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니키아의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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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폴리스의 성립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서주의 정벌과 견융의 침입BC 1042 – BC 771
주 vs 동이·회이·견융

봉건으로 나눠 준 제후들이 점차 왕실 말을 듣지 않았다. 서쪽 견융의 압박은 계속 커졌다.

동이 정벌호경 함락 BC 771

결과유왕이 견융에게 죽고 왕실이 동쪽 낙읍으로 옮겼다. 이때부터 주 왕은 이름만 남고 춘추시대가 시작된다.

271년 · 봉건 질서의 이완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해당 없음

그 무렵의 사건

BC 800
폴리스의 형성
성벽이 아니라 광장이 도시를 만들었다.
암흑기를 지나며 그리스 각지에 폴리스가 자리 잡았다. 아고라에서 시민이 모여 결정하는 방식이 자리 잡았고, 인구가 넘치자 지중해 곳곳에 식민시를 세웠다 — 마르세유·나폴리·이스탄불이 그렇게 생겼다.
BC 800
페니키아의 바다
알파벳을 배에 싣고 지중해를 돌았다.
레바논 해안의 도시들이 지중해 전역에 거점을 두었다. 카르타고도 그중 하나다. 이들이 퍼뜨린 22자 알파벳이 그리스로, 로마로, 그리고 지금 세계 대부분의 문자로 이어진다.
BC 800
고조선의 8조법
고조선에는 살인·상해·절도를 다스리는 8개 조항의 법이 있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는 그중 3개 조항만 전해진다.
중국 역사서 「한서」에 남은 기록에 따르면,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 자는 곡식으로 배상하며, 도둑질한 자는 노비로 삼되 죄를 면하려면 많은 돈을 내야 했다. 이 세 조항만으로도 고조선 사회가 생명과 사유재산을 중요하게 여겼고, 신분 제도(노비)가 이미 존재했으며, 화폐를 대신하는 물품 배상 관념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BC 814
카르타고 건설
페니키아 공주가 소가죽만 한 땅을 샀다.
티레의 디도가 망명해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 소가죽 한 장 넓이만 달라 해놓고 가죽을 실처럼 잘라 언덕을 둘렀다는. 실제로는 티레의 교역 거점이었고, 600년 뒤 로마와 지중해를 두고 세 번 싸운다.
BC 776
제1회 올림피아 제전
그리스인이 같은 달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스인이 처음으로 같은 연대를 공유했다. 이후 4년마다 열려 1,100년을 이어간다.
BC 753
로마 건국 전승
테베레 강가의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고 전한다.
로물루스의 건국 설화는 훗날 로마인의 자기 정체성이 됐다.

교역로

해당 없음

페니키아의 바다

사건 · BC 800 · 알파벳을 팔고 다닌 사람들

레바논 해안의 도시들이 지중해 전역에 거점을 두었다. 카르타고도 그중 하나다. 이들이 퍼뜨린 22자 알파벳이 그리스로, 로마로, 그리고 지금 세계 대부분의 문자로 이어진다.

【그때 그 자리】 BC 1200년 무렵 청동기가 무너진 뒤다.

지중해 동쪽 해안, 지금의 레바논 일대에 도시들이 남았다.

티레·시돈·비블로스·베리투스다.

산과 바다 사이의 좁은 땅이라 농사지을 곳이 적었다.

그래서 바다로 갔다.

【왜 그렇게 됐나】 「페니키아」는 그리스인들이 부른 이름이다.

「포이닉스 — 자주색」에서 왔다.

뿔소라에서 뽑은 자주색 염료 때문이다.

달팽이 1만 마리에서 옷 한 벌 물들일 양이 나왔다. 금값보다 비쌌다.

그 색이 왕과 귀족의 색이 됐다. 로마 원로원의 자주색 띠, 「왕좌를 잇는다」는 뜻의 「자줏빛에 태어난」이라는 표현이 여기서 왔다.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카나안 사람」이라 불렀다.

【어떻게 흘렀나】 배를 잘 지었다.

레바논 삼나무가 있었다. 이집트가 그것을 수입했다.

지중해 전역에 거점을 세웠다. 키프로스·시칠리아·사르데냐·에스파냐·북아프리카다.

BC 814년 무렵 카르타고를 세웠다.

지브롤터를 넘어 대서양으로 나갔다. 브리튼 제도에서 주석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있다.

헤로도토스가 전하기를, BC 600년 무렵 이집트 왕 네코 2세의 명으로 아프리카를 한 바퀴 돌았다고 한다.

3년이 걸렸고, 남쪽으로 돌 때 해가 오른쪽에 있었다고 했다.

헤로도토스는 그것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남반구에서는 실제로 그렇다.

믿지 않고 적어 둔 그 대목이 오히려 신빙성의 근거가 됐다.

【그래서】 가장 크게 남긴 것은 문자다.

22개의 자음 부호로 된 알파벳을 만들었다.

쐐기문자는 수백 개, 상형문자는 700개 넘는 부호를 외워야 했다.

22개면 상인이 배우고 쓸 수 있다.

그리스인이 그것을 빌려 모음을 넣었다.

「알레프」가 「알파」, 「베트」가 「베타」가 됐다. 「알파벳」이라는 말이 그 둘에서 왔다.

그리스 알파벳에서 라틴 문자가, 그리고 키릴 문자가 나왔다.

히브리 문자와 아랍 문자도 같은 뿌리다.

【남은 것】 정작 그들이 쓴 글은 거의 남지 않았다.

파피루스에 썼는데 지중해 기후에서 썩었다.

「비블로스」에서 파피루스를 수입해 「비블리온(책)」이 됐고, 그것이 「바이블」이 됐다.

우리가 아는 페니키아는 그들의 적이나 이웃이 쓴 기록에서 온 것이다.

문자를 퍼뜨린 사람들의 글이 남지 않았다.

지도에서 보기: BC 10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폴리스의 형성 고조선의 8조법 카르타고 건설 제1회 올림피아 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