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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호메로스는 헬레네를 이유로 들지만, 흑해로 드나드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통행세가 실제 다툼거리였으리라 본다.
결과히사를리크 언덕 발굴에서 BC 1180년경 불탄 층이 나왔다. 신화가 통째로 사실은 아니어도 바탕이 된 파괴는 실재했다.
왜가뭄과 기근으로 지중해 각지의 집단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침략군이 아니라 가족과 가재도구를 실은 이주 행렬이었다.
결과히타이트와 우가리트는 지워졌고 이집트는 막아냈으나 국력을 잃었다. 청동기 세계 전체가 이 50년에 무너졌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사건 · BC 1200 · 거대한 머리를 남긴 사람들
산로렌소와 라벤타에 20톤짜리 현무암 두상이 서 있다. 채석장이 80km 밖이라 바퀴도 가축도 없이 옮겼다는 뜻이다. 마야와 아즈텍의 달력·구기 경기·재규어 신앙이 여기서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BC 1200년 무렵이다. 지금의 멕시코 만 연안, 베라크루스와 타바스코 일대다.
올메크 문화가 자리 잡았다. 메소아메리카 최초의 큰 문명으로 꼽힌다.
산로렌소와 라벤타가 중심지다.
【왜 그렇게 됐나】 가장 잘 알려진 것이 거대한 두상이다.
지금까지 17개가 발견됐다.
가장 큰 것이 높이 3.4m, 무게 40톤이 넘는다.
현무암으로 만들었다. 그 돌이 나는 투스틀라 산지에서 100km 넘게 떨어진 곳까지 옮겨졌다.
바퀴도 짐 나르는 짐승도 없었다. 뗏목과 통나무와 사람의 힘으로 옮겼을 것으로 본다.
얼굴이 다 다르다. 실존 인물, 아마도 지배자를 새긴 것으로 본다.
투구 같은 것을 쓰고 있는데, 구기 경기 장비라는 해석과 전투용이라는 해석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남긴 것이 여럿이다.
구기 경기다. 고무공을 쓰는 경기로, 메소아메리카 전역에 퍼졌다.
「올메크」라는 이름 자체가 나우아틀어로 「고무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아스테카가 그 지역을 그렇게 불렀다.
고무나무 수액에 나팔꽃 덩굴즙을 섞으면 탄성이 생긴다. 그 방법을 알고 있었다.
재규어 숭배가 있었다. 사람과 재규어를 섞은 형상이 자주 나온다.
옥을 귀하게 여겼다. 금보다 옥이었다.
그리고 달력과 문자의 이른 형태가 나온다.
카스카할 석판에 62개의 부호가 새겨져 있다. 아메리카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자료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논쟁이 있다.
【그래서】 「모(母)문화인가 자매 문화인가」가 오래된 논쟁이다.
올메크가 마야와 아스테카의 뿌리라는 견해와, 여러 지역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발전했다는 견해가 갈린다.
확실한 것은 요소들이 이어진다는 점이다.
260일 의례력, 구기 경기, 피라미드형 신전, 옥 부장, 재규어 상징이 그 뒤 3,000년 동안 이어진다.
【남은 것】 BC 400년 무렵 쇠퇴했다.
라벤타의 유적에서 조각들이 훼손된 채 발견됐다. 의도적 파괴로 보인다.
내부 갈등인지 외부의 침입인지 모른다.
산로렌소의 두상들도 일부러 묻힌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알 수 없다.
1862년 한 농부가 밭에서 거대한 돌을 발견하며 세상에 알려졌다.
그전까지 아무도 이 문명의 존재를 몰랐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라피타의 항해 바다민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