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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호족 연합으로 선 왕조가 과거제와 관료제로 중앙집권을 다졌다. 거란·여진과 부딪히며 북방 경계를 지켰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마자르의 약탈을 끝내고 황제 대관을 받았다. 주교를 제후로 삼아 세속 귀족을 견제한 방식이 이후 제국의 특징이 된다.
왕건의 아들로, 공신과 호족이 왕을 좌우하던 판을 뒤집었다. 노비안검법과 과거제가 그 도구였다.
여러 종교를 알아본 끝에 비잔티움의 정교회를 택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 선택으로 러시아가 서유럽이 아니라 콘스탄티노폴리스 쪽 문화권에 들어갔다.
폴리네시아인들은 나침반 없이 별과 물결과 새를 읽어 태평양을 건넜다. 마오리 전승에서 아오테아로아를 처음 찾은 이가 쿠페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969 · 유대교를 고른 유목 국가
볼가 하구에서 동서 교역을 중계하고 지배층이 유대교로 개종한 특이한 나라. 키예프 루스의 스뱌토슬라프가 사르켈과 아틸을 파괴하며 무너졌고, 초원의 완충 지대가 사라지자 페체네그·쿠만이 밀려들었다.
【그때 그 자리】 7~10세기다. 카스피해와 흑해 사이, 볼가강 하류다.
튀르크계 유목 세력이 세웠다.
위치가 요점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가는 강길과 동서를 잇는 초원길이 만난다.
【왜 그렇게 됐나】 남쪽에 이슬람 칼리파국, 서쪽에 비잔티움, 북쪽에 슬라브와 바랑기아가 있었다.
하자르가 그 사이에 있었다.
8세기에 아랍과 여러 차례 싸웠다. 캅카스를 넘어오는 것을 막았다.
그것이 동유럽으로 이슬람이 확산되는 것을 저지했다는 평가가 있다.
비잔티움과는 대체로 동맹이었다. 황제가 하자르 공주와 혼인한 일도 있다.
그런데 어느 쪽에도 완전히 기울 수 없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면 칼리파의 신하가 되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면 비잔티움 황제 아래가 된다.
【어떻게 흘렀나】 8~9세기에 지배층이 유대교를 받아들였다.
유목 국가가 유대교를 국교로 삼은 유일한 사례다.
왜 그랬는가.
제3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유력하다. 어느 대국의 종교도 아니면서 경전을 가진 종교다.
그리고 유대 상인들이 교역망을 쥐고 있었다.
「하자르 왕과 랍비의 논쟁」이라는 전승이 있다. 세 종교의 대표를 불러 토론시켰다는 것이다.
12세기 유다 할레비가 「쿠자리」라는 책에서 그 이야기를 다뤘다.
10세기에 코르도바의 유대인 하스다이 이븐 샤프루트가 하자르 왕에게 편지를 보냈다.
「우리 민족의 왕국이 있다는 말을 듣고 믿을 수 없었습니다.」
요셉 왕의 답장이 남아 있다. 진위 논쟁이 있으나 대체로 진본으로 본다.
【그래서】 965년 키예프 루스의 스뱌토슬라프가 쳤다.
수도 아틸을 함락했다.
그 뒤 기록에서 빠르게 사라진다.
왜 회복하지 못했는가.
교역로가 바뀐 것이 크다. 아랍 은화의 유입이 줄었다.
그리고 페체네그 같은 다른 유목 세력이 초원을 차지했다.
【남은 것】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하자르의 후손인가」가 오래된 논쟁이다.
20세기에 아서 쾨슬러가 「제13지파」에서 그렇게 주장했다.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유전자 연구는 대체로 부정한다.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유전 구성은 중동과 남유럽 계통이 주를 이룬다.
하자르의 유대교 수용이 지배층에 한정됐다는 것도 지적된다.
수도 아틸의 위치조차 확정되지 않았다. 볼가강 삼각주 어딘가로 본다.
300년을 간 나라인데 남긴 문서가 거의 없다. 우리가 아는 것은 대부분 이웃이 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