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틸라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서로마의 붕괴

제국이 동서로 갈라진 뒤 서쪽은 게르만 이동을 감당하지 못했다. 황제는 게르만 출신 장군의 허수아비가 됐고 속주가 하나씩 떨어져 나갔다.

한반도

삼국의 각축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전쟁 1건

훈족의 침입434 – 453
훈 제국 (아틸라) vs 서로마·서고트 연합

동로마에서 받던 공물이 끊기자 아틸라가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서로마 황녀의 구혼 편지를 구실로 제국의 절반을 요구했다.

카탈라우눔 451이탈리아 침공 452

결과카탈라우눔에서 저지됐고 아틸라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20년 · 발칸에서 갈리아까지 휩쓸었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아틸라장군450 · 훈족 왕
406 – 453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 동로마에서 막대한 공물을 받아냄
  • 갈리아까지 진격
  • 이탈리아 침공 직후 급사
장수왕정치427 · 고구려 20대 왕
394 – 491

수도를 국내성에서 평양으로 옮겨 아버지가 만든 힘을 남쪽으로 돌렸다. 79년을 다스렸다.

  • 427년 평양 천도
  • 475년 백제 한성 함락
  • 광개토왕릉비를 세움

그 무렵의 사건

455
반달족의 로마 약탈
카르타고에서 건너온 반달족이 2주 동안 로마를 털었다. 「반달리즘」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게르만계 반달족은 갈리아와 히스파니아를 거쳐 429년 북아프리카로 건너가 카르타고에 왕국을 세우고 지중해 해적이 됐다. 가이세리크 왕은 황제가 살해된 틈에 함대를 이끌고 테베레강을 올라왔다. 교황 레오 1세가 살인과 방화만은 막았으나 판테온의 청동 지붕과 예루살렘 신전의 보물, 황후와 공주들까지 실려 갔다. 534년 벨리사리우스가 왕국을 멸망시켰다.
427
나란다 대학
승려 1만 명이 배우던 곳.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
교사 2천 명과 학생 1만 명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티베트·한국·동남아시아에서 유학이 왔다. 신라의 혜초도 인도를 다녀와 왕오천축국전을 남겼다. 1197년 침입으로 불탔고 도서관이 몇 달을 탔다고 전한다.
410
로마 약탈
알라리크의 서고트족이 800년 만에 로마를 점령해 사흘 동안 약탈했다.
발칸에서 굶주리던 서고트족은 이탈리아로 내려와 세 차례 로마를 포위했고, 8월 24일 밤 살라리아 문이 열렸다. 대규모 학살은 없었지만 「영원한 도시」가 무너졌다는 충격은 제국 전체를 흔들었다. 히에로니무스는 베들레헴에서 「온 세계를 사로잡은 도시가 사로잡혔다」고 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사건에 답하려 「신국론」을 썼다.
512
신라, 우산국 복속
이사부가 울릉도와 독도를 아우르던 우산국을 신라에 편입시켰다. 독도가 한국사에 들어온 첫 기록이다.
flag

교역로 4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아틸라

인물 · 450 · 신의 채찍

갈리아까지 밀고 들어와 로마를 떨게 했다. 그가 급사하자 훈 제국은 곧 흩어졌다.

【그때 그 자리】 5세기 훈족은 유럽 동쪽 초원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이 서쪽으로 밀자 게르만 부족들이 로마 국경으로 쏟아졌다 — 민족대이동이다.

434년 형과 함께 왕이 됐고 445년 형을 죽이고 혼자 남았다.

【왜 그렇게 됐나】 동로마에 조공을 요구했다. 처음 금 350파운드에서 시작해 2,100파운드까지 올렸다.

돈을 받으면서도 계속 쳤다. 콘스탄티노플 성벽은 뚫지 못했으나 발칸 일대를 초토화했다.

【어떻게 흘렀나】 450년 서로마 황제의 누이 호노리아가 그에게 반지를 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원치 않는 혼인을 피하려 도움을 청한 것이다.

아틸라는 그것을 청혼으로 받아들이고 지참금으로 서로마의 절반을 요구했다. 거절당하자 갈리아로 진격했다.

451년 카탈라우눔 평원. 로마 장군 아이티우스가 서고트족과 손잡고 맞섰다 — 로마와 게르만이 함께 훈족과 싸운 것이다.

양쪽 다 크게 다쳤고 아틸라가 물러났다. 결정적 승리는 아니었으나 서진이 멈췄다.

452년 이탈리아로 내려가 아퀼레이아를 지웠다. 그때 피난한 사람들이 석호로 들어가 세운 것이 베네치아라는 전승이 있다.

로마 앞에서 교황 레오 1세를 만난 뒤 물러났다. 설득 때문이라는 이야기와, 역병과 보급 문제 때문이라는 설명이 갈린다.

【그래서】 453년 혼인 첫날밤에 죽었다. 코피가 목으로 넘어가 질식했다는 기록이다. 암살설도 있다.

제국은 곧 무너졌다. 아들들이 갈렸고 예속 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남은 것】 「신의 채찍」이라 불렸다. 기독교 세계가 자기들의 죄를 벌하러 온 도구로 여겼다는 뜻이다.

서양에서는 야만의 상징이 됐고, 헝가리에서는 영웅으로 남았다 — 아틸라가 지금도 흔한 남자 이름이다.

그가 직접 무너뜨린 것보다, 그가 밀어낸 게르만 부족들이 로마를 무너뜨린 쪽이 크다. 서로마가 망하는 것이 그가 죽고 23년 뒤다.

지도에서 보기: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장수왕 조충지 알라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