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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로마가 지중해를 장악했지만 그 부가 공화정을 무너뜨렸다. 그라쿠스 형제의 토지 개혁이 유혈로 끝나고, 군벌들이 사병을 거느리며 내전이 반복됐다.
고조선이 무너지고 한의 군현이 설치됐다. 저항 속에서 부여·옥저·동예 같은 정치체가 자라났다.
왜북방 게르만 부족이 이주해 내려오며 로마군을 연달아 깨뜨렸다. 로마가 한니발 이후 처음으로 존망을 걱정했다.
결과마리우스가 군제를 갈아엎어 이겼다 — 재산 없는 시민도 병사로 받고 국가가 장비를 댔다. 군대가 국가가 아니라 장군에게 충성하게 된 시작이다.
장군을 변호하다 궁형을 받았다. 죽는 대신 살아서 아버지가 시작한 역사를 끝냈다.
자기 군대를 이끌고 로마 시내로 진군했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처음 넘었고, 이후 카이사르가 같은 길을 간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지명 · BC 100 · 로마가 세운 온천 도시, 카롤루스의 도읍
로마가 온천 위에 세운 도시. 뒷날 카롤루스가 여기를 도읍으로 삼았다
지금의 독일 서부, 벨기에·네덜란드와 국경이 맞닿은 지역이다. 로마 시대에 이곳의 온천을 이용해 목욕 시설을 갖춘 취락이 들어선 것에서 도시가 시작됐다.
800년 무렵 프랑크 왕국의 카롤루스 대제(샤를마뉴)가 이곳을 주요 거처이자 사실상의 수도로 삼았다 — 온천을 좋아했다는 개인적 취향과 함께, 왕국 영토의 중심에 가까운 위치도 이유로 꼽힌다. 이 시기 지은 팔라틴 예배당은 지금도 아헨 대성당의 핵심 부분으로 남아 있다.
카롤루스 사후에도 오랫동안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거행돼(936~1531년), 실질적 수도가 아니게 된 뒤로도 상징적 위상은 오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