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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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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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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몽골의 세기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한반도

무신정권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전쟁 1건

무신정권의 성립1170 – 1270
고려 무신 vs 문신

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보현원의 변 1170김보당의 난 1173삼별초 항쟁 1270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100년 · 무인의 시대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7명

피보나치과학1202 · 수학자
1170 무렵 – 1250 무렵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다

  • 계산의 책 저술 1202
  • 피보나치 수열
  • 인도-아라비아 숫자 체계 전파
칭기즈 칸장군1206 · 몽골 대칸
1162 – 1227

흩어진 초원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시작한 정복은 73년간 이어진다.

  • 초원 부족을 통일 1206
  • 호라즘 정벌로 서방 진출
  • 역참제와 몽골 문자
리처드 1세장군1191 · 살라딘과 겨룬 「사자심왕」
1157 – 1199, 재위 1189 – 1199

재위 10년 중 영국에 머문 것은 반년.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싸우고 돌아오다 붙잡혀 거액의 몸값이 치러졌다.

  • 제3차 십자군, 아르수프 승리(1191)
  • 살라딘과 휴전, 성지 순례 보장
  • 오스트리아에 억류, 몸값 15만 마르크
주희사상1190 · 성리학을 집대성해 동아시아 700년의 정통을 만든 학자
1130 – 1200

사서에 주석을 달고 이(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의 국교가 됐다.

  • 「사서집주」
  • 이기론·격물치지
  • 백록동 서원 재건, 「주자가례」
살라흐 앗딘장군1187 · 아이유브 술탄
1137 – 1193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고 하틴에서 십자군을 꺾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
  • 하틴에서 십자군 격파
  • 예루살렘 탈환 1187
자야바르만 7세정치1181 · 얼굴 216개를 새긴 왕
1122 무렵 – 1218 무렵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 앙코르 톰과 바이욘
  • 탑마다 새긴 얼굴 216개
  • 병원 102곳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정치1180 · 이탈리아와 교황에 맞선 「붉은 수염」 황제
1122 무렵 – 1190, 재위 1155 – 1190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 이탈리아 원정 6회, 레냐노 패배(1176)
  • 사자공 하인리히 제압
  • 제3차 십자군 중 살레프강에서 익사

그 무렵의 사건

1200
라파누이의 석상
섬 하나에 900개를 세우고 나무를 다 썼다.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에 닿아 거대한 석상 900개를 세웠다. 옮기는 데 나무가 필요했고, 숲이 사라지자 배를 만들 수 없어 나갈 수도 없게 됐다. 스스로 자원을 다 쓴 사례로 오래 인용됐는데, 쥐와 유럽인이 옮긴 병의 몫이 더 컸다는 반론도 있다.
1206
칭기즈 칸 즉위
흩어진 초원 부족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였다.
흩어진 초원이 하나가 됐다. 73년에 걸친 정복이 여기서 시작된다.
1215
마그나 카르타
귀족들이 왕에게 법의 제약을 문서로 받아냈다.
왕도 법 아래 있다는 원칙이 문서로 남았다. 입헌주의의 씨앗이 된다.
1215
마그나카르타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이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해 왕권을 제한하는 대헌장에 서명했다.
왕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문서로 못박은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당시에는 귀족의 특권을 지키려는 문서에 가까웠지만, 후대에 재해석되며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이 됐다.
1180
베냉 왕국
오늘날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던 베냉 왕국은 정교한 청동 조각과 궁정 예술로 이름 높았으나, 1897년 영국의 무력 원정으로 왕궁이 약탈당하고 멸망했다.
12세기 무렵 세워진 이 왕국은 오바(왕)를 중심으로 고도로 조직된 궁정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왕실 조상과 역대 오바를 기리는 정교한 청동·상아 조각('베냉 브론즈')으로 유명했다. 1897년 영국은 무역 분쟁을 구실로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왕궁을 불태우고 수천 점의 청동 조각을 약탈해 유럽 박물관으로 실어갔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이지리아 반환 요구와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1234
금속활자
고려가 금속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찍었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르다.
구텐베르크보다 200년 이르다. 다만 한자 문화권에서는 인쇄 혁명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쿠스코

지명 · 1200 · 잉카의 도읍

【그때 그 자리】

안데스 해발 3,400미터의 계곡이다. 두 하천이 만나는 자리다.

