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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몽골과 강화한 뒤 원의 부마국이 됐다. 공민왕이 반원 개혁을 시도했지만 왕조는 이미 기울었다.
왜왕위 계승 분쟁에 에드워드 1세가 중재자로 개입했다가 그대로 속국으로 삼으려 했다.
결과윌리엄 월리스가 처형된 뒤 로버트 브루스가 배넉번에서 대승했다. 아브로스 선언은 「우리는 영광이나 부가 아니라 자유를 위해 싸운다」고 적었다.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말리 제국의 왕으로 메카 순례에 수행원 6만과 금 실은 낙타 수백 마리를 데려갔다. 카이로에 금을 너무 많이 뿌려 그 지역 금값이 10년 넘게 회복되지 않았다.
아나톨리아 북서부의 작은 튀르크계 공국을 세워 비잔티움 국경 지역에서 세력을 키웠다. 그의 이름을 딴 오스만 왕조는 이후 600년 넘게 이어지며 세 대륙에 걸친 제국으로 성장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320 · 라틴어를 버리고 쓴 서사시
정쟁에 밀려 피렌체에서 추방된 뒤 돌아가지 못했다. 학자만 읽는 라틴어 대신 토스카나 방언으로 써서, 그 말이 이탈리아어가 됐다.
【그때 그 자리】 13세기 말 피렌체. 교황파(구엘프)와 황제파(기벨린)가 싸웠고, 교황파가 이긴 뒤 다시 흑당과 백당으로 갈렸다.
단테는 백당이었다. 1301년 교황 보니파시오 8세가 프랑스 군대를 끌어들여 흑당이 정권을 잡았다.
1302년 궐석 재판에서 추방과 함께 「피렌체에 들어오면 화형」을 선고받았다. 평생 돌아가지 못했다.
【왜 그렇게 됐나】 아홉 살에 베아트리체를 처음 보았고 열여덟에 다시 보았다. 말을 나눈 적이 거의 없다.
그가 스물넷에 죽었다. 단테는 다른 여자와 결혼해 자식을 넷 두었으나, 평생 쓴 글의 중심에 그 여자가 있다.
【어떻게 흘렀나】 「신곡」은 망명 중에 썼다. 지옥·연옥·천국 세 편, 각 33곡에 서곡 하나를 더해 100곡이다.
지옥의 안내자가 베르길리우스이고, 연옥 꼭대기부터 베아트리체가 이끈다. 이성이 갈 수 있는 데까지 간 뒤 사랑이 이어받는 구조다.
지옥에는 실존 인물이 가득하다. 자기를 추방한 정적들과 교황들을 이름을 밝혀 넣었다. 보니파시오 8세는 아직 살아 있는데 자리를 예약해 두었다.
가장 깊은 곳은 불이 아니라 얼음이다. 배신자들이 얼어 있고 그 한가운데 루키페르가 있다.
【그래서】 라틴어가 아니라 토스카나 방언으로 썼다. 학자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 읽으라는 뜻이었다.
「속어론」에서 그것을 변호했다. 라틴어는 배워야 알지만 속어는 어머니에게서 배운다고 했다.
이 선택이 이탈리아어를 만들었다. 여러 방언 가운데 토스카나 방언이 표준이 된 것이 「신곡」 때문이다.
【남은 것】 1321년 라벤나에서 죽었다. 피렌체가 뒤늦게 유해를 돌려달라 했으나 라벤나가 거절했다. 지금도 라벤나에 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그의 빈 무덤이 있다.
「신곡」의 원제는 그냥 「희극(Commedia)」이었다. 「신(神)」을 붙인 것은 보카치오다.
지옥 문에 적힌 문장이 유명하다. 「여기 들어오는 너희, 모든 희망을 버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