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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오스만이 빈을 두 번째로 포위했다. 유럽 각국이 교황의 중재로 신성동맹을 맺었다.
결과폴란드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렸고,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이 헝가리를 잃었다. 오스만의 팽창이 여기서 멈추고 이후 200년의 후퇴가 시작된다.
왜발트해 패권을 쥔 스웨덴을 러시아·덴마크·폴란드가 함께 노렸다. 젊은 표트르에게는 바다로 나가는 항구가 절실했다.
결과러시아가 스웨덴을 꺾고 발트해의 강자가 됐다. 표트르 대제의 제국이 여기서 시작된다.
왜합스부르크 에스파냐 왕이 후사 없이 죽으며 프랑스 왕손에게 왕위를 넘겼다. 프랑스와 에스파냐가 한 집안이 되는 것을 영국과 오스트리아가 막으려 했다.
결과유럽 전체가 에스파냐 왕좌를 두고 싸웠다. 영국이 지브롤터를 얻었다.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8세에 즉위해 61년을 다스렸다. 타이완을 얻고 러시아와 국경을 정했으며 서양 선교사에게 수학을 배웠다.
정부는 생명·자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계약이고, 이를 어기면 국민은 저항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은 그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완성하다
오스만이 빈을 두 달째 포위했을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날개 단 기병을 이끌고 언덕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꼽힌다.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인물 · 1700 · 러시아 차르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그때 그 자리】
17세기 말 러시아는 유럽에서 가장 뒤처진 대국이었다. 영토는 넓었지만 얼지 않는 항구가 없었다. 북쪽은 겨울에 얼고 남쪽은 오스만이 막고 있었다. 바다로 나갈 길이 없으니 유럽과의 교역과 교류가 제한됐다.
사회는 몽골 지배와 동방 정교회의 전통 위에 있었다. 귀족은 긴 수염을 기르고 긴 옷을 입었다. 여성은 테렘이라는 별채에 격리됐다. 서유럽에서는 이미 과학혁명이 진행 중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표트르는 1682년 열 살에 공동 차르가 됐다. 어려서 모스크바 근교의 외국인 거주 구역을 드나들며 서양 기술자와 어울렸다. 배와 대포에 관심이 많았다.
1697년 그는 250명 규모의 대사절단을 서유럽에 보내며 자기도 가짜 이름으로 끼어 갔다. 키가 2미터가 넘어 정체가 금방 들통났지만, 네덜란드 조선소에서 넉 달간 목수로 일했다. 한 나라의 군주가 남의 나라 조선소에서 대패를 잡은 것이다.
암스테르담과 런던에서 조선과 항해와 해부학과 대포 주조를 보고 배웠다. 기술자 수백 명을 고용해 데려왔다.
【어떻게 흘렀나】
돌아와서 바꾸기 시작했다. 방식이 거칠었다.
귀족의 수염을 직접 잘랐다. 기르려면 수염세를 내야 했다. 서양식 옷을 입게 했고, 여성을 사교 모임에 나오게 했다. 율리우스력을 도입하고 연초를 9월에서 1월로 바꿨다. 표기법을 간소화했다.
군대를 새로 만들었다. 징병제로 상비군을 두고 서양식으로 훈련시켰다. 해군을 처음부터 만들었다. 러시아에 해군이 없던 나라에서 함대가 생겼다.
1700년부터 21년간 스웨덴과 대북방전쟁을 치렀다. 처음 나르바에서 크게 졌다. 그는 지고 나서 배웠다. 종을 녹여 대포를 만들고 군대를 다시 훈련시켜, 1709년 폴타바에서 스웨덴의 칼 12세를 꺾었다. 이 승리로 러시아가 유럽의 강대국으로 인정받았다.
1703년 네바강 하구 늪지에 새 수도를 짓기 시작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다. 유럽으로 열린 창을 내려는 것이었다. 공사에 동원된 농노 수만 명이 죽었다. 뼈 위에 세운 도시라 불린다.
1721년 스스로 황제를 칭했다.
【그래서】
러시아가 유럽의 일원이 됐다. 그러나 대가가 컸다. 개혁 비용은 세금으로 농민에게 갔고 농노제가 오히려 강화됐다. 위에서 서구화하는 동안 아래는 더 묶였다.
아들 알렉세이가 개혁에 반대하다 반역 혐의로 고문 끝에 죽었다. 표트르가 직접 심문에 참여했다.
【남은 것】
러시아에서 그의 평가는 지금도 갈린다. 나라를 유럽으로 끌어올린 사람인가, 러시아 고유의 것을 짓밟고 폭력으로 밀어붙인 사람인가. 19세기 슬라브파와 서구파의 논쟁이 이 인물을 두고 벌어졌다.
위에서 강제로 근대화를 밀어붙인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메이지 유신과 비교되기도 한다. 짧은 시간에 나라의 겉모습을 바꾸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 아래의 구조는 함께 바뀌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다.
지도에서 보기: 1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오세이 투투 강희제 로크 뉴턴 라이프니츠 얀 3세 소비에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