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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 서쪽은 게르만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황제는 게르만 출신 장군의 허수아비가 됐고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동로마에서 받던 공물이 끊기자 아틸라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로마 황녀의 구혼 편지를 구실로 제국의 절반을 요구했다.
결과카탈라우눔에서 저지됐고 아틸라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아버지가 만든 힘을 남쪽으로 돌렸다. 79년을 다스렸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450 · 신의 채찍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그때 그 자리】 5세기 훈족은 유럽 동쪽 초원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쪽으로 밀자 게르만 부족들이 로마 국경으로 쏟아졌다 — 민족대이동이다.
434년 형과 함께 왕이 됐고 445년 형을 죽이고 혼자 남았다.
【왜 그렇게 됐나】 동로마에 조공을 요구했다. 처음 금 350파운드에서 시작해 2,100파운드까지 올렸다.
돈을 받으면서도 계속 쳤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뚫지 못했으나 발칸 일대를 초토화했다.
【어떻게 흘렀나】 450년 서로마 황제의 누이 호노리아가 그에게 반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하려 도움을 청한 것이다.
아틸라는 그것을 청혼으로 받아들이고 지참금으로 서로마의 절반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갈리아로 진격했다.
451년 카탈라우눔 평원. 로마 장군 아이티우스가 서고트족과 손잡고 맞섰다 — 로마와 게르만이 함께 훈족과 싸운 것이다.
양쪽 다 크게 다쳤고 아틸라가 물러났다. 결정적 승리는 아니었으나 서진이 멈췄다.
452년 이탈리아로 내려가 아퀼레이아를 지웠다. 그때 피난한 사람들이 석호로 들어가 세운 것이 베네치아라는 전승이 있다.
로마 앞에서 교황 레오 1세를 만난 뒤 물러났다. 설득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역병과 보급 문제 때문이라는 설명이 갈린다.
【그래서】 453년 혼인 첫날밤에 죽었다. 코피가 목으로 넘어가 질식했다는 기록이다. 암살설도 있다.
제국은 곧 무너졌다. 아들들이 갈렸고 예속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남은 것】 「신의 채찍」이라 불렸다. 기독교 세계가 자기들의 죄를 벌하러 온 도구로 여겼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야만의 상징이 됐고, 헝가리에서는 영웅으로 남았다 — 아틸라가 지금도 흔한 남자 이름이다.
그가 직접 무너뜨린 것보다, 그가 밀어낸 게르만 부족들이 로마를 무너뜨린 쪽이 크다. 서로마가 망하는 것이 그가 죽고 23년 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