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왜고조선이 한과 남쪽 진국 사이의 중계 무역을 막고 사신을 살해하자, 흉노와 고조선이 손잡는 것을 우려한 한 무제가 원정을 결정했다.
결과1년의 농성 끝에 지배층 내분으로 왕검성이 함락됐다. 한사군이 설치된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정복으로 부자가 된 귀족이 농지를 독점하자 자영농이 사라졌다. 형제가 차례로 토지 개혁을 시도했다가 차례로 살해됐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지명 · BC 111 · 실크로드의 관문, 막고굴이 있는 곳
실크로드의 관문. 막고굴이 있다
허시후이랑(하서회랑) 서쪽 끝, 사막 한가운데의 오아시스 도시다. BC 111년 한 무제가 이곳에 군을 설치하며 중국의 서쪽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동서 교역로가 이 지점에서 여러 갈래로 갈라져(천산북로·천산남로·서역남로) 다시 모였기 때문에, 실크로드를 오가는 대상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었다.
4세기부터 이 부근 절벽에 불교 석굴(막고굴)을 파기 시작해, 이후 천 년 가까이 계속되며 수백 개의 굴에 벽화와 불상을 남겼다. 1900년 도사 왕원록이 「장경동」이라는 봉인된 굴에서 수만 점의 고문서를 발견했는데, 이후 상당수가 영국·프랑스 탐험가들에 의해 해외로 반출돼 지금도 반환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해상 실크로드가 발달한 이후로는 육상 교역로의 비중이 줄면서 둔황의 국제적 위상도 낮아졌지만, 막고굴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