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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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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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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봉건 유럽과 십자군

교황과 황제가 성직자 임명권을 두고 다퉜다. 성지 회복을 내건 원정이 시작되며 유럽이 처음으로 바깥을 향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한반도

무신정권

무신들이 정권을 잡은 100년. 그사이 몽골이 여섯 차례 침입했고 강화도로 천도해 항전했다.

전쟁 2건

무신정권의 성립1170 – 1270
고려 무신 vs 문신

문신이 무신을 천대하는 관행이 쌓였다. 의종의 보현원 행차에서 폭발했다.

보현원의 변 1170김보당의 난 1173삼별초 항쟁 1270

결과정중부·경대승·이의민을 거쳐 최씨 정권이 60년을 이었다. 몽골 침입에 강화도로 옮겨 항전했고, 삼별초는 진도와 제주까지 물러나며 끝까지 싸웠다.

100년 · 무인의 시대
겐페이 전쟁1180 – 1185
다이라 vs 미나모토

다이라 가문이 조정을 독점하자 미나모토가 각지에서 거병했다.

구리카라 고개 1183이치노타니 1184단노우라 1185

결과단노우라 해전에서 다이라가 멸문하고 여덟 살 천황이 바다에 잠겼다.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가마쿠라에 막부를 열어 700년 무가 정치가 시작된다.

5년 · 무가 정치의 개막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7명

프리드리히 바르바로사정치1180 · 이탈리아와 교황에 맞선 「붉은 수염」 황제
1122 무렵 – 1190, 재위 1155 – 1190

황제권을 세우려 이탈리아 원정을 여섯 번 했고, 십자군 원정 도중 강에서 익사했다. 산속에서 잠자며 독일을 기다린다는 전설이 됐다.

  • 이탈리아 원정 6회, 레냐노 패배(1176)
  • 사자공 하인리히 제압
  • 제3차 십자군 중 살레프강에서 익사
자야바르만 7세정치1181 · 얼굴 216개를 새긴 왕
1122 무렵 – 1218 무렵

참파에 짓밟힌 뒤 나라를 되찾고 불교로 방향을 틀었다. 비문에 병원 102곳과 여관 121곳을 지었다고 적었다.

  • 앙코르 톰과 바이욘
  • 탑마다 새긴 얼굴 216개
  • 병원 102곳
살라흐 앗딘장군1187 · 아이유브 술탄
1137 – 1193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하고 하틴에서 십자군을 꺾었다. 예루살렘을 되찾았다.

  •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합
  • 하틴에서 십자군 격파
  • 예루살렘 탈환 1187
주희사상1190 · 성리학을 집대성해 동아시아 700년의 정통을 만든 학자
1130 – 1200

사서에 주석을 달고 이(理)와 기(氣)로 세계를 설명했다. 그의 학문이 조선의 국교가 됐다.

  • 「사서집주」
  • 이기론·격물치지
  • 백록동 서원 재건, 「주자가례」
리처드 1세장군1191 · 살라딘과 겨룬 「사자심왕」
1157 – 1199, 재위 1189 – 1199

재위 10년 중 영국에 머문 것은 반년. 십자군에서 살라딘과 싸우고 돌아오다 붙잡혀 거액의 몸값이 치러졌다.

  • 제3차 십자군, 아르수프 승리(1191)
  • 살라딘과 휴전, 성지 순례 보장
  • 오스트리아에 억류, 몸값 15만 마르크
피보나치과학1202 · 수학자
1170 무렵 – 1250 무렵

아라비아 숫자를 유럽에 소개하다

  • 계산의 책 저술 1202
  • 피보나치 수열
  • 인도-아라비아 숫자 체계 전파
칭기즈 칸장군1206 · 몽골 대칸
1162 – 1227

흩어진 초원 부족을 하나로 묶었다. 그가 시작한 정복은 73년간 이어진다.

