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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미국 단극 체제가 흔들리고 중국이 부상했다. 아랍의 봄이 내전으로 번지고, 팬데믹이 국경을 닫았으며, 유럽 한복판에서 다시 전면전이 벌어졌다.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얻었다. 외환위기를 겪고 세계 경제에 깊이 편입됐다.
왜1948년 정치 지도자 암살을 계기로 벌어진 '라 비올렌시아'(약 20만 명 희생)의 혼란 속에서 농민들이 자위 무장조직을 결성했는데, 이 중 일부가 이후 공산주의 게릴라 FARC로 발전했다.
결과게릴라가 마약 밀매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전쟁은 이념 대립을 넘어 마약 전쟁의 성격까지 띠게 됐고, 이에 맞서 지주와 마약상들이 만든 우익 민병대까지 가세하며 반세기 넘게 여러 세력이 뒤엉킨 저강도 전쟁이 이어졌다.
왜9·11 테러 뒤 미국이 빈 라덴을 숨겨 준 탈레반 정권을 무너뜨리려 침공했다.
결과정권은 두 달 만에 무너졌으나 탈레반은 파키스탄 국경에서 되살아났다. 20년, 2조 달러, 미군 2,400명과 아프간인 수십만이 죽은 뒤 미국이 떠나자 열흘 만에 탈레반이 돌아왔다.
왜아랍의 봄으로 시작된 시위를 정권이 무력으로 진압했다. 종파와 외세가 얽히며 여러 겹의 전쟁이 됐다.
결과13년 만에 아사드 정권이 무너졌다. 인구 절반이 집을 잃었다.
왜친러 대통령이 시위로 물러나자 러시아가 표식 없는 병력을 투입했다.
결과총성 거의 없이 반도를 병합했다. 8년 뒤 전면전의 예고편이었다.
왜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치적 혼란이 이어지던 예멘에서, 북부를 기반으로 한 시아파 계열 후티 반군이 수도 사나를 장악하며 내전이 본격화됐다.
결과예멘 정부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 연합군과, 후티를 지원하는 이란이 서로 대리전을 벌이는 양상을 띠며 장기화됐다. 봉쇄와 공습이 겹치며 유엔은 이를 '세계 최악의 인도주의 위기'로 규정했고, 수십만 명이 전투와 기근·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동독 출신 물리학자가 독일 첫 여성 총리가 됐다. 유로 위기와 난민 100만 명을 감당하며 「우리는 할 수 있다」고 했다.
KGB 출신으로 1999년 권력을 넘겨받았다. 체첸을 짓밟고 올리가르히를 길들였으며 크림을 병합하고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부패와의 전쟁으로 정적을 제거하고 임기 제한을 없앴다. 일대일로와 미국과의 대결 속에 「중국몽」을 말한다.
27세에 권력을 이어받아 고모부와 형을 제거했다. 핵·미사일을 완성했다며 트럼프와 세 차례 만났으나 비핵화는 없었다.
「담대한 희망」으로 당선됐다. 금융위기를 수습하고 건강보험을 개혁했으며 빈 라덴을 사살하고 이란·쿠바와 손을 잡았다.
차고에서 애플을 시작했고 쫓겨났다 돌아와 아이팟·아이폰·아이패드로 세계를 바꿨다.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고 했다.
고졸 인권변호사가 대통령이 됐다. 탄핵을 이겨냈고 권위주의를 걷어냈으며, 퇴임 뒤 수사 속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납치와 사형 선고를 넘긴 야당 지도자가 네 번째 도전 끝에 대통령이 됐다. IMF 위기를 넘기고 남북정상회담을 열었다.
군 쿠데타 실패로 투옥됐다가 선거로 대통령에 올라, 막대한 석유 수익을 빈곤층 지원에 쏟아부으며 저소득층의 강한 지지를 받았다. 동시에 언론·사법부 장악과 반대파 탄압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반군을 이끌고 라이베리아 내전을 촉발한 뒤 1997년 선거로 대통령이 됐다. 이웃 시에라리온 내전에 개입해 반군을 지원하고 다이아몬드 밀매에 관여한 혐의로, 퇴임 후 국제전범재판소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최초의 전직 아프리카 국가원수가 됐다.
인종분리 정책에 맞서다 종신형을 받고 27년을 갇혔다. 나와서 복수 대신 진실화해위원회를 세웠다. 가해자가 사실을 말하면 사면하는 방식이었다.
