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나다 토후국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대항해와 인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2건

그라나다 전쟁1482 – 1492
카스티야·아라곤 vs 그라나다

결혼으로 합쳐진 두 왕국이 마지막 이슬람 영토를 노렸다. 새 화포가 산성을 하나씩 열었다.

말라가 1487그라나다 함락 1492

결과781년의 레콘키스타가 끝났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출항했고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다 — 스페인의 세계 제국과 종교적 획일화가 동시에 시작됐다.

10년 · 레콘키스타의 완성
이탈리아 전쟁1494 – 1559
프랑스 vs 합스부르크·스페인

부유하고 분열된 이탈리아를 두고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65년을 다퉜다.

포르노보 1495파비아 1525로마 약탈 1527

결과화약·상비군·용병이 결합한 근대 전쟁의 실험장이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이 혼란 속에서 쓰였고, 이탈리아 르네상스는 이 전쟁으로 끝났다.

65년 · 근대 전쟁의 시작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1명

콜럼버스정치1492 · 제노바 항해사
1451 – 1506

인도로 가는 서쪽 길을 찾다 아메리카에 닿았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었다.

  • 1492년 아메리카에 닿음
  • 네 차례 대서양 항해
  •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음
이사벨 1세정치1492 · 에스파냐를 하나로 묶고 콜럼버스를 후원한 여왕
1451 – 1504, 재위 1474 – 1504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결혼해 두 왕국을 합쳤고, 그라나다를 정복한 그해 콜럼버스에게 배 세 척을 내주었다.

  • 페르난도와 결혼, 에스파냐 통합(1469)
  • 그라나다 정복, 레콩키스타 완성(1492)
  • 콜럼버스 항해 후원, 유대인 추방령
아스키아 무함마드정치1493 · 송가이 제국을 넓힌 왕
1443?년 무렵 – 1538

장군으로 손니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랐다. 메카 순례 뒤 팀북투를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키웠다.

  • 1493년 쿠데타로 아스키아 왕조를 엶
  • 1497년 메카 순례, 학자와 제도를 데려옴
  • 송가이를 서아프리카 역사상 최대 영토로 확장
다빈치과학1490 · 화가이자 기술자
1452 – 1519

노트 속에 미래를 그린 사람

  • 인체 해부도 제작
  • 비행 기계·전차 설계
  • 모나리자·최후의 만찬
바스쿠 다가마탐험1498 ·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닿은 첫 유럽인
1460 무렵 – 1524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캘리컷에 도착했다. 향료 무역의 길이 바뀌었고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주인이 됐다.

  • 인도 항로 개척, 캘리컷 도착(1498)
  • 제2차 항해에서 무력 통상 강요(1502)
  • 인도 부왕으로 코친에서 사망
구루 나낙사상1499 · 시크교를 창시한 구루
1469 – 1539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신 앞의 평등과 카스트 부정을 설파하며 시크교를 열었다. 그의 가르침은 이후 아홉 명의 구루를 거쳐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로 집대성됐다.

  • 카스트 제도와 우상숭배를 비판
  • 공동 식사(랑가르) 전통을 시작해 신분 평등을 실천
  • 펀자브 지역에서 시크교 공동체의 뿌리를 세움
이스마일 1세정치1501 · 시아파를 국교로 삼아 오늘의 이란을 만든 사파비 왕조의 창건자
1487 – 1524, 재위 1501 – 1524

14세에 타브리즈를 점령하고 샤가 됐다. 12이맘 시아파를 강제해 수니파 이웃들과 갈라선 페르시아의 정체성이 여기서 나왔다.

  • 타브리즈 점령, 사파비 왕조 창건(1501)
  • 12이맘 시아파 국교화
  • 찰디란에서 오스만에 패배(1514)
미켈란젤로예술1512 · 다비드와 시스티나 천장을 만든 르네상스의 거장
1475 – 1564

조각가를 자처했으나 교황의 명으로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천지창조」를 그렸고, 여든 넘어 성 베드로 대성당의 돔을 설계했다.

  • 「피에타」(1499), 「다비드」(1504)
  •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1508–1512)
  • 「최후의 심판」, 성 베드로 대성당 돔
마키아벨리사상1513 · 「군주론」으로 정치를 도덕에서 떼어 낸 사상가
1469 – 1527

군주는 사랑받기보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낫다 — 피렌체 외교관이 실직 후 쓴 얇은 책이 근대 정치학의 출발이 됐다.

  • 피렌체 공화국 서기관, 외교 사절
  • 「군주론」(1513), 「로마사 논고」
  • 국민군 창설 시도
에라스뮈스사상1516 · 「우신예찬」을 쓴 북방 인문주의의 왕자
1466 무렵 – 1536

교회의 부패를 풍자하고 그리스어 신약을 펴냈다. 루터에게 길을 열었지만 분열은 거부했다.

