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미국 단극 체제가 흔들리고 중국이 부상했다. 아랍의 봄이 내전으로 번지고, 팬데믹이 국경을 닫았으며, 유럽 한복판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얻었다. 외환위기를 겪고 세계 경제에 깊이 편입됐다.
왜1948년 정치 지도자 암살을 계기로 벌어진 '라 비올렌시아'(약 20만 명 희생)의 혼란 속에서 농민들이 자위 무장조직을 결성했는데, 이 중 일부가 이후 공산주의 게릴라 FARC로 발전했다.
결과게릴라가 마약 밀매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전쟁은 이념 대립을 넘어 마약 전쟁의 성격까지 띠게 됐고, 이에 맞서 지주와 마약상들이 만든 우익 민병대까지 가세하며 반세기 넘게 여러 세력이 뒤엉킨 저강도 전쟁이 이어졌다.
왜9·11 테러 뒤 미국이 빈 라덴을 숨겨 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 침공했다.
결과정권은 두 달 만에 무너졌으나 탈레반은 파키스탄 국경에서 되살아났다. 20년, 2조 달러, 미군 2,400명과 아프간인 수십만이 죽은 뒤 미국이 떠나자 열흘 만에 탈레반이 돌아왔다.
왜장기 집권한 초대 대통령 사망 이후 후계 다툼과 이민자 출신 국민 자격을 둘러싼 남북 간 갈등이 겹치며 나라가 사실상 남북으로 분단됐다.
결과2010년 대선에서 패배한 현직 대통령이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물러나기를 거부하면서 다시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결국 프랑스군과 유엔군의 개입으로 그가 체포되며 끝났다.
왜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시위를 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종파와 외세가 얽히며 여러 겹의 전쟁이 됐다.
결과13년 만에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인구 절반이 집을 잃었다.
왜튀니지·이집트의 아랍의 봄이 리비아로 번졌다. 카다피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자 반군이 조직됐고, 유엔 안보리 결의로 나토가 공습에 나섰다.
결과42년 집권한 카다피가 8월 트리폴리 함락 뒤 도주했다가 10월 고향 시르테에서 붙잡혀 살해됐다.
왜친러 대통령이 시위로 물러나자 러시아가 표식 없는 병력을 투입했다.
결과총성 거의 없이 반도를 병합했다. 8년 뒤 전면전의 예고편이었다.
왜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던 예멘에서, 북부를 기반으로 한 시아파 계열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하며 내전이 본격화됐다.
결과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과, 후티를 지원하는 이란이 서로 대리전을 벌이는 양상을 띠며 장기화됐다. 봉쇄와 공습이 겹치며 유엔은 이를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규정했고, 수십만 명이 전투와 기근·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KGB 출신으로 1999년 권력을 넘겨받았다. 체첸을 짓밟고 올리가르히를 길들였으며 크림을 병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부패와의 전쟁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임기 제한을 없앴다. 일대일로와 미국과의 대결 속에 「중국몽」을 말한다.
동독 출신 물리학자가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유로 위기와 난민 100만 명을 감당하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27세에 권력을 이어받아 고모부와 형을 제거했다. 핵·미사일을 완성했다며 트럼프와 세 차례 만났으나 비핵화는 없었다.
「담대한 희망」으로 당선됐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건강보험을 개혁했으며 빈 라덴을 사살하고 이란·쿠바와 손을 잡았다.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고 쫓겨났다 돌아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세계를 바꿨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고 했다.
고졸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됐다. 탄핵을 이겨냈고 권위주의를 걷어냈으며, 퇴임 뒤 수사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납치와 사형 선고를 넘긴 야당 지도자가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다. IMF 위기를 넘기고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군 쿠데타 실패로 투옥됐다가 선거로 대통령에 올라, 막대한 석유 수익을 빈곤층 지원에 쏟아부으며 저소득층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언론·사법부 장악과 반대파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군을 이끌고 라이베리아 내전을 촉발한 뒤 1997년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이웃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반군을 지원하고 다이아몬드 밀매에 관여한 혐의로, 퇴임 후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전직 아프리카 국가원수가 됐다.
인종분리 정책에 맞서다 종신형을 받고 27년을 갇혔다. 나와서 복수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세웠다. 가해자가 사실을 말하면 사면하는 방식이었다.
1994년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래 30년 넘게 집권하며 소련식 국가 통제 경제와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왔다. 2020년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자국 영토를 병참 거점으로 제공했다.
아버지에게 권력을 물려받은 첫 공산 세습자. 대기근 속에 선군정치를 폈고 핵실험으로 세계와 맞섰다.
게릴라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오슬로 협정으로 자치정부를 세웠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고 라말라 관저에 갇힌 채 죽었다.
