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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부처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브라만의 권위를 부정했다. 어떤 생명도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을 끝까지 밀고 갔다.
석가족 왕자로 나 스물아홉에 집을 나섰다. 극단적인 고행도 답이 아니라고 보고 가운데 길을 택했다. 그가 말한 것은 신이 아니라 원인이었다.
숫자가 만물의 근원이라 믿은 사람
무위자연 — 억지로 하지 않아야 오히려 잘 된다는 역설을 5천 자에 담았다. 유교와 함께 중국 사상의 두 기둥이 됐다.
작은 속국에서 시작해 20년 만에 근동 전체를 손에 넣었다. 정복민의 신과 관습을 인정한 것이 통치 비용을 크게 낮췄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이다. 2,500년 전 열세 편의 병법이 오늘날 경영과 스포츠에서도 읽힌다.
해당 없음
인물 · BC 527 · 옷도 벗은 사람
부처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브라만의 권위를 부정했다. 어떤 생명도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을 끝까지 밀고 갔다.
【그때 그 자리】 BC 6세기 갠지스 유역. 도시가 커지고 상업이 늘며 브라만교의 제사 중심 질서가 흔들리던 때다.
붓다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 사람이다. 크샤트리아 왕족으로 났다.
본명은 바르다마나. 마하비라는 「위대한 영웅」이라는 칭호다.
【왜 그렇게 됐나】 서른에 집을 떠났다. 12년 넘게 고행했다.
붓다는 고행을 겪어 본 뒤 그것을 버리고 중도를 택했다. 마하비라는 반대로 끝까지 갔다.
옷을 벗었다. 소유의 마지막 하나까지 버린다는 뜻이다. 자이나교가 뒤에 옷을 입는 백의파와 벗는 공의파로 갈리는 뿌리가 여기 있다.
【어떻게 흘렀나】 가르침의 중심은 아힘사 — 해치지 않음이다.
다른 어떤 종교보다 멀리 밀고 갔다. 벌레를 밟지 않으려 빗자루로 앞을 쓸며 걷고, 날벌레를 들이마시지 않으려 입을 가리고, 뿌리채소는 먹지 않는다. 땅속 생명을 죽이고 뿌리 자체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밤에 먹지 않는다. 등불에 벌레가 뛰어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가 아네칸타바다 — 여러 면이 있다는 것이다.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지는 비유가 여기서 나온다. 다리를 만진 이는 기둥이라 하고 귀를 만진 이는 부채라 한다. 모두 틀리지 않았고 모두 전부는 아니다.
진리에 여러 관점이 있다는 이 태도가 자이나교의 특징이다. 다른 종교를 배격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이나교는 크게 퍼지지 않았다. 지금 인도에서 500만 명 안팎, 전체 인구의 0.4%다.
계율이 너무 엄해 대중 종교가 되기 어려웠다. 농사조차 벌레를 죽이므로 피했고, 그래서 상업과 금융으로 갔다. 지금도 자이나교도는 인도에서 손꼽히는 상인 집단이다.
【남은 것】 간디가 자이나교의 아힘사에서 크게 배웠다. 그의 고향 구자라트는 자이나교가 강한 곳이고, 어머니의 스승 가운데 자이나교 승려가 있었다.
비폭력 저항이 인도 독립으로, 다시 킹 목사의 미국 민권운동으로 갔다.
2,500년 전에 「해치지 마라」를 끝까지 밀어붙인 소수 종교가 20세기 정치를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