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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대항해와 인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3건

이탈리아 전쟁1494 – 1559
프랑스 vs 합스부르크·스페인

부유하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65년을 다퉜다.

포르노보 1495파비아 1525로마 약탈 1527

결과화약·상비군·용병이 결합한 근대 전쟁의 실험장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혼란 속에서 쓰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 전쟁으로 끝났다.

65년 · 근대 전쟁의 시작
아즈텍 정복1519 – 1521
에스파냐 (코르테스)·틀락스칼라 vs 아즈텍

금을 찾던 코르테스가 아즈텍에 눌려 있던 부족들을 규합했다. 천연두가 먼저 도시를 무너뜨렸다.

슬픈 밤 1520테노치티틀란 1521

결과테노치티틀란이 함락되고 에스파냐가 아메리카 본토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년 · 천연두가 먼저 도시를 무너뜨렸다
테노치티틀란 함락1521
에스파냐·틀락스칼라 연합 vs 아즈텍

코르테스가 데려온 것은 500여 명이었다. 실제 병력은 아즈텍에 원한을 품은 원주민 수만 명이었다.

슬픈 밤80일 포위

결과싸움보다 병이 먼저였다. 천연두가 도시 안에 퍼져 인구가 급감했다. 코르테스는 호수에서 쓸 배 13척을 만들어 둑길을 무력화했다. 인구 20만의 도시가 80일 만에 무너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2명

마젤란탐험1520 ·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 항해를 이끈 탐험가
1480 무렵 – 1521

남아메리카 끝의 해협을 찾아 태평양에 이름을 붙였다. 필리핀에서 전사했으나 남은 배 한 척이 세비야로 돌아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 마젤란 해협 통과(1520)
  • 태평양 횡단, 필리핀 도착(1521)
  • 엘카노가 지휘한 빅토리아호의 세계일주 완성(1522)
목테수마 2세정치1519 · 코르테스를 맞은 황제
1466 무렵 – 1520

인구 20만의 도시를 다스렸다. 당시 유럽 어느 도시보다 컸다. 에스파냐인을 궁에 들였다가 볼모가 됐고 성난 자기 백성이 던진 돌에 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 테노치티틀란 전성기
  • 코르테스를 손님으로 맞음
  • 죽음의 경위는 기록이 엇갈린다
콰우테목장군1521 · 마지막까지 싸운 사람
1496 무렵 – 1525

스물다섯에 아즈텍의 마지막 지도자가 되어 80일 포위를 버텼다. 금을 어디 숨겼느냐며 발을 불에 지지는 고문을 받았다. 지금 멕시코에서 저항의 상징이다.

  • 테노치티틀란 80일 농성
  • 고문 끝에도 말하지 않음
  • 1525년 교수형
코르테스장군1521 · 아즈텍 제국을 무너뜨린 정복자
1485 – 1547

수백 명의 병사와 원주민 동맹, 천연두로 테노치티틀란을 함락했다. 아즈텍은 무너지고 그 자리에 누에바에스파냐 부왕령이 세워졌다.

  • 베라크루스 상륙, 배를 불태움(1519)
  • 틀락스칼라 동맹, 목테수마 억류
  • 테노치티틀란 함락(1521)
루터사상1517 · 수도사
1483 – 1546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 95개조 반박문 1517
  •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 만인사제설
구스타브 바사정치1523 · 칼마르 동맹을 깨고 스웨덴을 독립시킨 왕
1496 – 1560, 재위 1523 – 1560

덴마크가 주도하던 칼마르 동맹에 맞서 반란을 이끌었다. 1523년 스웨덴 왕으로 추대되며 근대 스웨덴 왕국의 시조가 됐다.

  • 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반란 주도
  • 1523년 스웨덴 독립·즉위
  • 바사 왕조를 열어 이후 100여 년간 이어짐
에라스뮈스사상1516 · 「우신예찬」을 쓴 북방 인문주의의 왕자
1466 무렵 – 1536

교회의 부패를 풍자하고 그리스어 신약을 펴냈다. 루터에게 길을 열었지만 분열은 거부했다.

  • 「우신예찬」(1511)
  • 그리스어 신약성서 교정판(1516)
  • 루터와 자유의지 논쟁
바부르정치1526 · 무굴을 세운 사람
1483 – 1530

티무르와 칭기즈 칸의 피를 함께 받았다. 사마르칸트를 되찾으려다 실패하고 카불로 밀려났다가 인도로 내려갔다. 회고록을 직접 썼다.

  • 파니파트 승리
  • 바부르나마 — 왕이 직접 쓴 회고록
  • 인도의 더위와 과일에 대해 솔직하게 적었다
마키아벨리사상1513 · 「군주론」으로 정치를 도덕에서 떼어 낸 사상가
1469 – 1527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 — 피렌체 외교관이 실직 후 쓴 얇은 책이 근대 정치학의 출발이 됐다.

