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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절대왕정과 계몽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한반도

조선 후기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9명

오일러과학1736 · 수학자
1707 – 1783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 쾨니히스베르크 다리 문제 해결
  • 그래프 이론의 시작
  • 현대 수학 표기법 다수 고안
마리아 테레지아정치1745 · 16명의 자녀를 낳고 합스부르크를 지킨 여제
1717 – 1780, 재위 1740 – 1780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 오스트리아 왕위계승전쟁에서 제국 수호
  • 의무교육·행정 개혁, 상비군 정비
  • 마리 앙투아네트 등 자녀 정략혼
바흐예술1723 · 「마태 수난곡」의 작곡가, 음악의 아버지
1685 – 1750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 「브란덴부르크 협주곡」「평균율 클라비어」
  • 「마태 수난곡」(1727)
  • 「푸가의 기법」 — 대위법의 완성
프리드리히 대왕정치1757 · 프로이센을 강국으로 올린 계몽 군주
1712 – 1786, 재위 1740 – 1786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 슐레지엔 전쟁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영토 탈취
  • 7년전쟁 — 로이텐·로스바흐 승리
  • 고문 폐지, 종교 관용, 감자 보급
린네과학1758 · 식물학자
1707 – 1778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 이명법 확립
  • 자연의 체계 1758
  • 현대 생물 분류의 기초
건륭제정치1760 · 청의 최대 판도와 쇠퇴의 씨앗을 함께 남긴 황제
1711 – 1799, 재위 1735 – 1796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 십전무공 — 준가르 멸망, 신장 병합(1759)
  • 「사고전서」 편찬과 문자옥
  • 매카트니 사절단 거절(1793)
볼테르사상1760 · 종교적 광신과 싸운 계몽의 상징
1694 – 1778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 「철학 서한」「캉디드」「관용론」
  • 칼라스 사건 — 억울한 개신교도 명예 회복
  • 바스티유 투옥, 영국·프로이센 망명
예카테리나 대제정치1762 · 러시아를 유럽 열강으로 키운 여제
1729 – 1796, 재위 1762 – 1796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 쿠데타로 남편 표트르 3세를 폐위
  • 오스만·폴란드로부터 영토 확장
  • 계몽 군주를 자처했으나 농노제는 오히려 강화
루소사상1762 · 「사회계약론」으로 혁명에 불을 붙인 사상가
1712 – 1778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 「사회계약론」「에밀」(1762)
  • 일반의지·인민주권 사상
  • 「고백록」 — 근대 자서전의 시작

