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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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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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고전기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제국으로 바꿨고 스파르타가 이를 꺾었다. 도시국가들이 서로를 소모시키는 사이 북쪽 변방의 마케도니아가 그리스 전체를 장악했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해당 없음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히포크라테스과학BC 400 · 의학의 아버지
BC 460 무렵 – BC 370 무렵

질병을 신에게서 떼어놓다

  • 병을 자연적 원인으로 설명
  • 임상 관찰법을 체계화
  •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기원
소크라테스사상BC 399 · 묻기만 하다 죽은 사람
BC 470 – BC 399

책을 한 줄도 쓰지 않았다. 광장에서 사람을 붙들고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었을 뿐인데, 그 물음이 아테네를 불편하게 했다.

  • 문답법 — 답이 아니라 물음을 남김
  •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안다」
  • 독배를 들며 도망을 거부
플라톤사상BC 380 · 이데아를 말한 사람
BC 428 – BC 348

스승의 죽음을 보고 민주정에 회의를 품었다. 아카데미아를 세워 900년간 이어지는 학교를 만들었다.

  • 「국가」 — 철인이 다스려야 한다
  • 동굴의 비유 —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림자
  • 아카데미아 설립 — 서양 최초의 대학

그 무렵의 사건

BC 399
소크라테스의 죽음
아테네가 철학자에게 독배를 내렸다.
제자 플라톤이 이 재판을 기록하며 서양 철학이 문서로 남기 시작했다.
BC 390
켈트족의 확산
갈리아의 켈트 전사 브렌누스가 로마를 약탈했다. 「패자에게 화 있으라」— 알프스 북쪽 유럽은 켈트의 땅이었다.
할슈타트와 라텐 문화로 알려진 켈트족은 BC 5세기부터 갈리아·브리타니아·이베리아·아나톨리아까지 퍼졌다. BC 390년 알리아에서 로마군을 깨고 도시를 점령해 금을 받고 물러났다. 저울에 칼을 던지며 한 말이 전한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과 로마화로 대륙의 켈트 언어는 사라졌고 아일랜드·웨일스·브르타뉴에만 남았다. 드루이드와 할로윈의 뿌리가 이들이다.

교역로 1개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티칼

지명 · BC 400 · 가뭄과 전쟁으로 비운 마야의 도시

마야 고전기의 도시

지금의 과테말라 열대 우림 지역에 자리한 마야 문명의 대표적 도시국가였다. BC 4세기 무렵부터 정착이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고전기(AD 200~900년 무렵) 마야 세계에서 손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했다.

높이 60미터가 넘는 피라미드형 신전 여러 채가 지금도 밀림 속에 남아 있으며, 이웃 도시국가 칼라크물과 오랜 패권 다툼을 벌인 것이 비문 기록으로 확인된다.

9~10세기 마야 저지대 여러 도시가 한꺼번에 쇠퇴한 「마야 문명 붕괴」의 흐름 속에서 티칼도 버려졌다. 가뭄으로 인한 농업 기반 붕괴, 도시국가 간 전쟁 격화, 인구 과밀에 따른 환경 파괴 등이 복합적 원인으로 거론되며, 단일한 원인으로 확정되지는 않았다.

밀림에 묻혀 있던 유적은 19세기 이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해, 지금은 과테말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지도에서 보기: BC 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구르간지 메카 펠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