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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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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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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공화정의 위기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한반도

한사군과 열국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술라장군BC 82 · 로마로 군대를 몰고 온 첫 사람
BC 138 – BC 78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 로마 진군 BC 88 — 전례가 됨
  • 살생부로 정적 수천 명 처형
  • 독재관이 됐다가 스스로 물러남
사마천사상BC 91 · 치욕을 견디고 역사를 쓴 사람
BC 145 – BC 86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 「사기」 130권 — 3,000년을 다룬 통사
  • 기전체 — 이후 2,000년 동아시아 역사서의 형식
  • 「인간은 한 번 죽는데,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키케로정치BC 63 · 공화정을 지키려다 죽은 로마 최고의 웅변가
BC 106 – BC 43

카틸리나의 음모를 폭로하고 안토니우스를 탄핵했다. 그의 라틴어 문장은 유럽 산문의 교과서가 됐다.

  • 집정관으로 카틸리나 음모 분쇄(BC 63)
  • 「국가론」「의무론」 등 철학·수사학 저작
  • 안토니우스 비판(필리피카)으로 처형
폼페이우스장군BC 60 · 카이사르와 맞선 로마의 「위대한」 장군
BC 106 – BC 48

지중해 해적을 석 달 만에 소탕하고 동방을 정복했으나, 삼두정치가 깨진 뒤 파르살루스에서 카이사르에게 졌다.

  • 지중해 해적 소탕(BC 67)
  • 미트리다테스 격파, 시리아·유대 병합
  • 파르살루스 패배 후 이집트에서 암살

그 무렵의 사건

BC 100
옥저와 동예
고조선이 무너진 뒤 함경도·강원도 북부 동해안 지역에는 옥저와 동예라는 작은 나라들이 자리 잡았다. 둘 다 왕이 없이 각 읍락을 우두머리(읍군·삼로)가 다스렸다.
옥저는 소금과 해산물이 풍부해 고구려에 공물로 바쳤고, 신랑이 어릴 신부를 미리 데려가 키운 뒤 성인이 되면 정식 혼인하는 민며느리제라는 독특한 풍습이 있었다. 동예는 다른 부족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면 노비나 가축으로 배상하게 하는 책화라는 제도와, 매년 10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무천이라는 축제로 알려져 있다. 두 나라 모두 중앙집권 국가로 성장하지 못한 채 훗날 고구려에 흡수됐다.
BC 100
삼한(마한·진한·변한)
한반도 남부에는 마한·진한·변한이라는 작은 나라들의 연맹체가 자리했다. 이들을 통틀어 삼한이라 부르며, 훗날 각각 백제·신라·가야로 발전해 나갔다.
삼한은 각 소국마다 정치를 맡는 우두머리(신지·읍차 등)와, 제사를 주관하는 천군이 따로 있는 제정 분리 사회였다. 천군이 다스리는 신성 구역인 소도에서는 죄인이 도망쳐 들어와도 함부로 잡아갈 수 없었다. 변한 지역은 철이 풍부해 낙랑·왜 등에 수출했으며, 이 철 생산 기반은 훗날 가야 연맹이 성장하는 밑거름이 됐다.
BC 44
카이사르 암살
원로원에서 살해됐다. 공화정 회복 대신 제국이 왔다.
공화정 회복을 노린 암살이 오히려 제정을 앞당겼다.
BC 27
아우구스투스
옥타비아누스가 첫 황제가 됐다. 200년의 로마 평화가 시작된다.
이후 200년간 지중해 전역에 큰 전쟁이 없었다. 도시와 도로와 수도교가 깔렸다.
BC 138
장건의 서역행
한 사람이 길을 열어 실크로드가 됐다.
한 무제가 흉노를 협공할 동맹을 찾아 장건을 보냈다. 13년 만에 돌아온 그는 동맹은 못 구했지만 서역의 나라들을 보고했고, 그 정보가 실크로드 교역의 시작이 됐다.
BC 146
카르타고와 코린토스
같은 해에 두 도시가 지워졌다.
로마가 카르타고를 불태우고 몇 달 뒤 코린토스도 파괴했다. 지중해 서쪽과 동쪽의 마지막 경쟁자가 함께 사라진 해로, 로마의 지중해 지배가 여기서 확정된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인도양 계절풍 항로BC 100 – 700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오간 것로마의 금화가 인도로 흘러가고 후추가 로마로 왔다. 로마 원로원이 금 유출을 걱정할 정도였다.
거점미오스호르모스 · 아덴 · 소코트라 · 무지리스

술라

인물 · BC 82 · 로마에 군대를 끌고 들어간 첫 사람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그때 그 자리】 BC 1세기 초 로마. 귀족파(옵티마테스)와 평민파(포풀라레스)가 갈려 있었다.

몰락한 귀족 집안에서 났다. 젊을 때 가난했고 배우들과 어울렸다.

유구르타 전쟁에서 마리우스의 부관으로 공을 세웠다. 유구르타를 붙잡아 온 것이 그였다 — 마리우스가 그 공을 가로챘다고 여겨 사이가 틀어졌다.

【왜 그렇게 됐나】 BC 88년 미트리다테스 전쟁의 지휘권을 받았다. 그런데 민회가 그것을 뒤집어 마리우스에게 넘겼다.

술라가 군대를 돌려 로마로 진군했다. 로마 역사에서 로마군이 로마를 친 첫 사례다.

그때까지 군대는 성벽 안으로 들어올 수 없었다. 장교들이 거의 다 따르기를 거부하고 떠났다 — 그래도 병사들은 따라갔다.

마리우스의 군 개혁 때문이다. 재산이 없는 사람도 병사가 되면서, 제대 후 땅을 받는 것이 지휘관에게 달렸다. 병사가 나라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동방으로 가서 미트리다테스를 꺾고 돌아왔다. 그 사이 로마는 마리우스파가 잡고 있었다.

BC 82년 다시 로마로 진군해 이겼다. 그리고 독재관이 됐다 — 기한이 없는 독재관은 처음이었다.

「프로스크립티오」를 시작했다. 명단을 광장에 붙이고, 거기 이름이 있으면 누구든 죽여도 되며 재산은 몰수해 나눈다는 것이다.

수천 명이 죽었다. 원한 때문에, 또는 그저 땅이 탐나서 이름이 올라간 경우도 많았다.

젊은 카이사르도 명단에 오를 뻔했다. 마리우스의 조카사위였기 때문이다. 주변의 청으로 빠졌는데, 술라가 「저 아이 안에 마리우스가 여럿 있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래서】 원로원의 권한을 키우고 호민관을 무력화하는 개혁을 했다. 귀족 공화정을 되살리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BC 79년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고 시골로 갔다. 이듬해 죽었다.

【남은 것】 그가 만든 제도는 곧 무너졌다.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그것을 되돌렸다.

무너지지 않은 것은 다른 쪽이다 — 군대를 가진 자가 로마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40년 뒤 카이사르가 루비콘을 건널 때, 그것이 전례 없는 일이 아니었다. 술라가 이미 두 번 했다.

공화정을 지키려 한 사람이 공화정을 죽이는 방법을 가르쳤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사마천 키케로 폼페이우스 카이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