1994년 벨라루스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래 30년 넘게 집권하며 소련식 국가 통제 경제와 권위주의 통치를 이어왔다. 2020년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강경 진압했고, 러시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군에 자국 영토를 병참 거점으로 제공했다.
아버지에게 권력을 물려받은 첫 공산 세습자. 대기근 속에 선군정치를 폈고 핵실험으로 세계와 맞섰다.
게릴라에서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오슬로 협정으로 자치정부를 세웠으나 평화는 오지 않았고 라말라 관저에 갇힌 채 죽었다.
최연소 의원에서 40년 야당 투사로 살았다. 하나회를 해체하고 금융실명제를 시행했으며, 임기 말 외환위기를 맞았다.
개혁과 개방을 밀어붙였고, 그 끝에서 소련이 해체됐다.
소련 해체로 독립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 15년간 극단적인 개인숭배 체제를 구축했다. 스스로에게 '모든 투르크멘의 지도자'라는 뜻의 '투르크멘바시' 칭호를 붙이고,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달(月)·황금 동상을 전국 곳곳에 세웠다.
1991년 8월 탱크 위에서 연설해 보수파 쿠데타를 무너뜨렸고 넉 달 뒤 소련을 해체했다. 충격요법과 혼란, 그리고 푸틴에게의 승계로 끝났다.
CERN의 물리학자들이 문서를 나누게 하려고 HTML·HTTP·URL을 만들었다. 특허를 내지 않아 웹은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됐다.
이란과 8년을 싸우고 쿠웨이트를 삼켰다가 미국에 쫓겨났다. 2003년 침공 뒤 땅굴에서 붙잡혀 교수형을 받았다.
해당 없음
사건 · 2015 · 모든 나라가 서명한 첫 합의
지질시대의 CO₂ 농도를 인류가 처음으로 정책 대상으로 삼았다.
【그때 그 자리】 2015년 12월 12일이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다.
196개 당사국이 합의문을 채택했다.
【왜 그렇게 됐나】 앞선 시도가 있었다.
1997년 교토의정서다. 선진국에만 감축 의무를 지웠다.
미국이 비준하지 않았다. 중국과 인도가 의무에서 빠진 것이 이유였다.
캐나다가 뒤에 탈퇴했다.
2009년 코펜하겐 회의는 합의에 실패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다.
위에서 할당하는 대신, 각 나라가 스스로 목표를 정해 제출하게 했다.
「국가결정기여(NDC)」다.
구속력을 낮추는 대신 참여를 넓힌 것이다.
【어떻게 흘렀나】 핵심 내용이 셋이다.
첫째,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2도보다 훨씬 아래로 억제하고, 1.5도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
1.5도가 들어간 것은 군소 도서국들의 요구 때문이었다. 2도면 나라가 물에 잠긴다고 했다.
둘째, 5년마다 목표를 다시 제출하되 이전보다 후퇴할 수 없다.
셋째,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의 대응을 재정으로 지원한다.
목표 자체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 제출하고 보고하는 절차에만 있다.
그래서 「구속력 없는 합의」라는 비판이 처음부터 있었다.
그 대신 모든 나라가 들어왔다.
【그래서】 그 뒤가 순탄하지 않았다.
2017년 미국이 탈퇴를 선언했다. 2021년 복귀했다가 2025년 다시 탈퇴 절차를 밟았다.
각국이 제출한 목표를 다 합쳐도 1.5도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 반복해서 나온다.
2023년 첫 「전지구적 이행점검」이 이뤄졌다. 목표에 크게 못 미친다는 결과가 나왔다.
같은 해 총회에서 처음으로 「화석연료로부터의 전환」이라는 표현이 합의문에 들어갔다.
그 문구 하나를 두고 회의가 하루 넘게 연장됐다.
【남은 것】 이 합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가 갈린다.
「모든 나라를 한 테이블에 앉힌 것 자체가 성과」라는 평가가 있다.
「강제할 수단이 없어 실효가 없다」는 평가가 있다.
확실한 것은 이렇다.
1.5도 목표는 지금 추세로 지키기 어렵다는 데 과학계의 견해가 대체로 모인다.
그리고 온실가스는 배출한 뒤에 되돌리기가 매우 어렵다.
이 항목은 지도에서 아직 결과가 정해지지 않은 몇 안 되는 자리다.
무엇이 합의됐는지까지만 적고, 그것이 지켜졌는지는 다음 세대가 적을 것이다.
지도에서 보기: 201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에볼라 유행 세월호 참사 IS 칼리파 선언 한류의 세계화 남수단 독립 바레인 봉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