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왜백년전쟁 패배로 귀족들이 프랑스 영지를 잃고 국내로 돌아왔다. 헨리 6세의 정신 질환이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
결과보즈워스에서 리처드 3세가 전사하고 튜더 왕조가 열렸다. 대귀족이 서로를 소모시킨 끝에 왕권이 오히려 강해졌다.
왜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후계 다툼에 유력 가문의 상속 분쟁이 얽혀 교토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결과11년 동안 교토가 불탔고 막부의 권위는 사라졌다. 다이묘들이 각자 영지로 돌아가 서로 싸우는 100년 전국시대가 시작됐다.
노트 속에 미래를 그린 사람
인도로 가는 서쪽 길을 찾다 아메리카에 닿았다. 죽을 때까지 그곳을 인도라 믿었다.
아라곤의 페르난도와 결혼해 두 왕국을 합쳤고, 그라나다를 정복한 그해 콜럼버스에게 배 세 척을 내주었다.
장군으로 손니 왕조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랐다. 메카 순례 뒤 팀북투를 이슬람 학문의 중심지로 키웠다.
아프리카 남단을 돌아 캘리컷에 도착했다. 향료 무역의 길이 바뀌었고 포르투갈이 인도양의 주인이 됐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 신 앞의 평등과 카스트 부정을 설파하며 시크교를 열었다. 그의 가르침은 이후 아홉 명의 구루를 거쳐 경전 「구루 그란트 사히브」로 집대성됐다.
스물한 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그의 대포에 뚫렸다.
14세에 타브리즈를 점령하고 샤가 됐다. 12이맘 시아파를 강제해 수니파 이웃들과 갈라선 페르시아의 정체성이 여기서 나왔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나라의 멸망 · 1477 · 왕국이 될 뻔한 공국
프랑스와 신성로마 사이에서 왕국이 되려 했던 유럽 최부국. 샤를 돌격공이 낭시 전투에서 스위스 창병에게 패해 전사했고, 며칠 뒤 얼어붙은 시신이 발견됐다. 영지는 프랑스와 합스부르크가 나눠 가졌고, 그 결혼이 훗날 유럽 전체를 합스부르크의 무대로 만든다.
【그때 그 자리】 14~15세기다. 프랑스와 신성로마제국 사이에 있었다.
1363년 프랑스 왕 장 2세가 아들 필리프에게 부르고뉴를 주었다.
그 뒤 네 대에 걸쳐 커졌다.
혼인과 상속과 구매로 플랑드르와 브라반트와 홀란트와 룩셈부르크를 모았다.
지금의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그 안에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부유했다.
플랑드르가 유럽에서 가장 발달한 모직 산업 지대였다.
브뤼헤가 국제 금융의 중심이었다. 세계 최초의 증권거래소가 그곳에 있었다는 견해가 있다.
궁정이 화려했다.
「황금양모 기사단」을 만들었다. 지금도 스페인과 오스트리아에 이어지는 훈장이다.
미술을 후원했다.
얀 반 에이크가 필리프 선량공의 궁정 화가였다.
유화 기법이 이 시기 플랑드르에서 정교해졌다.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과 「헨트 제단화」가 이 궁정의 후원 아래 나왔다.
음악도 그렇다. 뒤파이와 뱅슈아가 부르고뉴 악파를 이뤘다.
【어떻게 흘렀나】 문제가 있었다.
영토가 이어져 있지 않았다.
남쪽 부르고뉴 본토와 북쪽 저지대 사이에 로렌이 끼어 있었다.
그 사이를 이으면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하나의 왕국이 선다.
마지막 공작 샤를 용담공이 그것을 노렸다.
「중세의 로타링기아를 되살린다」는 구상이었다.
황제에게 왕관을 청했다. 거의 성사될 뻔했는데 마지막에 황제가 밤중에 자리를 떠났다.
【그래서】 프랑스 왕 루이 11세가 막았다.
직접 싸우지 않고 외교로 포위했다. 「보편적 거미」라 불린 사람이다.
스위스 연방을 부추겼다.
샤를이 스위스를 쳤다.
1476년 그랑송과 모라에서 두 번 크게 졌다.
스위스 창병 방진이 부르고뉴 기사를 무너뜨렸다.
모라에서 부르고뉴군 1만이 죽었다.
1477년 낭시에서 세 번째로 졌다.
샤를이 전사했다. 시신이 늑대에게 훼손된 채 며칠 뒤에 발견됐다.
얼굴을 알아볼 수 없어 상처와 손톱으로 확인했다고 전한다.
【남은 것】 딸 마리가 남았다.
루이 11세가 남부를 가져갔다.
마리가 합스부르크의 막시밀리안과 혼인했다.
저지대가 합스부르크의 것이 됐다.
그 손자가 카를 5세다. 에스파냐와 신성로마제국과 저지대를 함께 물려받았다.
「전쟁은 남에게 맡기고 그대 오스트리아는 혼인하라」는 말이 이 가문을 두고 나왔다.
그리고 저지대가 합스부르크의 것이 된 것이 100년 뒤 네덜란드 독립전쟁으로 이어진다.
스위스 용병의 명성도 여기서 굳었다. 부르고뉴를 세 번 이긴 뒤 유럽 각국이 그들을 샀다.
지도에서 보기: 1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그라나다 토후국 동로마 제국 티무르 제국 수코타이 왕국 맘루크 술탄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