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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해당 없음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성지 탈환을 호소했다. 「신이 그것을 원하신다」는 외침이 군중에서 터져 나왔다고 전한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인물 · 1120 · 앙코르와트를 세운 왕
물을 다스려 일어선 나라의 절정이었다. 해자 한 변이 1.5킬로미터인 사원을 자기 무덤으로 지었다. 돌 500만 톤을 40킬로미터 밖에서 수로로 실어 왔다.
【그때 그 자리】 12세기 초 크메르 제국. 앞선 왕들이 저수지와 수로를 파 놓아 벼를 한 해에 세 번 거뒀다.
물을 다스린 나라였다. 서바라이 저수지는 길이 8km 폭 2km다.
【왜 그렇게 됐나】 방계 왕족으로 태어나 1113년 경쟁자를 죽이고 왕이 됐다. 「코끼리 위에서 적의 머리를 베었다」고 비문에 적혀 있다.
정통성이 약했다. 그것을 신전으로 메웠다.
【어떻게 흘렀나】 앙코르와트는 30여 년에 걸쳐 지었다. 사암 500만 톤을 40km 떨어진 채석장에서 운하로 날랐다.
가운데 탑이 65m이고 해자를 포함한 넓이가 162헥타르다. 종교 건축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크다.
비슈누에게 바쳤다. 그전 왕들은 시바를 섬겼는데 그는 비슈누를 골랐다 — 새 정통성을 만드는 방법이었다.
구조가 우주를 본떴다. 가운데 탑이 메루산, 다섯 탑이 봉우리, 해자가 대양이다.
회랑 벽에 800m 길이의 부조가 있다. 「우유 바다 젓기」 신화와 왕의 행렬이 새겨져 있다.
그리고 서쪽을 향한다. 힌두 사원은 보통 동쪽을 보는데 이것만 서쪽이다. 서쪽이 죽음의 방향이라 왕의 무덤을 겸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그래서】 그는 완성을 보지 못하고 1150년쯤 죽었다. 대월(베트남)과 참파 원정에 실패한 뒤였다.
이후 참파의 침입으로 앙코르가 함락됐다가, 자야바르만 7세가 되찾는다.
【남은 것】 15세기에 도읍이 프놈펜으로 옮겨지며 앙코르는 숲에 덮였다. 다만 완전히 잊힌 것은 아니어서 승려들이 계속 살았다.
1860년 프랑스 박물학자 앙리 무오가 「발견」했다고 알려졌으나, 그전에 온 서양인 기록도 있고 현지인은 늘 알고 있었다.
캄보디아 국기에 앙코르와트가 그려져 있다. 국기에 건축물이 들어간 나라가 드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