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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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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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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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주권국가 체제

베스트팔렌 조약이 종교가 아니라 주권을 국제 질서의 단위로 삼았다. 절대왕정이 상비군과 관료제로 국가를 다졌다.

한반도

양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전쟁 1건

대튀르크 전쟁1683 – 1699
신성동맹 vs 오스만

오스만이 빈을 두 번째로 포위했다. 유럽 각국이 교황의 중재로 신성동맹을 맺었다.

빈 공방 1683젠타 1697

결과폴란드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렸고,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이 헝가리를 잃었다. 오스만의 팽창이 여기서 멈추고 이후 200년의 후퇴가 시작된다.

16년 · 오스만 팽창의 끝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9명

뉴턴과학1687 · 자연철학자
1643 – 1727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 만유인력과 운동 법칙
  • 「프린키피아」 1687
  • 미적분과 광학
라이프니츠과학1684 · 수학자·철학자
1646 – 1716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완성하다

  • 미적분 독자 발견·발표 1684
  • 지금 쓰는 미적분 표기법 고안
  • 뉴턴과 우선권 논쟁
강희제정치1690 · 삼번의 난을 평정하고 청의 전성기를 연 황제
1654 – 1722, 재위 1661 – 1722

8세에 즉위해 61년을 다스렸다. 타이완을 얻고 러시아와 국경을 정했으며 서양 선교사에게 수학을 배웠다.

  • 삼번의 난 평정(1681), 타이완 정복(1683)
  • 네르친스크 조약(1689)
  • 준가르 원정, 「강희자전」 편찬
로크사상1690 · 자유주의의 아버지, 「통치론」의 저자
1632 – 1704

정부는 생명·자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계약이고, 이를 어기면 국민은 저항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은 그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 「통치론」「인간지성론」(1690)
  • 자연권·사회계약·저항권 이론
  • 「관용에 관한 편지」
얀 3세 소비에스키장군1683 · 빈을 구한 왕
1629 – 1696

오스만이 빈을 두 달째 포위했을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날개 단 기병을 이끌고 언덕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꼽힌다.

  • 1683년 빈 구원
  • 날개 기병 후사르 3천
  • 오스만의 유럽 진출이 여기서 꺾였다
표트르 대제정치1700 · 러시아 차르
1672 – 1725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 서유럽에서 직접 기술을 배워옴
  • 상트페테르부르크 건설
  • 대북방전쟁 승리
오세이 투투정치1701 · 아샨티를 하나로 묶은 왕
1660?년 무렵 – 1717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 사제 오콤포 아녜에와 함께 아샨티 동맹 결성
  • 황금 의자(시카 드와)를 나라의 영혼으로 선포
  • 금 무역로를 장악해 아샨티를 서아프리카 강국으로
보일과학1662 · 화학자
1627 – 1691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 보일의 법칙 발표
  • 회의적 화학자 저술
  • 왕립학회 설립에 기여
루이 14세정치1661 · 태양왕, 절대왕정의 상징
1638 – 1715, 재위 1643 – 1715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 베르사유 궁전 건설
  •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상징되는 절대왕정
  • 잦은 전쟁으로 재정을 크게 소모

그 무렵의 사건

1688
명예혁명
1688~89년, 잉글랜드 의회가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 메리와 사위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앉혔다. 유혈 충돌 없이 이뤄졌다.
이듬해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의회가 왕권 위에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1701
아샨티 제국
1701년 오세이 투투가 세운 아샨티 제국은 금 무역으로 번영하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으나, 19세기 말 영국과의 거듭된 전쟁 끝에 식민 지배 아래 놓였다.
건국자 오세이 투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황금 스툴')를 왕권의 상징으로 삼아 여러 부족을 하나의 연합체로 묶었다.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도 아샨티 왕권의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샨티는 풍부한 금광과 노예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으나, 19세기 들어 이권을 노린 영국과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영국-아샨티 전쟁)을 치렀다. 1900년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하며 결국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됐다.
1725
영조의 탕평책
영조는 붕당 간 극심한 대립으로 정치가 마비되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숙종 때부터 격화된 붕당 간의 당쟁은 상대 당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환국 정치로까지 치달아 정치 기강이 크게 흔들렸다. 이 와중에 왕위에 오른 영조는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도 붕당의 다툼에 시달렸던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이 원칙을 널리 알리고, 붕당의 뿌리인 서원을 대거 정리하며 이조 전랑의 권한도 축소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극단적인 당쟁은 상당히 진정되었으며, 이 흐름은 손자인 정조에게로 이어져 조선 후기 정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1648
베스트팔렌 조약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지금 국가 체제의 기원이다.
1632
타지마할
아내의 무덤을 짓는 데 22년이 걸렸다.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샤 자한이 짓기 시작했다. 흰 대리석에 페르시아와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섞였다. 그는 말년에 아들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1627
정묘호란
후금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을 문제 삼아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실리를 좇는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를 명분 삼아 1627년 후금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했다(정묘호란). 후금군은 평안도 일대를 휩쓸며 빠르게 남하했지만, 명과의 전쟁도 함께 치르고 있던 후금 입장에서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결국 양측은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그러나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군신 관계(사대)를 요구하자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10년 뒤 병자호란이 다시 벌어지게 된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뉴턴