  • 「우신예찬」(1511)
  • 그리스어 신약성서 교정판(1516)
  • 루터와 자유의지 논쟁
루터사상1517 · 수도사
1483 – 1546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인쇄술을 타고 2주 만에 독일 전역에 퍼졌다.

  • 95개조 반박문 1517
  •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
  • 만인사제설

그 무렵의 사건

1492
콜럼버스의 항해
아메리카에 닿았다. 두 대륙의 생태와 인구가 되돌릴 수 없이 뒤섞인다.
두 대륙의 작물·가축·질병이 뒤섞였다. 아메리카 인구는 한 세기 만에 급감한다.
1492
레콩키스타 완성
1492년, 스페인 그라나다의 마지막 이슬람 왕국이 항복하면서 약 780년에 걸친 이베리아반도 재정복(레콩키스타)이 끝났다.
711년 북아프리카에서 건너온 우마이야 왕조 군대가 이베리아반도 대부분을 정복한 이래, 북부에 남은 기독교 왕국들이 서서히 남쪽으로 영토를 되찾아 나갔다. 카스티야의 이사벨 여왕과 아라곤의 페르난도 왕이 결혼으로 두 왕국을 통합한 뒤 그라나다를 함락하며 재정복을 완성했는데, 같은 해 이들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건넜다.
1498
바스쿠 다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
1498년,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인도에 도착하며 유럽에서 아시아로 가는 바닷길을 처음 열었다.
포르투갈은 엔히크 항해왕자 시절부터 반세기 넘게 아프리카 서해안을 따라 항로를 조금씩 넓혀왔고, 바르톨로메우 디아스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 진입로를 확인한 데 이어 다가마가 마침내 인도 캘리컷에 도착했다. 이는 지중해와 중동 상인들이 오랫동안 독점해온 향신료 무역로를 유럽이 직접 뚫어낸 사건으로, 이후 포르투갈은 아시아 해상 무역의 강자로 떠올랐다.
1498
사화의 시대
성종 이후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속에 무오·갑자·기묘·을사사화가 잇따라 일어나며 많은 사림 선비들이 화를 입었다.
성종은 지방 중소 지주 출신의 신진 유학자인 사림을 등용해 오랫동안 권력을 누려온 훈구파를 견제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두 세력의 갈등이 반복적으로 폭발했다. 1498년 무오사화는 사관 김일손이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일이 빌미가 되어 사림이 대거 화를 입은 사건이었다. 1504년 갑자사화는 연산군이 생모 폐비 윤씨 사건을 문제 삼아 훈구·사림을 가리지 않고 대규모로 숙청한 사건이다. 1519년 기묘사화에서는 급진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 등 신진 사림이 훈구파의 반격으로 몰락했고, 1545년 을사사화는 왕실 외척 간의 권력 다툼에 사림이 다시 휘말려 희생된 사건이다. 이 네 차례의 사화를 거치며 많은 인재가 희생되었지만, 사림 세력은 지방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꾸준히 성장해 훗날 조선 정치의 주역으로 자리 잡았다.
1485
경국대전 반포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해 성종 때 완성한 「경국대전」은 조선의 통치 이념과 제도를 총망라한 기본 법전이다.
조선은 건국 초부터 여러 법령을 정비해왔지만, 통일된 기본 법전이 없어 혼선이 있었다. 세조는 이·호·예·병·형·공의 육전 체제로 국가 운영 전반을 규정하는 법전 편찬을 명했고, 이 작업은 예종을 거쳐 성종 16년(1485)에 「경국대전」으로 완성·반포되었다. 이 법전은 관리 임용과 조세, 군사, 형벌, 토지 제도 등 국가 운영의 근간을 명문화해, 이후 조선왕조 500년 통치의 기본 골격이 되었다. 후대에도 새 법령은 이 「경국대전」을 보완하는 「속대전」, 「대전통편」 등의 형태로 추가되었을 뿐, 그 틀 자체는 조선 말기까지 유지되었다.
1506
중종반정
연산군의 폭정에 반발한 신하들이 정변을 일으켜 그를 몰아내고 이복동생 진성대군을 왕으로 세웠다.
연산군은 갑자사화 등으로 대규모 숙청을 벌이는 한편, 사냥과 연회를 위해 백성의 삶터를 빼앗고 언론을 탄압하는 등 폭정을 거듭했다. 성희안, 박원종 등 훈구 대신들은 더 이상 연산군의 폭정을 두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해 1506년 군사를 동원, 궁궐을 장악하고 연산군을 폐위시켰다(중종반정). 이들은 연산군의 이복동생 진성대군을 왕으로 옹립했으니, 그가 곧 중종이다. 그러나 반정을 주도한 공신들이 이후에도 권력을 독점하면서, 중종은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 조광조 등 사림을 등용했고 이는 곧 기묘사화로 이어지는 갈등의 씨앗이 되었다.

