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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 서쪽은 게르만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황제는 게르만 출신 장군의 허수아비가 됐고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해당 없음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아버지가 만든 힘을 남쪽으로 돌렸다. 79년을 다스렸다.
로마군에 복무했던 고트족 지휘관이었다. 약속받은 땅과 봉급을 받지 못하자 로마로 향했다.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427 · 방향을 남으로 튼 79년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아버지가 만든 힘을 남쪽으로 돌렸다. 79년을 다스렸다.
【그때 그 자리】 413년에 올라 491년까지 79년을 다스렸다. 아흔여덟에 죽었다. 한국사에서 가장 오래 왕위에 있었다.
아버지가 넓힌 땅을 물려받았으나, 북쪽 중국은 남북조로 갈려 당장 큰 위협이 아니었다. 그는 방향을 바꾸기로 한다.
【왜 그렇게 됐나】 427년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도읍을 옮겼다. 산으로 둘러싸인 요새에서 대동강가의 평야로 나온 것이다.
이유가 여럿이다. 국내성의 옛 귀족 세력을 떼어 놓으려는 것, 늘어난 인구를 먹일 농토가 필요했던 것, 그리고 남쪽으로 나가겠다는 뜻이다.
천도는 곧 신호로 읽혔다. 433년 백제 비유왕과 신라 눌지마립간이 손을 잡았다 — 나제동맹이다. 120년을 가는 동맹이 고구려의 남하 때문에 생겼다.
【어떻게 흘렀나】 장수왕은 서두르지 않았다. 승려 도림을 백제에 보내 개로왕과 바둑을 두게 했다. 도림이 왕을 부추겨 궁을 크게 짓고 성을 쌓고 아버지 무덤을 옮기게 했다. 나라의 창고가 비었다.
475년 3만으로 한성을 쳤다. 이레 만에 함락되고 개로왕이 붙잡혀 죽었다. 백제는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다.
고구려의 남쪽 경계가 지금의 충주까지 내려왔다. 충주 고구려비가 그 자리에 서 있다 — 남한에 있는 유일한 고구려비다.
【그래서】 중국의 남조와 북조 양쪽에 모두 사신을 보냈다. 북위가 장수왕을 「고려왕」으로 책봉하며 남조보다 높은 서열을 주었다.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외교였다.
【남은 것】 고구려가 가장 넓었던 때다. 북으로 쑹화강, 서로 요하, 남으로 아산만과 죽령을 잇는 선까지였다.
다만 평양 천도가 남긴 것도 있다. 만주의 옛 기반과 거리가 생기면서 뒷날 나라가 안에서 갈릴 때 그것이 약점이 된다. 668년 연개소문의 아들들이 갈렸을 때 나라가 한 달 만에 무너진 것도 그 연장에서 읽는 견해가 있다.
지도에서 보기: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알라리크 아틸라 아우구스티누스 찬드라굽타 2세 광개토대왕 테오도시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