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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라시아 대부분이 한 왕조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역참으로 동서가 이어져 사람과 물자와 역병이 함께 흘렀다.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왜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왜부족을 통일한 칭기즈 칸에게 유목 연합체를 유지할 전리품과 목초지가 필요했다. 호라즘이 사신단을 처형한 것이 서방 원정의 방아쇠가 됐다.
결과73년에 걸쳐 태평양에서 동유럽까지 이어지는 역사상 최대의 육상 제국이 만들어졌다.
흩어진 초원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시작한 정복은 73년간 이어진다.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지명 · 1220 · 명군이 불태운 몽골의 도읍
몽골 제국의 도읍
몽골 고원 중앙, 오르혼강 유역에 자리했다. 1220년 무렵 칭기즈 칸이 근거지로 삼았고, 1235년 그의 아들 우구데이가 정식으로 도성을 쌓으며 몽골 제국의 수도가 됐다.
유목 제국의 수도였지만 각지에서 온 상인·수공업자·종교인이 모여 국제도시의 성격을 띠었다 — 프란치스코회 수도사 윌리엄 루브룩 등 서방에서 온 여행자의 기록에 궁정 예배당과 다양한 종교 시설이 함께 있었다는 묘사가 남아 있다.
1264년 쿠빌라이 칸이 수도를 대도(베이징)로 옮기면서 정치적 중심의 지위를 잃었고, 이후 몽골 제국이 원으로 넘어가며 위상이 크게 낮아졌다.
1388년 명나라 군대가 몽골 잔여 세력을 치는 과정에서 이 도시를 파괴한 것으로 전한다. 이후 재건되지 못했고, 16세기 이 자리 인근에 에르덴 조 사원이 세워지며 옛 도성의 돌이 그 건축 자재로 다시 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