그 무렵의 사건

1725
영조의 탕평책
영조는 붕당 간 극심한 대립으로 정치가 마비되자, 당파를 가리지 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숙종 때부터 격화된 붕당 간의 당쟁은 상대 당을 완전히 몰락시키는 환국 정치로까지 치달아 정치 기강이 크게 흔들렸다. 이 와중에 왕위에 오른 영조는 자신의 즉위 과정에서도 붕당의 다툼에 시달렸던 만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각 붕당의 인재를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그는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이 원칙을 널리 알리고, 붕당의 뿌리인 서원을 대거 정리하며 이조 전랑의 권한도 축소했다. 영조의 탕평책으로 극단적인 당쟁은 상당히 진정되었으며, 이 흐름은 손자인 정조에게로 이어져 조선 후기 정치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1750
균역법 시행
영조는 백성이 부담하던 군포를 절반으로 줄이는 균역법을 시행해 군역의 폐단을 완화했다.
조선의 양인 남성은 군역 대신 군포(베 2필)를 바쳐야 했는데, 군적이 문란해지면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갓난아이에게까지 군포를 매기는 백골징포·황구첨정 같은 폐단이 만연했다. 영조는 1750년 균역법을 시행해 군포 부담을 종전의 절반인 1필로 줄였다. 이로 인해 줄어든 국가 재정은 지주에게 걷는 결작(토지에 매기는 세금)과 어업세·소금세 등 잡세로 메우도록 했다. 균역법은 백성의 부담을 다소 덜어주었지만 근본적인 군적 문란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해, 조선 후기까지 군포 관련 폐단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1755
리스본 대지진
만성절 아침 지진·쓰나미·화재가 리스본을 지웠다. 「신은 왜 허락했는가」가 계몽사상의 질문이 됐다.
11월 1일 미사 시간에 규모 8.5로 추정되는 지진이 덮쳤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강가로 피하자 쓰나미가 왔고 촛불이 도시를 닷새 동안 태웠다. 인구 20만 중 3만에서 5만이 죽었다. 재상 폼발은 「죽은 자를 묻고 산 자를 먹이라」며 격자형 내진 도시를 다시 세웠고, 볼테르는 「캉디드」로 낙관론을 비웃었다. 근대 지진학의 출발점이다.
1769
산업혁명
와트의 증기기관 특허와 아크라이트의 방적기가 같은 해에 나왔다. 기계가 사람의 손을 대신하기 시작했다.
석탄과 철이 풍부한 영국 중부에서 면직물 공장이 강가에서 도시로 옮겨 왔다. 증기기관이 방적기와 직조기를 돌리고 곧 철도를 끌었다. 인구가 농촌에서 맨체스터·버밍엄으로 몰렸고 아동 노동과 슬럼, 그리고 중산층이 함께 생겼다. 이 변화는 100년 안에 유럽과 미국, 일본으로 번져 인류의 생활수준을 처음으로 지속적으로 끌어올렸다.
1701
아샨티 제국
1701년 오세이 투투가 세운 아샨티 제국은 금 무역으로 번영하며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했으나, 19세기 말 영국과의 거듭된 전쟁 끝에 식민 지배 아래 놓였다.
건국자 오세이 투투는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황금 스툴')를 왕권의 상징으로 삼아 여러 부족을 하나의 연합체로 묶었다. 이 의자는 오늘날까지도 아샨티 왕권의 신성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아샨티는 풍부한 금광과 노예무역으로 큰 부를 쌓았으나, 19세기 들어 이권을 노린 영국과 다섯 차례에 걸친 전쟁(영국-아샨티 전쟁)을 치렀다. 1900년 마지막 전쟁에서 패배하며 결국 영국의 보호령으로 편입됐다.
1776
미국 독립선언
7월 4일 필라델피아에서 13개 식민지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차 세금과 대표 없는 과세에 반발한 식민지는 1775년 렉싱턴에서 총을 들었다. 제퍼슨이 쓴 선언문은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창조됐고 생명·자유·행복 추구의 권리를 가지며 정부가 이를 어기면 갈아치울 수 있다고 했다. 서명자들은 반역죄로 교수형을 각오했다. 8년 전쟁 뒤 독립이 인정됐고, 이 문서는 프랑스 혁명과 이후 모든 독립선언의 본보기가 됐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오일러

인물 · 1736 · 다리를 건너는 문제에서 새 수학이 나오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그때 그 자리】

프로이센 도시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은 강 위 일곱 개 다리를 한 번씩만 건너 모든 다리를 지나갈 수 있는지 궁금해했지만 아무도 답을 찾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나】

스위스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베를린의 과학아카데미에서 활동했다. 평생 눈이 거의 안 보이게 됐지만 계산은 머릿속으로 이어갔다.

【어떻게 흘렀나】

1736년, 다리의 실제 위치나 거리는 무시하고 땅과 다리를 점과 선으로만 단순화해 그런 경로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는 훗날 그래프 이론이라는 수학 분야가 시작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평생 900편이 넘는 논문을 남겨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로 꼽힌다. 지금 수학 표기법(함수 f(x), 원주율 π, 자연상수 e, 허수 단위 i 등) 다수가 그가 퍼뜨린 것이다.

【남은 것】

이름이 붙은 정리와 공식이 수학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어 「오일러가 손대지 않은 분야가 없다」는 말이 나온다.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에도 죽기 직전까지 계산과 저술을 이어갔다.

지도에서 보기: 1715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마리아 테레지아 바흐 프리드리히 대왕 린네 건륭제 볼테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