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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 서쪽은 게르만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황제는 게르만 출신 장군의 허수아비가 됐고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백제와의 오랜 각축, 그리고 후연·거란과의 국경 다툼이 겹쳤다. 신라가 왜의 침입에 구원을 요청한 것이 남정의 계기가 됐다.
결과고구려가 만주와 한반도 중부를 아울렀다. 신라는 고구려의 영향 아래 들어간다.
북아프리카 히포의 주교. 방탕했던 젊은 시절을 「고백록」에 그대로 적었다 — 서양 최초의 자서전이다.
인도의 고전기라 불리는 시대다. 이때 영이 수학 기호로 쓰이고 십진법이 정리됐다. 칼리다사가 시를 쓰고 나란다에 대학이 섰다.
열여덟에 즉위해 요동과 만주 동부, 한강 이북을 확보했다. 아버지 왕이 전사한 나라를 물려받아 스무 해 만에 뒤집었다.
이교 제의를 금지하고 니케아 신조를 강제했다. 죽으며 제국을 두 아들에게 나눴고, 동서 로마는 다시 합쳐지지 않았다.
로마군에 복무했던 고트족 지휘관이었다. 약속받은 땅과 봉급을 받지 못하자 로마로 향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400 · 인도의 황금기
인도의 고전기라 불리는 시대다. 이때 영이 수학 기호로 쓰이고 십진법이 정리됐다. 칼리다사가 시를 쓰고 나란다에 대학이 섰다.
【그때 그 자리】 4세기 말 굽타 제국이다. 아버지 사무드라굽타가 넓혀 놓은 나라를 물려받았다.
「비크라마디티야 — 용맹의 태양」이라 불렸다.
【왜 그렇게 됐나】 서쪽 사카족(서(西)크샤트라파)을 멸했다. 400년 가까이 인도 서부를 쥐고 있던 세력이다.
그것으로 아라비아해 항구를 얻었다. 로마와 페르시아로 가는 바닷길이 열렸다.
혼인으로도 넓혔다. 딸을 데칸의 바카타카 왕에게 시집보내 남쪽을 안정시켰다.
【어떻게 흘렀나】 그의 궁정에 「아홉 보석(나바라트나)」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가운데 칼리다사가 있다. 「샤쿤탈라」를 쓴 시인으로, 산스크리트 문학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괴테가 그 작품을 읽고 감탄한 글을 남겼다.
수학과 천문도 이때다. 십진법 자릿값 체계와 0이 이 무렵 인도에서 자리를 잡는다. 그것이 아라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가 지금 우리가 쓰는 숫자가 된다.
중국 승려 법현이 399년부터 인도를 다녀갔다. 굽타 치하를 직접 보고 적었다 — 여행에 통행증이 필요 없고, 사형이 없으며, 벌은 대개 벌금이고, 병원이 있어 가난한 이를 무료로 치료한다고 썼다.
외국인의 기록이라 이상화됐을 수 있으나, 당시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눈에 띄는 서술이다.
【그래서】 델리에 「철기둥」이 서 있다. 높이 7m, 무게 6톤이다. 이 왕을 기려 세웠다는 명문이 있다.
1,600년을 밖에 서 있는데 녹슬지 않았다. 인 함량이 높아 표면에 보호막이 생긴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야금 수준을 보여 주는 물건으로 자주 인용된다.
【남은 것】 「인도의 황금기」라 부른다. 다만 그 말에는 조심할 데가 있다.
카스트가 이 시기에 오히려 굳어졌다. 여성의 지위도 앞선 시대보다 내려갔다는 연구가 있다.
제국은 5세기 중엽부터 훈족(에프탈)의 침입으로 흔들리다 무너졌다.
그 뒤 인도가 다시 하나로 묶이는 데 1,000년 넘게 걸린다.
지도에서 보기: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아우구스티누스 광개토대왕 테오도시우스 알라리크 장수왕 근초고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