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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왜참회왕 에드워드가 후사 없이 죽자 세 사람이 왕위를 주장했다.
결과해럴드가 북쪽에서 노르웨이군을 꺾고 400km를 남하해 헤이스팅스에서 졌다. 잉글랜드의 지배층·언어·법이 통째로 바뀌었고, 영어에 프랑스어 어휘가 쏟아져 들어왔다.
왜셀주크 튀르크가 아나톨리아로 밀고 들어오자 동로마 황제가 직접 군을 이끌고 나섰다.
결과황제가 사로잡히고 아나톨리아를 잃었다. 이 패배가 십자군을 부르는 계기가 된다.
재정난과 군사력 약화를 제도로 풀려 했다. 개혁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그가 물러나자 대부분 폐지됐다.
노르망디 공의 사생아로 태어나 잉글랜드 왕이 됐다. 헤이스팅스 한 번의 전투가 잉글랜드의 지배층과 언어를 통째로 갈았다.
신법을 비판하다 여러 번 유배됐다. 시·산문·글씨·그림에 모두 능했고, 황주 유배 시절의 「적벽부」가 대표작이다.
몽계필담을 쓴 박학한 관료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069 · 송을 고치려다 나라를 갈라놓은 개혁
재정난과 군사력 약화를 제도로 풀려 했다. 개혁은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그가 물러나자 대부분 폐지됐다.
【그때 그 자리】 11세기 북송. 겉으로는 풍요로웠으나 안이 곪아 있었다.
관리가 너무 많았고(용관), 군대가 너무 많았으며(용병), 거란과 서하에 해마다 은과 비단을 보냈다(세폐). 재정이 만성 적자였다.
【왜 그렇게 됐나】 1069년 신종이 왕안석을 등용했다. 「신법」이다.
청묘법 — 봄에 나라가 농민에게 싼 이자로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에 받는다. 고리대를 막으려는 것이다.
시역법 — 나라가 물건을 사서 값이 오를 때 풀어 물가를 잡는다.
모역법 — 부역을 돈으로 대신 내게 하고 그 돈으로 사람을 고용한다. 관호와 사원도 내게 했다.
방전균세법 — 토지를 다시 측량해 숨긴 땅에도 세금을 매긴다.
보갑법 — 열 집을 한 단위로 묶어 자경과 병역을 맡긴다.
【어떻게 흘렀나】 재정이 좋아졌다. 그런데 반발이 거셌다.
사마광과 소식이 앞장섰다. 나라가 백성과 이익을 다투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었다. 실무에서도 문제가 났다 — 청묘법의 이자가 지방에서 강제 할당으로 변질돼 오히려 농민을 괴롭혔다.
신법당과 구법당으로 갈렸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법을 뒤집었다.
1076년 왕안석이 물러났고, 1085년 신종이 죽자 사마광이 신법을 모두 폐지했다. 그러다 다시 신법당이 돌아와 구법당을 명단으로 만들어 탄압했다.
【그래서】 이 당쟁이 40년을 갔다. 그 끝에 1127년 금이 쳐들어와 황제 둘이 끌려간다(정강의 변).
북송이 망한 원인을 신법에서 찾는 견해와, 신법을 막은 쪽에서 찾는 견해가 오래 겨뤘다.
【남은 것】 20세기 들어 재평가됐다.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빈부를 조절하려 한 시도로 읽힌 것이다.
「중국사에서 가장 이른 근대적 개혁」이라 부른 학자도 있고, 계획경제의 원형으로 본 이도 있다.
본인은 청렴했다. 옷을 갈아입지 않고 세수를 하지 않아 얼굴이 검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고집이 세서 「요불변(拗不變) — 꺾여도 변하지 않는다」는 별명이 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