  • 초원 부족을 통일 1206
  • 호라즘 정벌로 서방 진출
  • 역참제와 몽골 문자

그 무렵의 사건

1180
베냉 왕국
오늘날 나이지리아 남부에 있던 베냉 왕국은 정교한 청동 조각과 궁정 예술로 이름 높았으나, 1897년 영국의 무력 원정으로 왕궁이 약탈당하고 멸망했다.
12세기 무렵 세워진 이 왕국은 오바(왕)를 중심으로 고도로 조직된 궁정 문화를 발전시켰으며, 특히 왕실 조상과 역대 오바를 기리는 정교한 청동·상아 조각('베냉 브론즈')으로 유명했다. 1897년 영국은 무역 분쟁을 구실로 대규모 원정군을 보내 왕궁을 불태우고 수천 점의 청동 조각을 약탈해 유럽 박물관으로 실어갔다. 이 유물들은 오늘날까지도 나이지리아 반환 요구와 유럽 박물관들의 소장 문제를 둘러싼 국제적 논쟁의 중심에 있다.
1200
라파누이의 석상
섬 하나에 900개를 세우고 나무를 다 썼다.
폴리네시아인이 태평양 한복판의 작은 섬에 닿아 거대한 석상 900개를 세웠다. 옮기는 데 나무가 필요했고, 숲이 사라지자 배를 만들 수 없어 나갈 수도 없게 됐다. 스스로 자원을 다 쓴 사례로 오래 인용됐는데, 쥐와 유럽인이 옮긴 병의 몫이 더 컸다는 반론도 있다.
1206
칭기즈 칸 즉위
흩어진 초원 부족이 하나의 이름 아래 묶였다.
흩어진 초원이 하나가 됐다. 73년에 걸친 정복이 여기서 시작된다.
1150
앙코르 문명
저수지와 수로로 백만 명을 먹인 동남아시아 최대의 도시 문명이었다.
802년 자야바르만 2세가 스스로를 「전 우주의 지배자」로 선포하며 시작됐다. 거대한 저수지(바라이)와 수로망으로 논에 물을 대 인구를 지탱했다 — 최근 레이더 측량으로 앙코르와트 주변에 근대 이전 세계 최대 규모의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12세기 수리야바르만 2세가 힌두 사원으로 앙코르와트를 세웠고, 훗날 불교 사원으로 바뀌었다. 왜 무너졌는지는 여러 설이 겹친다 — 수리 시설 과부하설, 아유타야와의 거듭된 전쟁설, 상좌부 불교로 옮아가며 신왕 이념이 힘을 잃었다는 설, 나이테 연구로 밝혀진 극단적 가뭄과 폭우의 반복이라는 기후설이 나란히 있다. 1431년 아유타야에 함락된 뒤 도읍을 남쪽으로 옮겼지만, 앙코르와트 자체는 승려들이 계속 관리해 완전히 버려진 적은 없다.
1215
마그나 카르타
귀족들이 왕에게 법의 제약을 문서로 받아냈다.
왕도 법 아래 있다는 원칙이 문서로 남았다. 입헌주의의 씨앗이 된다.
1215
마그나카르타
1215년 잉글랜드의 존 왕이 귀족들의 압력에 굴복해 왕권을 제한하는 대헌장에 서명했다.
왕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칙을 문서로 못박은 최초의 사례로 꼽힌다. 당시에는 귀족의 특권을 지키려는 문서에 가까웠지만, 후대에 재해석되며 입헌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이 됐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비텐베르크

지명 · 1180 · 루터가 95개조를 붙인 곳

엘베강 유역, 독일 작센 지방의 소도시다. 15세기 말 작센 선제후의 거처가 되면서 성장했고, 1502년 이곳에 세워진 대학이 이후 종교개혁의 산실이 됐다.

1517년 이 대학의 신학 교수 마르틴 루터가 면벌부 판매를 비판하는 「95개조 반박문」을 성 교회 문에 붙였다고 전한다 — 다만 이 「문에 못박아 붙였다」는 장면 자체는 루터 사후 한참 뒤에야 문헌으로 정리된 일화라, 실제로 그런 방식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방식(서신 발송 등)으로 문제를 제기했는지에 대해서는 역사가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어느 쪽이든 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논쟁은 곧 독일 전역, 나아가 유럽 전체로 번지며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출발점이 됐다.

루터가 평생을 보내며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한 이 도시는 지금도 「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라는 이름으로 그 역사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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