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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발트해 패권을 쥔 스웨덴을 러시아·덴마크·폴란드가 함께 노렸다. 젊은 표트르에게는 바다로 나가는 항구가 절실했다.
결과러시아가 스웨덴을 꺾고 발트해의 강자가 됐다. 표트르 대제의 제국이 여기서 시작된다.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723 · 「마태 수난곡」의 작곡가, 음악의 아버지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아이제나흐의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열 살에 고아가 됐다. 바이마르 궁정 오르간 연주자, 쾨텐 궁정 악장을 거쳐 1723년 라이프치히 토마스 교회의 칸토르가 됐다.
그는 두 번 결혼해 20명의 자녀를 두었고 매주 일요일 예배를 위해 200곡이 넘는 칸타타를 썼다. 「마태 수난곡」과 「b단조 미사」는 개신교 신앙의 음악적 정점이다.
당대엔 구식으로 여겨져 잊혔으나 1829년 멘델스존이 「마태 수난곡」을 되살리자 재발견됐다. 베토벤은 「바흐(개울)가 아니라 바다」라고 했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오일러 오세이 투투 마리아 테레지아 표트르 대제 강희제 로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