  • 피렌체 공화국 서기관, 외교 사절
  • 「군주론」(1513), 「로마사 논고」
  • 국민군 창설 시도
미켈란젤로예술1512 · 다비드와 시스티나 천장을 만든 르네상스의 거장
1475 – 1564

조각가를 자처했으나 교황의 명으로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고, 여든 넘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 「피에타」(1499), 「다비드」(1504)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512)
  • 「최후의 심판」, 성 베드로 대성당 돔
술레이만 대제정치1529 · 오스만 제국의 절정을 이끈 「입법자」
1494 – 1566, 재위 1520 – 1566

베오그라드와 로도스를 취하고 빈을 포위했다. 법전을 정비하고 이스탄불을 건축으로 채워 튀르크인은 그를 카누니(입법자)라 부른다.

  • 모하치 승리, 헝가리 정복(1526)
  • 빈 포위(1529)
  • 쉴레이마니예 모스크, 오스만 법전 정비
카를 5세정치1530 · 「해가 지지 않는」 첫 제국을 다스린 황제
1500 – 1558, 재위 1519 – 1556

에스파냐·네덜란드·오스트리아·나폴리·신대륙을 한 손에 쥐었다. 루터를 심문했고 프랑스와 오스만과 싸우다 지쳐 수도원으로 물러났다.

  • 보름스 국회에서 루터 심문(1521)
  • 파비아에서 프랑스 왕 생포(1525)
  • 제국을 두 갈래로 나누고 퇴위
아타우알파정치1532 · 금으로 방을 채운 왕
1502 무렵 – 1533

형과 5년을 싸워 이긴 직후 168명의 에스파냐인에게 사로잡혔다.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두 개를 은으로 채웠는데도 죽임을 당했다.

  • 카하마르카에서 사로잡힘
  • 몸값을 다 치르고도 처형
  • 그의 죽음으로 잉카가 무너졌다
피사로장군1533 · 잉카 제국을 정복한 문맹의 정복자
1478 무렵 – 1541

168명으로 카하마르카에서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고 방 하나 가득한 금을 받은 뒤 죽였다. 쿠스코가 무너지고 리마가 세워졌다.

  • 카하마르카에서 아타우알파 생포(1532)
  • 쿠스코 점령(1533), 리마 건설(1535)
  • 정복자들 내분 중 암살
헨리 8세정치1534 · 이혼 문제로 영국 교회를 로마에서 떼어 낸 왕
1491 – 1547, 재위 1509 – 1547

여섯 번 결혼하고 두 왕비를 처형했다. 교황이 이혼을 거부하자 스스로 영국 교회의 수장이 됐다.

  • 수장령(1534) — 영국 국교회 성립
  • 수도원 해산과 재산 몰수
  • 왕비 앤 불린·캐서린 하워드 처형
이스마일 1세정치1501 · 시아파를 국교로 삼아 오늘의 이란을 만든 사파비 왕조의 창건자
1487 – 1524, 재위 1501 – 1524

14세에 타브리즈를 점령하고 샤가 됐다. 12이맘 시아파를 강제해 수니파 이웃들과 갈라선 페르시아의 정체성이 여기서 나왔다.

  • 타브리즈 점령, 사파비 왕조 창건(1501)
  • 12이맘 시아파 국교화
  • 찰디란에서 오스만에 패배(1514)
신사임당예술1540 · 조선의 화가
1504 – 1551

풀과 벌레를 그렸다. 당시 여성의 그림이 남은 것 자체가 드물다. 아들 이이를 길렀다는 것으로만 기억되는 것이 오래된 문제다.

  • 초충도 — 풀과 벌레
  • 시와 글씨와 그림에 모두 능함
  • 친정에서 오래 지내며 작품을 남겼다
구루 나낙사상1499 · 시크교를 창시한 구루
1469 – 1539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신 앞의 평등과 카스트 부정을 설파하며 시크교를 열었다. 그의 가르침은 이후 아홉 명의 구루를 거쳐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로 집대성됐다.

  • 카스트 제도와 우상숭배를 비판
  • 공동 식사(랑가르) 전통을 시작해 신분 평등을 실천
  • 펀자브 지역에서 시크교 공동체의 뿌리를 세움
칼뱅사상1541 · 제네바를 개신교의 로마로 만든 종교개혁가
1509 – 1564

예정설과 엄격한 교회 규율. 그의 가르침은 네덜란드·스코틀랜드·뉴잉글랜드로 퍼져 근대 서구의 정신을 만들었다.

  • 「기독교 강요」(1536)
  • 제네바 교회 개혁과 신정 통치
  • 장로교·개혁교회의 뿌리
바스쿠 다가마탐험1498 ·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은 첫 유럽인
1460 무렵 – 1524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캘리컷에 도착했다. 향료 무역의 길이 바뀌었고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주인이 됐다.

