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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왜카이사르에게는 정치 자금과 군사적 명성이 절실했다. 헬베티족의 이동과 게르만의 압박을 명분 삼아 갈리아 전역으로 전선을 넓혔다.
결과알레시아에서 베르킨게토릭스가 항복했다. 카이사르는 이 군대로 로마를 차지한다.
지중해 해적을 석 달 만에 소탕하고 동방을 정복했으나, 삼두정치가 깨진 뒤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졌다.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하고 안토니우스를 탄핵했다. 그의 라틴어 문장은 유럽 산문의 교과서가 됐다.
갈리아를 정복한 군대로 로마를 차지했다. 공화정을 끝냈고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300년의 마지막 통치자. 로마의 힘을 빌려 왕국을 지키려 했으나 악티움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BC 58 · 8년, 그리고 그 기록
카이사르에게는 정치 자금과 군사적 명성이 절실했다. 헬베티족의 이동과 게르만의 압박을 명분 삼아 갈리아 전역으로 전선을 넓혔다. 알레시아에서 베르킨게토릭스가 항복했다. 카이사르는 이 군대로 로마를 차지한다.
【그때 그 자리】 BC 58년이다.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이 됐다.
빚이 많았다. 정치 자금을 빌려 쓴 것이 어마어마했다.
그리고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에 비해 군사적 명성이 없었다.
전쟁이 필요했다.
【왜 그렇게 됐나】 명분은 있었다.
헬베티족이 지금의 스위스에서 서쪽으로 이주하려 했다. 36만 명이 움직였다.
로마의 동맹 부족들이 도움을 청했다. 카이사르가 막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냈다.
이어 게르만의 아리오비스투스를 라인강 너머로 밀어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갈리아 전체로 갔다.
【어떻게 흘렀나】 8년이 걸렸다.
라인강에 다리를 열흘 만에 놓고 건너가 시위한 뒤 돌아왔다. 다리를 부수고 왔다 —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는 뜻이다.
브리타니아에 두 번 건너갔다.
가장 큰 고비가 BC 52년 베르킹게토릭스의 봉기다.
갈리아 부족들이 처음으로 하나로 뭉쳤다. 그가 청야 전술을 썼다 — 자기 마을을 태워 로마군이 먹을 것을 없앴다.
알레시아에서 결판이 났다.
카이사르가 성을 둘러싸는 성벽 16km를 쌓았다. 그리고 그 바깥에 다시 성벽 21km를 쌓았다 — 밖에서 오는 갈리아 구원군을 막기 위해서다.
포위한 군대가 스스로 포위된 상태로 싸웠다. 안쪽에 8만, 바깥쪽에 25만이 있었고 로마군은 6만이었다.
이겼다. 베르킹게토릭스가 말을 타고 나와 무기를 발밑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사망자 100만, 노예로 팔린 사람 100만이라는 숫자가 고대 사료에 나온다. 과장이 있겠으나 규모는 짐작된다.
카토가 원로원에서 카이사르를 전쟁 범죄로 갈리아인들에게 넘기자고 주장하기도 했다.
【남은 것】 「갈리아 전기」가 남았다.
카이사르가 직접 썼다. 겨울마다 로마로 보냈다 — 원로원과 시민에게 자기 업적을 알리는 정치 문서였다.
3인칭으로 썼다. 「카이사르는 …했다」는 식이다. 자기 이야기인데 객관적으로 보이게 하는 장치다.
문장이 간결해 라틴어 교재의 표준이 됐다. 「갈리아 전체는 세 부분으로 나뉜다」는 첫 문장을 유럽 학생들이 대대로 외웠다.
그리고 정복이 실제로 남았다. 갈리아가 로마화됐고, 그 언어가 프랑스어가 됐다.
베르킹게토릭스는 로마로 끌려가 6년을 갇혔다가 개선식 뒤 처형됐다.
19세기 프랑스에서 그가 민족 영웅으로 되살아났다. 나폴레옹 3세가 알레시아에 그의 동상을 세웠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카이사르 내전 스파르타쿠스의 반란 악티움 해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