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몽골이 세 번째로 대월을 쳤다. 앞선 두 번도 실패했지만 이번에는 함대를 앞세웠다.
결과쩐흥다오가 강바닥에 쇠 씌운 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을 기다렸다. 물이 빠지자 원의 함선이 말뚝에 걸려 부서졌다. 몽골이 바다에서 크게 진 몇 안 되는 예다.
대월의 장수로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았다. 1288년 바익당강 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에 함대를 걸리게 했다.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튀르크계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을 딴 오스만 왕조는 이후 600년 넘게 이어지며 세 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성장했다.
17년을 원나라에서 보내고 돌아와 감옥에서 구술한 「동방견문록」이 콜럼버스를 바다로 이끌었다.
국호를 대원으로 정하고 남송을 무너뜨렸다. 중국 전역이 처음으로 유목 왕조 아래 들어갔다.
아리스토텔레스를 기독교 안으로 들여왔다. 「신학대전」은 가톨릭 신학의 기둥이 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288 · 몽골을 세 번 막은 사람
대월의 장수로 몽골의 세 차례 침입을 막았다. 1288년 바익당강 바닥에 쇠말뚝을 박아 두고 썰물에 함대를 걸리게 했다.
【그때 그 자리】 13세기 다이비엣(베트남 쩐 왕조)이다.
몽골이 세 번 쳐들어왔다 — 1258년, 1285년, 1287~88년이다.
송을 무너뜨리고 고려를 굴복시키고 유라시아를 가로지른 군대였다. 인구 수백만의 나라가 상대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본명은 쩐꾸옥뚜언. 왕족이자 총사령관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아버지가 죽으며 왕위를 빼앗으라 유언했다고 전한다. 그가 따르지 않았다.
2차 침입 때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왕이 항복을 물었다. 그가 답했다. 「먼저 신의 목을 벤 뒤에 항복하십시오.」
「격장사(檄將士文)」를 지어 장수들에게 돌렸다. 「적의 목을 베지 못하고 (…) 나는 살가죽이 들판에 널리고 시체가 말발굽에 밟혀도 한이 없다」는 문장이 있다.
군사들이 팔에 「살달(殺韃) — 몽골을 죽인다」 두 글자를 새겼다고 전한다.
【어떻게 흘렀나】 정면으로 맞서지 않았다. 수도 탕롱(하노이)을 비우고 물러섰다.
청야 전술이다. 곡식을 치우고 물러나 적을 굶겼다. 더운 기후와 풍토병이 몽골군을 갉았다.
그리고 3차 침입 때 바익당강에서 끝냈다.
밀물 때 강바닥에 끝을 뾰족하게 깎아 쇠를 씌운 말뚝을 박아 두었다. 물이 찼을 때 작은 배로 적 함대를 유인해 들어오게 하고, 썰물에 배들이 말뚝에 걸려 움직이지 못할 때 쳤다.
몽골 함대 400여 척이 궤멸했다. 사령관 오마르가 사로잡혔다.
같은 강에서 938년 응오꾸옌이 남한(南漢)을 상대로 같은 방법을 썼다. 그것을 다시 쓴 것이다.
【그래서】 몽골이 다시 오지 않았다. 쿠빌라이가 4차 원정을 준비하다 죽었다.
다이비엣은 형식적으로 조공을 보냈다. 그러나 다스림을 받지 않았다.
【남은 것】 유언이 전한다. 「적이 오래 끄는 것을 두려워하고 빨리 끝내는 것을 좋아합니다. (…) 백성의 힘을 기르는 것이 가장 좋은 계책입니다.」
베트남에서 「흥다오 대왕」으로 신격화됐다. 사당이 전국에 있다.
700년 뒤 보응우옌잡이 프랑스와 미국을 상대할 때 같은 방식으로 갔다 — 물러서고, 끌고, 지치게 하는 것이다.
하노이·호찌민시를 비롯한 거의 모든 도시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있다.
지도에서 보기: 1279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오스만 1세 마르코 폴로 쿠빌라이 칸 토마스 아퀴나스 단테 만사 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