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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대항해와 인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3건

이탈리아 전쟁1494 – 1559
프랑스 vs 합스부르크·스페인

부유하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65년을 다퉜다.

포르노보 1495파비아 1525로마 약탈 1527

결과화약·상비군·용병이 결합한 근대 전쟁의 실험장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혼란 속에서 쓰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 전쟁으로 끝났다.

65년 · 근대 전쟁의 시작
찰디란 전투1514
오스만 제국 vs 사파비 왕조

순니파 오스만과 시아파 사파비, 두 이슬람 대제국이 종교적 정통성과 아나톨리아 동부의 패권을 두고 충돌했다.

찰디란 전투 1514

결과오스만은 대포와 화승총 부대를 앞세워 사파비의 전통적인 기병 중심 군대를 격파했다.

하루 · 오스만이 동부 아나톨리아를 확보, 두 제국 국경이 사실상 확정됨
아즈텍 정복1519 – 1521
에스파냐 (코르테스)·틀락스칼라 vs 아즈텍

금을 찾던 코르테스가 아즈텍에 눌려 있던 부족들을 규합했다. 천연두가 먼저 도시를 무너뜨렸다.

슬픈 밤 1520테노치티틀란 1521

결과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고 에스파냐가 아메리카 본토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년 · 천연두가 먼저 도시를 무너뜨렸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5명

루터사상1517 · 수도사
1483 – 1546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 95개조 반박문 1517
  •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 만인사제설
에라스뮈스사상1516 · 「우신예찬」을 쓴 북방 인문주의의 왕자
1466 무렵 – 1536

교회의 부패를 풍자하고 그리스어 신약을 펴냈다. 루터에게 길을 열었지만 분열은 거부했다.

  • 「우신예찬」(1511)
  • 그리스어 신약성서 교정판(1516)
  • 루터와 자유의지 논쟁
목테수마 2세정치1519 · 코르테스를 맞은 황제
1466 무렵 – 1520

인구 20만의 도시를 다스렸다. 당시 유럽 어느 도시보다 컸다. 에스파냐인을 궁에 들였다가 볼모가 됐고 성난 자기 백성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 테노치티틀란 전성기
  • 코르테스를 손님으로 맞음
  • 죽음의 경위는 기록이 엇갈린다
마젤란탐험1520 ·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 항해를 이끈 탐험가
1480 무렵 – 1521

남아메리카 끝의 해협을 찾아 태평양에 이름을 붙였다. 필리핀에서 전사했으나 남은 배 한 척이 세비야로 돌아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 마젤란 해협 통과(1520)
  • 태평양 횡단, 필리핀 도착(1521)
  • 엘카노가 지휘한 빅토리아호의 세계일주 완성(1522)
콰우테목장군1521 · 마지막까지 싸운 사람
1496 무렵 – 1525

스물다섯에 아즈텍의 마지막 지도자가 되어 80일 포위를 버텼다. 금을 어디 숨겼느냐며 발을 불에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 지금 멕시코에서 저항의 상징이다.

  • 테노치티틀란 80일 농성
  • 고문 끝에도 말하지 않음
  • 1525년 교수형
마키아벨리사상1513 · 「군주론」으로 정치를 도덕에서 떼어 낸 사상가
1469 – 1527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 — 피렌체 외교관이 실직 후 쓴 얇은 책이 근대 정치학의 출발이 됐다.

  • 피렌체 공화국 서기관, 외교 사절
  • 「군주론」(1513), 「로마사 논고」
  • 국민군 창설 시도
코르테스장군1521 ·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정복자
1485 – 1547

수백 명의 병사와 원주민 동맹, 천연두로 테노치티틀란을 함락했다. 아즈텍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세워졌다.

  • 베라크루스 상륙, 배를 불태움(1519)
  • 틀락스칼라 동맹, 목테수마 억류
  • 테노치티틀란 함락(1521)
미켈란젤로예술1512 · 다비드와 시스티나 천장을 만든 르네상스의 거장
1475 – 1564

조각가를 자처했으나 교황의 명으로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고, 여든 넘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 「피에타」(1499), 「다비드」(1504)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512)
  • 「최후의 심판」, 성 베드로 대성당 돔
구스타브 바사정치1523 · 칼마르 동맹을 깨고 스웨덴을 독립시킨 왕
1496 – 1560, 재위 1523 – 1560

덴마크가 주도하던 칼마르 동맹에 맞서 반란을 이끌었다. 1523년 스웨덴 왕으로 추대되며 근대 스웨덴 왕국의 시조가 됐다.

