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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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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3세기의 위기

50년 동안 황제가 스무 명 넘게 바뀌었다. 군대가 황제를 세우고 죽였으며 은화의 은 함량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졌다. 국경이 동시에 뚫렸다.

한반도

삼국의 성립

신라·고구려·백제가 차례로 서고 가야가 낙동강 유역에 자리 잡았다. 아직 연맹왕국 단계로 왕권이 강하지 않았다.

전쟁 2건

3세기 로마-사산 전쟁230 – 260
로마 vs 사산조 페르시아

파르티아를 무너뜨린 사산조가 옛 아케메네스 영토의 회복을 내걸었다. 로마의 동방 속주가 바로 그 대상이었다.

에데사 260안티오키아 260

결과에데사에서 황제 발레리아누스가 사로잡혔다. 로마는 처음으로 대등한 상대를 만났다.

30년 넘게 · 로마 황제가 사로잡히는 초유의 일
3세기의 위기235 – 284
로마 vs 내부·페르시아·게르만

황제가 군대에 의해 세워지고 죽는 일이 반복됐다. 은화의 은 함량이 5%까지 떨어지며 물가가 폭등했다.

에데사 260 — 황제가 포로가 됨팔미라 수복 273

결과50년간 황제가 26명 바뀌고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로 겨우 봉합했지만 제국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졌다.

49년 · 황제 26명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제갈량정치234 ·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 사람
AD 181 – AD 234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 천하삼분지계 — 형세를 셋으로 보다
  • 목우유마와 연노 등 병기 개량
  • 출사표 — 「죽은 뒤에야 그친다」
히미코정치239 · 위지동이전에 남은 여왕
170 무렵 – 248 무렵

야마타이국의 여왕으로 위나라에 사신을 보내 친위왜왕 칭호와 거울 100장을 받았다. 나라가 어디였는지는 지금도 규슈설과 기나이설로 갈린다.

  • 239년 위에 사신
  • 주술로 다스렸다고 기록됨
  • 야마타이 위치 논쟁은 아직 안 끝났다
조조장군208 · 난세를 정면으로 받은 사람
AD 155 – AD 220

황건적 진압으로 이름을 얻고 헌제를 옹립해 명분을 쥐었다. 둔전제로 군량을 자급한 것이 다른 군벌과의 결정적 차이였다.

  • 관도대전에서 원소를 꺾음 200
  • 둔전제 — 병사가 농사를 지어 자급
  • 적벽에서 패해 통일이 60년 미뤄짐

그 무렵의 사건

224
사산 왕조의 등장
페르시아가 400년 만에 돌아왔다.
아르다시르 1세가 파르티아를 무너뜨리고 아케메네스의 후계를 자처했다. 조로아스터교를 국교로 삼고 로마와 400년을 겨룬다.
220
삼국의 성립
한 제국이 셋으로 갈라졌다.
조비가 헌제의 선양을 받아 위를 세우자 유비가 촉을, 손권이 오를 세웠다. 400년 통일이 끝나고, 이 60년의 이야기가 1,000년 뒤 「삼국지연의」가 된다.
212
안토니누스 칙령
제국 안 모든 자유민이 로마 시민이 됐다.
카라칼라가 속주민 전체에게 시민권을 줬다. 명분은 평등, 실제는 세수 — 시민만 내는 상속세를 걷기 위해서였다. 그래도 「로마인」의 뜻이 혈통에서 소속으로 바뀐 사건이다.
200
고트족의 이동
발트해에서 흑해까지, 그리고 로마까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드네프르 일대에 자리를 잡았다. 4세기에 훈족이 밀려오자 다시 서쪽으로 밀렸고, 그 물결이 도미노처럼 이어져 로마의 국경을 무너뜨린다. 민족대이동은 여기서 시작된다.
300
바누아투의 사람들
한 섬에 100개가 넘는 말이 있다.
작은 섬무리에 서로 통하지 않는 언어가 100가지 넘게 산다. 인구 대비 세계에서 가장 언어가 많은 곳이다. 산과 바다가 마을을 갈라놓았고, 각 마을이 오래 따로 살았다는 뜻이다. 로이 마타의 무덤에는 마흔 명이 함께 묻혀 있었다.
300
야마토 정권
3세기 후반부터 7세기까지, 오늘날 나라·오사카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한 야마토 정권이 일본 열도의 여러 지역 세력을 통합하며 고대 일본 국가의 기틀을 놓았다.
이 시기 곳곳에 거대한 열쇠구멍 모양의 무덤('전방후원분')이 세워졌는데, 그 규모는 지배자의 권력이 얼마나 커졌는지를 보여준다. 야마토 정권은 한반도의 백제·가야 등과 활발히 교류하며 유교·불교와 한자, 여러 선진 기술을 받아들였다. 6~7세기에는 쇼토쿠 태자가 불교를 진흥하고 중국식 관료제 요소를 도입하는 등 국가 체제를 정비했으며, 이후 다이카 개신(645년)을 거치며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 고대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제갈량

