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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해당 없음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인물 · BC 91 · 치욕을 견디고 역사를 쓴 사람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그때 그 자리】
기원전 2세기 후반 한 무제의 시대다. 영토가 사방으로 넓어지고 유교가 국가 이념이 됐다.
사마천의 아버지 사마담은 태사령이었다. 천문과 역법과 기록을 맡는 자리다. 그는 통사를 쓰려는 뜻을 품었으나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죽으면서 아들의 손을 잡고 그 일을 부탁했다.
사마천은 스무 살 무렵 천하를 돌아다녔다. 회음에서 한신의 옛일을 묻고, 초의 옛 땅에서 굴원이 몸을 던진 강을 보고, 노나라에서 공자의 유적을 봤다. 책에서만 얻지 않고 발로 확인한 것이다.
【왜 그렇게 됐나】
기원전 99년 사건이 터졌다.
장군 이릉이 5천 보병으로 흉노 8만과 여드레를 싸우다 화살이 떨어져 항복했다. 조정이 그를 비난했다.
사마천이 홀로 변호했다. 이릉이 적은 병력으로 그만큼 싸웠으니 죄를 물을 일이 아니며, 항복은 뒷날을 도모하려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무제가 격노했다. 사마천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사형을 면하는 길이 둘이었다. 돈을 내거나 궁형을 받는 것이다. 그는 돈이 없었다.
궁형은 죽는 것보다 못한 형벌로 여겨졌다. 사대부가 그것을 받고 사는 일은 없다시피 했다. 그런데 그는 살기를 택했다.
【어떻게 흘렀나】
뒷날 친구 임안에게 보낸 편지에 그 이유를 적었다.
사람은 한 번 죽는데, 그 죽음이 태산보다 무거울 수도 있고 기러기 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다. 자기가 여기서 죽으면 아홉 마리 소에서 터럭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으니, 책을 끝내지 못하고 죽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옥에서 나와 중서령이 됐다. 환관이 맡는 자리다. 그 자리에서 글을 이어 썼다.
기원전 91년 무렵 사기 130권을 마쳤다. 황제 시대부터 무제까지 3천 년을 다뤘다.
【그래서】
이 책의 형식이 이후 2천 년의 표준이 됐다.
기전체다. 본기는 제왕, 세가는 제후, 열전은 개인, 표는 연표, 서는 제도를 다룬다. 시간 순으로만 늘어놓지 않고 사람과 제도로 나눠 본 것이다. 이후 중국의 정사 24종이 모두 이 형식을 따랐고, 삼국사기와 고려사도 그렇다.
내용은 더 놀랍다.
열전에 자객과 상인과 점쟁이와 광대가 들어 있다. 유협열전은 법을 어기면서도 의를 지킨 사람들을 다뤘다. 화식열전은 돈 버는 일을 정면으로 다뤘다. 유교 국가의 관찬 역사에서 나올 법하지 않은 것들이다.
자기를 벌한 무제에 대해서도 썼다. 봉선을 하고 불로장생을 구하는 모습을 담담히 적었다. 비난하지 않았는데 읽으면 드러난다.
항우를 본기에 넣었다. 황제가 아니었는데도 그렇게 했다. 실제 힘이 어디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남은 것】
그가 언제 죽었는지 기록이 없다.
사기는 이후 문학으로도 읽혔다. 사면초가, 배수진, 파부침주, 토사구팽, 완벽 같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기록하는 사람이 권력에 대해 어디까지 쓸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이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그는 대가를 치르고 썼다.
조선의 사관들이 왕이 못 보게 한 실록을 남긴 것도 같은 계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권력이 아니라 기록자가 정한다는 원칙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술라 키케로 폼페이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