최연소 의원에서 40년 야당 투사로 살았다.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시행했으며, 임기 말 외환위기를 맞았다.
개혁과 개방을 밀어붙였고, 그 끝에서 소련이 해체됐다.
소련 해체로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15년간 극단적인 개인숭배 체제를 구축했다. 스스로에게 '모든 투르크멘의 지도자'라는 뜻의 '투르크멘바시' 칭호를 붙이고,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달(月)·황금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웠다.
1991년 8월 탱크 위에서 연설해 보수파 쿠데타를 무너뜨렸고 넉 달 뒤 소련을 해체했다. 충격요법과 혼란, 그리고 푸틴에게의 승계로 끝났다.
CERN의 물리학자들이 문서를 나누게 하려고 HTML·HTTP·URL을 만들었다. 특허를 내지 않아 웹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됐다.
이란과 8년을 싸우고 쿠웨이트를 삼켰다가 미국에 쫓겨났다. 2003년 침공 뒤 땅굴에서 붙잡혀 교수형을 받았다.
쿠데타로 처형된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로, 1988년 이슬람권 국가 최초의 여성 총리가 됐다. 부패 혐의로 두 차례 실각과 망명을 겪었으나 2007년 귀국해 재기를 노리던 중 선거 유세 도중 암살됐다.
12·12의 동지였으나 직선제를 받아들여 당선됐다. 서울올림픽을 치르고 소련·중국과 수교했으며 남북기본합의서를 맺었다.
해당 없음
전쟁 · 2014 · 표식 없는 군인들
친러 대통령이 시위로 물러나자 러시아가 표식 없는 병력을 투입했다. 총성 거의 없이 반도를 병합했다. 8년 뒤 전면전의 예고편이었다.
【그때 그 자리】 2014년 2월이다. 우크라이나에서 유로마이단 시위로 대통령 야누코비치가 축출됐다.
발단은 2013년 11월 그가 유럽연합과의 협정 서명을 갑자기 중단한 것이었다. 러시아 쪽의 압력이 있었다.
석 달 시위 끝에 100명 넘게 죽었다.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로 달아났다.
【왜 그렇게 됐나】 크림반도는 사정이 복잡했다.
1783년 러시아 제국에 병합됐다. 1954년 흐루쇼프가 우크라이나 소비에트공화국으로 이관했다 — 같은 소련 안이라 당시에는 행정 조치였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며 우크라이나 영토가 됐다.
인구의 다수가 러시아계였다.
그리고 세바스토폴에 러시아 흑해함대 기지가 있었다. 임차 협정으로 쓰고 있었다.
부동항이다. 러시아에게 전략적 가치가 컸다.
【어떻게 흘렀나】 2월 27일 표식 없는 군복의 무장 병력이 크림 의회와 공항을 장악했다.
「초록 사람들」이라 불렸다. 러시아는 처음에 자국군이 아니라고 했다.
몇 주 뒤 푸틴이 러시아군이었다고 인정했다.
3월 16일 주민투표가 실시됐다. 러시아 편입 찬성 96%로 발표됐다.
그 투표를 두고 갈린다. 러시아는 주민의 자결권 행사라 했다.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무효라 했다. 무장 병력이 배치된 상태였고, 우크라이나 헌법상 영토 변경은 전국 투표를 거쳐야 하며, 국제 참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3월 18일 러시아가 병합 조약에 서명했다.
유엔 총회가 결의로 병합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찬성 100, 반대 11, 기권 58이었다.
【그래서】 곧 동부에서도 무장 세력이 나타났다.
도네츠크와 루한스크에서 「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8년 동안 저강도 전쟁이 이어졌다.
그 사이 1만 4천 명이 죽었다.
2014년 7월 말레이시아 항공 MH17편이 격추돼 298명이 죽었다. 네덜란드 조사단이 러시아제 미사일로 결론 냈다.
민스크 협정이 두 번 맺어졌으나 지켜지지 않았다.
【남은 것】 크림 타타르인의 문제가 있다.
그 반도의 원주민이다. 1944년 스탈린이 전원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절반 가까이가 이동 중에 죽었다는 추정이 있다.
1980년대 말부터 돌아오기 시작했다. 2014년 병합에 반대했고, 그 뒤 대표 기구가 금지됐다.
1994년 부다페스트 각서가 자주 인용된다.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가로 미국·영국·러시아가 영토 보전을 보장한 문서다.
핵을 포기한 나라가 어떻게 됐는가 하는 물음이 그 뒤 비확산 논의에 계속 따라붙는다.
2022년의 전면 침공이 여기서 8년 뒤다.
지도에서 보기: 201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예멘 내전 시리아 내전 리비아 내전(2011) 러시아-조지아 전쟁 티그라이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