  • 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반란 주도
  • 1523년 스웨덴 독립·즉위
  • 바사 왕조를 열어 이후 100여 년간 이어짐
바부르정치1526 · 무굴을 세운 사람
1483 – 1530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피를 함께 받았다. 사마르칸트를 되찾으려다 실패하고 카불로 밀려났다가 인도로 내려갔다. 회고록을 직접 썼다.

  • 파니파트 승리
  • 바부르나마 — 왕이 직접 쓴 회고록
  • 인도의 더위와 과일에 대해 솔직하게 적었다
술레이만 대제정치1529 · 오스만 제국의 절정을 이끈 「입법자」
1494 – 1566, 재위 1520 – 1566

베오그라드와 로도스를 취하고 빈을 포위했다. 법전을 정비하고 이스탄불을 건축으로 채워 튀르크인은 그를 카누니(입법자)라 부른다.

  • 모하치 승리, 헝가리 정복(1526)
  • 빈 포위(1529)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오스만 법전 정비
카를 5세정치1530 · 「해가 지지 않는」 첫 제국을 다스린 황제
1500 – 1558, 재위 1519 – 1556

에스파냐·네덜란드·오스트리아·나폴리·신대륙을 한 손에 쥐었다. 루터를 심문했고 프랑스와 오스만과 싸우다 지쳐 수도원으로 물러났다.

  • 보름스 국회에서 루터 심문(1521)
  • 파비아에서 프랑스 왕 생포(1525)
  • 제국을 두 갈래로 나누고 퇴위
아타우알파정치1532 · 금으로 방을 채운 왕
1502 무렵 – 1533

형과 5년을 싸워 이긴 직후 168명의 에스파냐인에게 사로잡혔다.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두 개를 은으로 채웠는데도 죽임을 당했다.

  • 카하마르카에서 사로잡힘
  • 몸값을 다 치르고도 처형
  • 그의 죽음으로 잉카가 무너졌다
피사로장군1533 · 잉카 제국을 정복한 문맹의 정복자
1478 무렵 – 1541

168명으로 카하마르카에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방 하나 가득한 금을 받은 뒤 죽였다. 쿠스코가 무너지고 리마가 세워졌다.

  •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우알파 생포(1532)
  • 쿠스코 점령(1533), 리마 건설(1535)
  • 정복자들 내분 중 암살
이스마일 1세정치1501 · 시아파를 국교로 삼아 오늘의 이란을 만든 사파비 왕조의 창건자
1487 – 1524, 재위 1501 – 1524

14세에 타브리즈를 점령하고 샤가 됐다. 12이맘 시아파를 강제해 수니파 이웃들과 갈라선 페르시아의 정체성이 여기서 나왔다.

  • 타브리즈 점령, 사파비 왕조 창건(1501)
  • 12이맘 시아파 국교화
  • 찰디란에서 오스만에 패배(1514)
헨리 8세정치1534 · 이혼 문제로 영국 교회를 로마에서 떼어 낸 왕
1491 – 1547, 재위 1509 – 1547

여섯 번 결혼하고 두 왕비를 처형했다. 교황이 이혼을 거부하자 스스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됐다.

  • 수장령(1534) — 영국 국교회 성립
  • 수도원 해산과 재산 몰수
  • 왕비 앤 불린·캐서린 하워드 처형
구루 나낙사상1499 · 시크교를 창시한 구루
1469 – 1539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신 앞의 평등과 카스트 부정을 설파하며 시크교를 열었다. 그의 가르침은 이후 아홉 명의 구루를 거쳐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로 집대성됐다.

