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코만니 전쟁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원수정과 로마 평화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의 외피를 남긴 채 1인 지배를 세웠다.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고 속주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1건

마르코만니 전쟁166 – 180
로마 vs 게르만·사르마티아 부족

동방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긴 역병으로 국경 수비가 얇아지자, 다뉴브 너머 부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카르눈툼 방어 171다뉴브 도하 174

결과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선 막사에서 「명상록」을 썼다. 이 전쟁 이후 게르만족의 압력은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14년 · 게르만 압력의 시작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사상170 · 막사에서 일기를 쓴 황제
AD 121 – AD 180

재위 내내 전쟁과 역병에 시달렸다. 다뉴브 전선의 천막에서 자기에게 하는 말을 그리스어로 적었다.

  • 「명상록」 — 남에게 보이려 쓴 글이 아니다
  • 마르코만니 전쟁을 직접 지휘
  • 오현제의 마지막 — 아들에게 물려준 것이 실책
프톨레마이오스과학150 · 천문학자·지리학자
AD 100 무렵 – AD 170 무렵

1400년을 지배한 우주 모형

  • 알마게스트 저술
  • 주전원으로 행성 역행을 설명
  • 코페르니쿠스 이전까지의 정설

그 무렵의 사건

165
안토니누스 역병
제국 인구의 10분의 1이 사라졌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겼다. 천연두로 추정되며 15년간 500만 명이 죽었다. 군대와 세수가 함께 줄면서 3세기 위기의 바탕이 됐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105
채륜과 종이의 발명
105년, 후한의 환관 채륜이 나무껍질·삼베·헌 어망 등을 이용한 종이 제조법을 황제에게 보고했다. 이는 이후 인류의 지식 전파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은 발명이었다.
종이가 발명되기 전에는 대나무 조각이나 비단에 글을 썼는데, 대나무는 무겁고 비단은 지나치게 비쌌다. 채륜이 정리한 제조법은 값싼 재료로 가볍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종이를 만들 수 있게 했다. 이 기술은 처음엔 중국 안에서만 비밀리에 전해지다, 8세기 무렵 이슬람 세계로 전파되고(전설에 따르면 탈라스 전투 포로를 통해),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며 점차 전 세계로 퍼졌다. 값싼 종이의 보급은 훗날 인쇄술의 발전과 맞물려 지식이 더 널리, 더 빠르게 퍼지는 밑바탕이 됐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마르코만니 전쟁

전쟁 · 166 · 철학자 황제가 국경에서 보낸 14년

동방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긴 역병으로 국경 수비가 얇아지자, 다뉴브 너머 부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전선 막사에서 「명상록」을 썼다. 이 전쟁 이후 게르만족의 압력은 다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 그 자리】 AD 166년이다. 오현제 시대의 마지막,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때다.

겉으로는 로마의 전성기였다. 그런데 두 가지가 겹쳤다.

하나는 역병이다. 동방 원정에서 돌아온 군대가 옮겨 왔다. 「안토니누스 역병」이라 부른다 — 천연두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제국 인구의 10~25%가 죽었다는 추정이 있다. 군대가 특히 심하게 당했다.

다른 하나는 국경 압력이다. 더 동쪽에서 밀려온 부족들이 게르만 부족들을 도나우강 쪽으로 밀었다.

【왜 그렇게 됐나】 마르코만니족과 콰디족이 강을 건넜다.

여러 부족이 함께였다. 규모가 이전과 달랐다.

이탈리아까지 들어왔다. 아퀼레이아를 포위했다 — 게르만족이 이탈리아 땅을 밟은 것이 260년 만이었다.

로마가 놀랐다. 병력이 모자라 검투사와 노예와 산적까지 징집했다.

황제가 경매를 열어 황실 재산을 팔아 군비를 마련했다.

【어떻게 흘렀나】 14년을 끌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대부분의 시간을 도나우 국경의 진영에서 보냈다. 로마에 거의 있지 못했다.

그 진영에서 그리스어로 일기를 썼다. 남에게 보이려 쓴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쓴 글이다.

그것이 「명상록」이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 이렇게 생각하라 — 나는 사람의 일을 하러 일어난다.」

「우주의 본성이 짜 놓은 것을 사랑하라. 네게 일어난 일은 네게 맞춰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다.」

전쟁과 역병 한가운데서 쓴 글이라는 점이 오래 인용된다.

AD 175년 동방에서 아비디우스 카시우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가 죽었다는 잘못된 소문 때문이었다.

황제가 진압하러 가는 길에 그가 부하에게 살해됐다. 마르쿠스가 「용서할 기회를 빼앗겼다」며 아쉬워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거의 이겼다. 다뉴브 너머에 새 속주를 만들 참이었다.

AD 180년 빈도보나(지금의 빈)에서 병으로 죽었다.

아들 콤모두스가 즉위하자마자 부족들과 화약을 맺고 돌아왔다. 정복 계획을 접었다.

【남은 것】 이 전쟁을 로마사의 분기점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밖에서 밀려오는 압력이 이때부터 상시화됐다. 그 뒤 국경은 계속 위협받는다.

역병으로 줄어든 인구를 채우려 게르만족을 제국 안에 정착시키기 시작했다. 뒤에 큰 변화의 씨앗이 된다.

콤모두스가 검투사 놀이에 빠져 12년 만에 암살됐다. 오현제 시대가 끝나고 혼란이 온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의 첫 장면이 이 전쟁이다.

「명상록」은 그 뒤 1,000년 넘게 잊혔다가 되살아났다. 지금 가장 널리 읽히는 고대 철학서 가운데 하나다.

지도에서 보기: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황건적의 난 바르 코크바 반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