안데스는 사람이 살기 어려워 보인다. 공기가 희박하고 경사가 급하다. 그런데 고도에 따라 기후대가 달라 다양한 작물을 기를 수 있다. 낮은 곳에 옥수수, 높은 곳에 감자를 심었다.

감자가 여기서 재배되기 시작했다. 품종이 수천 가지다. 얼렸다 말려 추뇨라는 보존식을 만들면 몇 년을 간다.

12세기 무렵 잉카가 이 계곡에 자리 잡았다. 여러 세력 가운데 하나였다.

【왜 그렇게 됐나】

1438년 찬카족이 쳐들어왔다. 왕과 후계자가 달아났는데 다른 아들 쿠시 유팡키가 남아 막아냈다.

그가 파차쿠텍이 됐다. 세상을 뒤집는 자라는 뜻이다.

그가 쿠스코를 다시 설계했다. 퓨마 모양으로 배치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머리 부분에 사크사이와만 요새가 있다.

돌 쌓는 기술이 여기서 정점에 닿았다. 사크사이와만의 성벽은 수십 톤 돌을 회반죽 없이 종이 한 장 들어가지 않게 맞췄다. 열두 각 돌이라 불리는 것은 열두 면이 주변 돌과 정확히 맞물린다.

지진에 무너지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며 제자리로 돌아간다. 에스파냐인이 그 위에 지은 건물은 무너졌는데 아래 잉카 석벽은 남았다.

【어떻게 흘렀나】

쿠스코는 배꼽이라는 뜻이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관념이다.

제국을 타완틴수유라 불렀다. 네 개의 지역이라는 뜻이다. 쿠스코에서 네 방향으로 길이 뻗어 나갔다.

도로망이 4만 킬로미터에 이르렀다. 차스키라는 파발꾼이 이어 달려 쿠스코에서 키토까지 2천 킬로미터를 일주일에 갔다.

경제에 시장도 화폐도 없었다. 미타라 하여 사람마다 일정 기간 국가에 노동을 제공했다. 그 대가로 흉년에 국가 창고를 열었다.

문자가 없었다. 대신 키푸라는 매듭끈으로 기록했다. 색과 매듭 종류와 위치로 인구와 세금과 창고 재고를 관리했다.

코리칸차라는 태양 신전이 도시 한가운데 있었다. 벽이 금판으로 덮여 있었다고 전한다.

【그래서】

1532년 피사로가 168명을 이끌고 왔다.

잉카는 막 내전을 끝낸 참이었다. 우아이나 카팍이 유럽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천연두로 죽고, 두 아들 아타우알파와 우아스카르가 5년을 싸웠다. 병이 사람보다 먼저 도착했다.

카하마르카에서 피사로가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았다. 몸값으로 방 하나를 금으로, 두 개를 은으로 채우게 한 뒤 그를 죽였다.

1533년 쿠스코가 함락됐다. 코리칸차의 금판이 뜯겨 녹여졌다.

1536년 망코 잉카가 봉기해 쿠스코를 포위했으나 실패했다. 빌카밤바로 물러나 1572년까지 저항했다.

【남은 것】

에스파냐는 잉카 석벽 위에 성당과 저택을 지었다. 지금 쿠스코 시내를 걸으면 아래는 잉카의 돌, 위는 식민지 시대 건물인 벽을 볼 수 있다.

코리칸차 위에 산토도밍고 성당이 섰다. 1950년 지진에 성당이 크게 무너졌는데 아래 잉카 석벽은 멀쩡했다.

198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됐다.

케추아어를 지금도 800만 명 넘게 쓴다. 이 도시에서 쓰던 말이다.

감자가 여기서 나와 세계로 갔다. 유럽 인구를 늘렸고 아일랜드에서는 그 의존이 대기근으로 이어졌다. 지금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이 먹는 작물이다.

문자 없이 1천만 명을 다스린 국가의 중심이 여기였다.

지도에서 보기: 12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가마쿠라 비텐베르크 카라코룸 강화도 처인성 베를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