교역로 2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그라나다 토후국

나라의 멸망 · 1492 · 마지막 왕이 뒤돌아보며 울었다는 언덕이 남아 있다

이베리아의 마지막 이슬람 국가. 8개월 포위 끝에 보압딜이 알람브라의 열쇠를 내놓으며 781년의 레콘키스타가 끝났다. 같은 해 콜럼버스가 출항했고,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다.

【그때 그 자리】

711년 이슬람 세력이 이베리아반도에 들어와 서고트 왕국을 무너뜨렸다. 이후 북쪽 산악의 기독교 소국들이 조금씩 남하했다. 이를 레콩키스타, 재정복이라 부른다.

다만 이 과정이 800년 내내 종교 전쟁이었던 것은 아니다. 기독교 왕이 무슬림 세력과 손잡고 다른 기독교 왕을 치기도 했다. 엘 시드가 그런 인물이다.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에서 기독교 연합군이 크게 이겼다. 이후 무슬림 세력이 급격히 줄었다.

1236년 코르도바, 1248년 세비야가 함락됐다.

【왜 그렇게 됐나】

1238년 무함마드 1세가 그라나다에 나스르 왕조를 세웠다.

그는 살아남는 법을 택했다. 카스티야 왕에게 신하의 예를 갖추고 조공을 바쳤다. 세비야 공략에 병력까지 보냈다. 같은 무슬림 도시였다.

굴욕적이지만 효과가 있었다. 이 방식으로 250년을 더 갔다.

지형도 도왔다. 시에라네바다 산맥에 기대어 방어에 유리했다.

경제는 무역이었다. 아프리카에서 오는 금과 비단과 설탕이 이곳을 거쳤다. 카스티야도 이 무역의 이익을 나눠 가졌으므로 굳이 없앨 이유가 적었다.

【어떻게 흘렀나】

이 작은 나라에서 알람브라가 지어졌다.

14세기에 완성된 이 궁전은 이슬람 건축의 정점으로 꼽힌다. 사자의 정원, 아라야네스 중정, 종유석처럼 늘어진 무카르나스 천장이 있다.

벽 곳곳에 아랍어 명문이 새겨져 있다. 가장 많이 반복되는 문구가 이것이다. 승리자는 오직 신뿐이다. 나스르 왕조의 표어였다.

안달루시아 지역은 기독교와 이슬람과 유대 문화가 섞인 곳이었다. 그라나다에도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15세기 후반 상황이 바뀌었다.

1469년 카스티야의 이사벨과 아라곤의 페르난도가 혼인했다. 두 왕국이 사실상 하나가 됐다. 그리고 내부를 결속시킬 공동의 목표가 필요했다.

그라나다 안에서도 왕위 다툼이 일어났다. 마지막 왕 보압딜이 아버지와 삼촌과 다퉜다.

10년의 전쟁 끝에 1492년 1월 2일 그라나다가 항복했다.

보압딜이 도시를 떠나며 언덕에서 돌아보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어머니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내답게 지키지 못한 것을 여자처럼 우는구나. 후대에 만들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780년 만에 이베리아반도 전체가 기독교 왕국의 것이 됐다.

같은 해 몇 달 뒤 두 가지 일이 더 일어났다.

3월 유대인 추방령이 내려졌다. 개종하거나 떠나라는 것이었다. 수십만이 떠났다. 상당수가 오스만으로 갔고 술탄 바예지드가 이들을 받았다.

8월 콜럼버스가 팔로스를 떠났다. 그의 항해를 이사벨과 페르난도가 후원한 것은 그라나다 함락 직후의 여세와 재정 전망 때문이다.

1492년 한 해에 이 세 가지가 겹쳤다.

【남은 것】

항복 조약에는 무슬림의 신앙과 관습을 보장한다는 조항이 있었다. 지켜지지 않았다. 곧 개종이 강요되고 1609년 모리스코라 불린 개종 무슬림 후손들이 추방됐다.

알람브라는 남았다. 19세기 미국 작가 워싱턴 어빙이 여기 머물며 쓴 책이 이 궁전을 세계에 알렸다.

타레가의 기타곡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이 장소를 배경으로 한다. 트레몰로로 끊임없이 떨리는 그 음이 분수 소리를 옮긴 것이라고 한다.

800년간 세 종교가 섞여 살던 땅이 어떻게 하나로 정리됐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그 정리에는 추방이 따랐다.

지도에서 보기: 1492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부르고뉴 공국 티무르 제국 맘루크 술탄국 아즈텍 제국 동로마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