다.
2006년부터 4년간 극심한 가뭄이 있었다. 농민 150만 명이 도시로 밀려들었다.
청년 실업이 높았고 부패가 심했다.
【어떻게 흘렀나】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고 진압이 강해졌다.
군에서 이탈한 병사들이 자유시리아군을 만들었다. 무장 충돌이 됐다.
그리고 여러 세력이 들어왔다.
이란과 헤즈볼라가 정권을 도왔다. 2015년 러시아가 공습에 나섰다.
걸프 국가들과 터키가 반군 일부를 지원했다. 미국도 일부를 지원했다.
2014년 IS가 나타나 시리아와 이라크에 걸친 지역을 장악했다. 미국 주도 연합이 공습에 나섰다.
쿠르드 세력이 북동부를 장악했다. 터키가 그것을 자국 안보 위협으로 보고 개입했다.
한 나라 안에서 여러 나라가 서로 다른 편을 들고 싸우는 구조가 됐다.
2013년 구타에서 화학 무기가 쓰였다. 수백 명이 죽었다.
알레포가 4년 넘게 포위됐다. 도시가 폐허가 됐다.
「배럴 폭탄」이 쓰였다. 드럼통에 폭약과 쇳조각을 채워 헬기에서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자가 5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인구 2,200만 가운데 1,300만 명이 집을 잃었다. 국외 난민이 600만 명이 넘는다.
그 흐름이 2015년 유럽 난민 위기로 이어졌다. 유럽 정치가 그 뒤로 크게 흔들렸다.
2024년 12월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고 그가 러시아로 망명했다.
【남은 것】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쟁을 무엇이라 부를지부터 갈린다. 「혁명」이라는 쪽과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쪽이 있다.
확인된 것은 이렇다. 평화 시위로 시작했고, 무장 충돌이 됐으며, 여러 외부 세력이 들어와 길어졌고, 민간인이 가장 많이 죽었다.
「화이트 헬멧」이라 불린 민방위대가 잔해에서 사람을 파냈다. 그들도 공격 대상이 됐다.
팔미라의 고대 유적이 IS에게 파괴됐다. 그것을 지키던 여든두 살의 고고학자 칼레드 알아사드가 살해됐다.
무너진 도시를 다시 세우는 데 몇 세대가 걸릴 것이라는 추정이 나온다.
지도에서 보기: 201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리비아 내전(2011) 러시아-조지아 전쟁 크림 병합 예멘 내전 이라크 전쟁 코트디부아르 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