인물 · 234 · 이길 수 없는 싸움을 계속한 사람

국력이 위의 5분의 1인 촉을 이끌고 다섯 번 북벌했다. 이기려는 것이 아니라 지지 않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해석이 많다.

【그때 그 자리】

3세기 초 유비는 마흔이 넘도록 근거지가 없었다. 조조와 원소 사이를 오가며 여러 차례 패해 형주의 유표에게 얹혀 있었다. 관우와 장비 같은 무장은 있었지만 전체를 설계할 사람이 없었다.

제갈량은 산둥 출신으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숙부를 따라 형주로 왔다. 융중에서 밭을 갈며 살았다.

【왜 그렇게 됐나】

207년 유비가 세 번 찾아갔다. 삼고초려다. 스물일곱 살 무명의 선비를 마흔일곱의 유비가 세 번 찾은 것이다.

제갈량이 내놓은 것이 융중대다. 조조는 이미 강해 정면으로 못 이기고, 손권은 강동에 자리 잡아 함께 칠 수 없으니 동맹해야 한다. 그러니 형주와 익주를 얻어 셋으로 나눈 뒤 기회를 기다리자는 것이었다.

이 구상이 그대로 실현됐다. 천하가 셋으로 갈린 형세를 미리 그려 보인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208년 그는 손권을 설득해 동맹을 맺었다. 적벽에서 조조가 물러난 뒤 유비가 형주 남부를 얻고 익주로 들어가 221년 촉한을 세웠다.

그런데 융중대의 전제가 깨졌다. 219년 관우가 형주를 잃고 죽었다. 유비가 복수를 위해 오를 쳤다가 222년 이릉에서 대패했다. 동맹을 깨고 친 것이라 제갈량이 반대했던 원정이다.

223년 유비가 죽으며 후사를 부탁했다. 아들이 도울 만하면 돕고 그렇지 않으면 그대가 대신하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다. 제갈량은 울며 충성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그는 실제로 대신하지 않았다. 남쪽 이민족을 평정해 후방을 안정시키고, 오와 동맹을 복구했다. 그리고 227년부터 다섯 차례 북벌에 나섰다.

북벌은 성과가 없었다. 촉은 인구와 국력이 위의 5분의 1 수준이었다. 산길로 군량을 옮기는 것 자체가 한계였다. 그는 나무 소와 흐르는 말이라는 운송 기구를 만들어 썼다.

234년 오장원에서 위와 대치하던 중 병으로 죽었다. 쉰넷이었다.

【그래서】

촉은 29년을 더 갔다가 263년 멸망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왜 계속했는가는 오래된 물음이다. 가만히 있으면 국력 차이가 더 벌어지므로 공세로 시간을 벌어야 했다는 설명, 한 왕실을 잇는다는 명분을 놓으면 나라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는 설명이 함께 있다.

【남은 것】

그가 북벌에 나서며 올린 출사표가 남았다. 신은 본래 미천한 백성으로 남양에서 몸소 밭을 갈았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 글을 읽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는 말이 오래 전한다.

소설 삼국지연의가 그를 바람을 부르고 미래를 읽는 인물로 그렸다. 정사의 제갈량은 다르다. 진수는 그를 나라를 다스리는 재주는 뛰어났으나 임기응변의 장략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고 평했다. 즉 천재적인 전략가가 아니라 뛰어난 행정가이자 성실한 재상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평가가 오히려 이 인물을 오래 남게 했다. 이기지 못할 것을 알면서 맡은 일을 끝까지 한 사람에 대한 기억이다. 죽을 때까지 몸을 굽혀 온 힘을 다한다는 국궁진췌가 그의 글에서 나왔다.

지도에서 보기: 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히미코 조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