  • 카스트 제도와 우상숭배를 비판
  • 공동 식사(랑가르) 전통을 시작해 신분 평등을 실천
  • 펀자브 지역에서 시크교 공동체의 뿌리를 세움
바스쿠 다가마탐험1498 ·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은 첫 유럽인
1460 무렵 – 1524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캘리컷에 도착했다. 향료 무역의 길이 바뀌었고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주인이 됐다.

  • 인도 항로 개척, 캘리컷 도착(1498)
  • 제2차 항해에서 무력 통상 강요(1502)
  • 인도 부왕으로 코친에서 사망
신사임당예술1540 · 조선의 화가
1504 – 1551

풀과 벌레를 그렸다. 당시 여성의 그림이 남은 것 자체가 드물다. 아들 이이를 길렀다는 것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오래된 문제다.

  • 초충도 — 풀과 벌레
  •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함
  • 친정에서 오래 지내며 작품을 남겼다
아스키아 무함마드정치1493 · 송가이 제국을 넓힌 왕
1443?년 무렵 – 1538

장군으로 손니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랐다. 메카 순례 뒤 팀북투를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키웠다.

  • 1493년 쿠데타로 아스키아 왕조를 엶
  • 1497년 메카 순례, 학자와 제도를 데려옴
  • 송가이를 서아프리카 역사상 최대 영토로 확장
칼뱅사상1541 · 제네바를 개신교의 로마로 만든 종교개혁가
1509 – 1564

예정설과 엄격한 교회 규율. 그의 가르침은 네덜란드·스코틀랜드·뉴잉글랜드로 퍼져 근대 서구의 정신을 만들었다.

  • 「기독교 강요」(1536)
  • 제네바 교회 개혁과 신정 통치
  • 장로교·개혁교회의 뿌리
콜럼버스정치1492 · 제노바 항해사
1451 – 1506

인도로 가는 서쪽 길을 찾다 아메리카에 닿았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었다.

  • 1492년 아메리카에 닿음
  • 네 차례 대서양 항해
  •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음
이사벨 1세정치1492 · 에스파냐를 하나로 묶고 콜럼버스를 후원한 여왕
1451 – 1504, 재위 1474 – 1504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결혼해 두 왕국을 합쳤고, 그라나다를 정복한 그해 콜럼버스에게 배 세 척을 내주었다.

  • 페르난도와 결혼, 에스파냐 통합(1469)
  • 그라나다 정복, 레콩키스타 완성(1492)
  • 콜럼버스 항해 후원, 유대인 추방령
코페르니쿠스과학1543 · 해를 가운데 놓은 사람
1473 – 1543

폴란드의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죽는 해에야 책을 냈다. 지구가 도는 편이 계산이 훨씬 단순하다는 것이 그의 근거였다.

  •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죽기 직전 출판
  •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이 위에서 시작했다
베살리우스과학1543 · 직접 해부한 해부학자
1514 – 1564

시신을 직접 해부해 갈레노스 이래 1,300년 된 오류를 바로잡았다.

  •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1543
  • 근대 해부학 확립
  • 순례길에 조난해 객사