  • 인도 항로 개척, 캘리컷 도착(1498)
  • 제2차 항해에서 무력 통상 강요(1502)
  • 인도 부왕으로 코친에서 사망
코페르니쿠스과학1543 · 해를 가운데 놓은 사람
1473 – 1543

폴란드의 성직자이자 천문학자였다. 죽는 해에야 책을 냈다. 지구가 도는 편이 계산이 훨씬 단순하다는 것이 그의 근거였다.

  •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 죽기 직전 출판
  • 갈릴레이와 케플러가 이 위에서 시작했다
베살리우스과학1543 · 직접 해부한 해부학자
1514 – 1564

시신을 직접 해부해 갈레노스 이래 1,300년 된 오류를 바로잡았다.

  • 인체의 구조에 관하여 1543
  • 근대 해부학 확립
  • 순례길에 조난해 객사

그 무렵의 사건

1522
마젤란의 세계일주
마젤란 함대의 마지막 배 빅토리아호가 3년 만에 세비야로 돌아왔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이 몸으로 증명됐다.
1519년 다섯 척 270명이 떠나 남미 끝 해협을 찾았고, 석 달 넘게 육지 없는 바다를 건너 「태평양」이라 이름 붙였다. 마젤란은 필리핀 막탄에서 죽었고 엘카노가 한 척을 이끌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돌았다. 돌아온 18명은 날짜가 하루 어긋난 것을 발견했다. 실은 향료로 항해 비용을 뽑았지만 에스파냐는 향료 제도를 포르투갈에 팔았다.
1517
종교개혁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유럽이 종교로 갈라진다.
1523
칼마르 동맹
덴마크·스웨덴·노르웨이를 하나로 묶었던 동맹이 무너졌다
1397년 세 스칸디나비아 왕국이 한 왕을 섬기기로 맺은 칼마르 동맹은 덴마크가 사실상 주도권을 쥐면서 스웨덴 귀족들의 불만을 샀다. 1520년 덴마크의 스웨덴인 대학살(스톡홀름 피바다) 이후 구스타브 바사가 반란을 이끌어 1523년 스웨덴을 독립시키며 동맹이 사실상 끝났다.
1526
대서양 노예무역
16~19세기, 아프리카에서 아메리카로 약 1,250만 명이 강제로 끌려갔다.
포르투갈이 1526년 첫 직항 노예선을 아메리카로 보낸 뒤 약 350년간 이어졌다. 유럽에서 무기·직물을 아프리카로, 노예를 아메리카로, 설탕·면화를 다시 유럽으로 나르는 삼각무역의 한 축이었다. 항해 중 사망률이 10~15%에 달했다.
1527
마자파힛
동남아 최대 해상제국이 내분과 이슬람화로 저물었다
가자 마다 재상 시절 오늘날 인도네시아 대부분을 아우르는 해상 세력권을 이뤘던 마자파힛은 15세기 후반 왕위 계승 다툼과 이슬람 항구 도시국가들의 성장으로 쇠퇴했다. 1527년 드막 술탄국이 마지막 수도를 함락하며 사실상 소멸했다.
1511
말라카가 넘어가다
해협 하나를 쥐면 아시아 무역을 쥔다.
포르투갈이 40일 만에 말라카를 빼앗았다. 유럽이 아시아 바다에 처음으로 거점을 박은 사건이다. 쫓겨난 술탄의 사람들은 조호르로 옮겨 갔고, 향료의 이익을 좇아 네덜란드와 영국이 뒤따라 들어온다.

교역로 1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마젤란

인물 · 1520 · 처음으로 지구를 한 바퀴 돈 항해를 이끈 탐험가

남아메리카 끝의 해협을 찾아 태평양에 이름을 붙였다. 필리핀에서 전사했으나 남은 배 한 척이 세비야로 돌아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남아메리카 끝의 해협을 찾아 태평양에 이름을 붙였다. 필리핀에서 전사했으나 남은 배 한 척이 세비야로 돌아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했다.

포르투갈 귀족으로 인도와 말라카에서 싸운 그는 향료 제도로 가는 서쪽 항로를 제안했다가 자국 왕에게 거절당하자 에스파냐의 카를 5세에게 갔다.

1519년 다섯 척으로 출항해 반란과 난파를 겪으며 남미 남단의 해협을 찾았다. 태평양은 석 달 넘게 육지가 없어 선원들은 쥐와 가죽을 먹었다. 괌을 거쳐 필리핀에 닿았다.

막탄섬 족장 라푸라푸와의 싸움에서 그는 죽었다. 엘카노가 남은 빅토리아호를 이끌고 인도양과 희망봉을 돌아 3년 만에 돌아왔을 때 살아남은 사람은 18명이었다.

지도에서 보기: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목테수마 2세 콰우테목 코르테스 루터 구스타브 바사 에라스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