인물 · 1687 · 자연철학자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그때 그 자리】

17세기 후반 유럽은 하늘과 땅을 따로 설명하고 있었다. 갈릴레이가 땅 위의 물체가 어떻게 떨어지는지 측정했고, 케플러가 행성이 타원 궤도로 돈다는 것을 관측 자료에서 찾아냈다. 둘 다 맞았는데 서로 연결되지 않았다.

질문은 이것이었다. 왜 행성은 계속 도는가. 데카르트는 우주가 소용돌이로 차 있어 행성이 그 흐름에 실려 간다고 설명했다. 널리 받아들여지던 답이다.

【왜 그렇게 됐나】

뉴턴은 1642년 미숙아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태어나기 전에 죽었고 어머니는 재혼해 그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성격이 평생 예민하고 사람과 잘 어울리지 못했다.

1665년 흑사병으로 케임브리지가 문을 닫았다. 고향 울즈소프에 돌아가 보낸 18개월 동안 미적분과 광학과 중력의 착상을 모두 얻었다. 스물세 살이었다. 이 시기를 기적의 해라 부른다.

사과 이야기는 본인이 말년에 여러 사람에게 했다. 머리에 맞았다는 대목은 후대에 붙었다. 요점은 사과가 아니라 물음이다. 사과를 떨어뜨리는 힘이 달까지 미친다면 어떻게 되는가.

【어떻게 흘렀나】

그는 20년 가까이 발표하지 않았다. 논쟁을 극도로 싫어했고, 광학 논문을 냈다가 훅과 다툰 뒤로 더 그랬다.

1684년 핼리가 찾아와 물었다. 태양이 거리 제곱에 반비례하는 힘으로 끌어당기면 궤도가 어떤 모양이 되겠느냐고. 뉴턴은 타원이라고 즉답했다. 이미 계산해 봤다는 것이다. 핼리가 설득하고 출판 비용까지 대서 1687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가 나왔다.

이 책이 한 일은 간단히 말할 수 있다. 세 개의 운동 법칙과 하나의 중력 법칙으로 사과와 달과 행성과 조석을 같은 식으로 설명했다. 하늘과 땅이 다른 법칙을 따른다는 2천 년의 전제가 여기서 끝났다.

【그래서】

핼리는 이 법칙으로 혜성이 1758년에 돌아온다고 예측했다. 그가 죽고 16년 뒤 혜성이 정확히 나타났다. 예측이 맞는다는 것이 이 체계의 힘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1846년에는 천왕성 궤도의 어긋남을 계산해 해왕성의 위치를 예측하고, 그 자리에서 실제로 발견했다. 계산으로 행성을 찾아낸 것이다.

【남은 것】

뉴턴 자신은 우리가 아는 과학자와 달랐다. 남긴 원고 가운데 연금술과 성경 연대 계산이 물리학보다 많다. 케인스가 그의 원고를 사서 읽고 그를 마지막 마법사라 불렀다.

1905년 아인슈타인이 뉴턴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을 무너뜨렸다. 그러나 뉴턴이 틀렸다기보다, 빠르고 무거운 조건에서 다른 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도 다리를 놓고 로켓을 쏘는 계산은 뉴턴의 식으로 한다.

묘비에 새겨진 문장이 있다. 인류가 이런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에 기뻐하라.

지도에서 보기: 165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라이프니츠 강희제 로크 얀 3세 소비에스키 표트르 대제 오세이 투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