그 무렵의 사건

1517
종교개혁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유럽이 종교로 갈라진다.
1522
마젤란의 세계일주
마젤란 함대의 마지막 배 빅토리아호가 3년 만에 세비야로 돌아왔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몸으로 증명됐다.
1519년 다섯 척 270명이 떠나 남미 끝 해협을 찾았고, 석 달 넘게 육지 없는 바다를 건너 「태평양」이라 이름 붙였다. 마젤란은 필리핀 막탄에서 죽었고 엘카노가 한 척을 이끌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돌았다. 돌아온 18명은 날짜가 하루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 실은 향료로 항해 비용을 뽑았지만 에스파냐는 향료 제도를 포르투갈에 팔았다.
1511
말라카가 넘어가다
해협 하나를 쥐면 아시아 무역을 쥔다.
포르투갈이 40일 만에 말라카를 빼앗았다. 유럽이 아시아 바다에 처음으로 거점을 박은 사건이다. 쫓겨난 술탄의 사람들은 조호르로 옮겨 갔고, 향료의 이익을 좇아 네덜란드와 영국이 뒤따라 들어온다.
1523
칼마르 동맹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를 하나로 묶었던 동맹이 무너졌다
1397년 세 스칸디나비아 왕국이 한 왕을 섬기기로 맺은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가 사실상 주도권을 쥐면서 스웨덴 귀족들의 불만을 샀다. 1520년 덴마크의 스웨덴인 대학살(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구스타브 바사가 반란을 이끌어 1523년 스웨덴을 독립시키며 동맹이 사실상 끝났다.
1526
대서양 노예무역
16~19세기,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약 1,250만 명이 강제로 끌려갔다.
포르투갈이 1526년 첫 직항 노예선을 아메리카로 보낸 뒤 약 350년간 이어졌다. 유럽에서 무기·직물을 아프리카로, 노예를 아메리카로, 설탕·면화를 다시 유럽으로 나르는 삼각무역의 한 축이었다. 항해 중 사망률이 10~15%에 달했다.
1527
마자파힛
동남아 최대 해상제국이 내분과 이슬람화로 저물었다
가자 마다 재상 시절 오늘날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아우르는 해상 세력권을 이뤘던 마자파힛은 15세기 후반 왕위 계승 다툼과 이슬람 항구 도시국가들의 성장으로 쇠퇴했다. 1527년 드막 술탄국이 마지막 수도를 함락하며 사실상 소멸했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루터

인물 · 1517 · 수도사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그때 그 자리】

1517년의 유럽은 교회가 국가보다 넓었다. 로마 교회는 유럽 전역에서 세금을 걷고 자체 법정을 운영했다. 신성로마제국은 300개가 넘는 영방으로 쪼개져 황제의 힘이 약했고 그만큼 교회의 힘이 컸다.

문제는 돈이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성 베드로 대성당을 새로 짓고 있었다.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는 자리를 사느라 푸거 가문에 빚을 졌다. 두 사람의 필요가 만난 결과가 면벌부 판매였다. 테첼이라는 수도사가 독일을 돌며 팔았다. 돈이 궤에 떨어져 소리를 내는 순간 영혼이 연옥에서 튀어 오른다는 문구가 붙었다.

【왜 그렇게 됐나】

비텐베르크 대학 신학교수 마르틴 루터는 수도사 시절 자기 죄를 감당하지 못해 괴로워한 사람이었다. 그가 로마서를 읽다 얻은 결론은, 인간이 행위로 구원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여겨진다는 것이었다. 이 결론에서 보면 면벌부는 신학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어떻게 흘렀나】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95개 논제를 내놓았다. 원래 라틴어로 쓴 학자들 사이의 토론 제안이었다. 그런데 누군가 독일어로 옮겨 인쇄했고 두 주 만에 독일 전역, 두 달 만에 유럽으로 퍼졌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나온 지 60여 년 되던 때였다.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서 철회를 요구받자 루터는 거부했다. 파문되고 법의 보호 밖에 놓였지만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그를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겼다. 루터는 거기서 열 달 만에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옮겼다.

【그래서】

성서를 사제의 통역 없이 읽을 수 있게 됐다. 이건 종교만의 일이 아니었다. 읽을 이유가 생기자 문해력이 올라갔고 루터가 쓴 독일어가 표준 독일어의 바탕이 됐다.

교회가 갈라졌다. 칼뱅이 제네바에서, 헨리 8세가 영국에서 각자의 이유로 로마와 결별했다. 가톨릭은 트리엔트 공의회로 내부를 정비했다.

그리고 전쟁이 이어졌다. 1524년 독일 농민전쟁, 1562년 프랑스 종교전쟁, 1618년 30년전쟁이다. 30년전쟁에서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다.

【남은 것】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이 신앙을 각 영방이 정하도록 하면서, 종교가 다른 나라들이 한 체제 안에 공존하는 방식이 만들어졌다. 오늘날 주권국가 체제의 출발점으로 이 조약을 드는 이유다.

루터 자신은 뒤로 갈수록 보수적이었다. 농민 봉기를 진압하라고 썼고 말년에는 유대인을 향한 험한 글을 남겼다. 그 글이 400년 뒤 나치에 인용됐다.

지도에서 보기: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에라스뮈스 목테수마 2세 마젤란 콰우테목 마키아벨리 코르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