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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해양 민족의 이동과 함께 여러 왕국이 한꺼번에 무너졌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호메로스는 헬레네를 이유로 들지만, 흑해로 드나드는 다르다넬스 해협의 통행세가 실제 다툼거리였으리라 본다.
결과히사를리크 언덕 발굴에서 BC 1180년경 불탄 층이 나왔다. 신화가 통째로 사실은 아니어도 바탕이 된 파괴는 실재했다.
왜가뭄과 기근으로 지중해 각지의 집단이 배를 타고 이동했다. 침략군이 아니라 가족과 가재도구를 실은 이주 행렬이었다.
결과히타이트와 우가리트는 지워졌고 이집트는 막아냈으나 국력을 잃었다. 청동기 세계 전체가 이 50년에 무너졌다.
해당 없음
해당 없음
사건 · BC 1177 · 이름 목록만 남은 사람들
이집트 기록에 「바다에서 온 사람들」로 남았다. 배에 가족과 소를 싣고 왔다는 부조가 있어 침략보다 이주에 가까웠다. 람세스 3세가 겨우 막아냈지만 이집트도 이후 회복하지 못했다.
【그때 그 자리】 BC 1177년 무렵이다. 이집트 신왕국 람세스 3세 때다.
메디네트 하부 신전 벽에 그 전투가 새겨져 있다.
육상전과 해전이 함께 그려졌다.
【왜 그렇게 됐나】 이집트 기록이 그들을 「바다에서 온 사람들」이라 적었다.
부족 이름이 나열돼 있다. 펠레세트·체케르·셰켈레시·데넨·웨셰시·셰르덴·루카·에크웨시다.
그런데 어디서 왔는지는 적지 않았다.
그 이름을 지중해 여러 지역과 잇는 시도가 오래 있었다.
셰르덴을 사르데냐, 셰켈레시를 시칠리아, 루카를 리키아, 에크웨시를 아카이아와 잇는 식이다.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 말고 근거가 약하다는 반론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부조에 그려진 것이 중요하다.
배에 사람만 탄 것이 아니다.
소가 끄는 수레에 여자와 아이가 타고 있다. 짐을 실었다.
군대가 아니라 이주 집단의 모습이다.
그래서 「침략」이라기보다 「이동」에 가깝다는 해석이 유력해졌다.
먹을 것을 찾아 움직인 사람들이 정착지를 만나 싸운 것이다.
우가리트의 마지막 편지가 그 상황을 보여 준다.
「적의 배 일곱 척이 와서 큰 피해를 입혔습니다. (…) 우리 군대는 히타이트 땅에, 우리 배는 리키아에 있습니다.」
그 도시는 다시 세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원인이 아니라는 것이 지금의 견해다.
나이테와 꽃가루 분석에서 BC 1200년 무렵 동지중해에 장기 가뭄이 확인된다.
지진이 잇따랐다는 증거도 있다.
무역망이 끊기자 청동을 만들 주석이 오지 않았다.
중앙 궁전이 배급을 못 하자 체제가 무너졌다.
밀려난 사람들이 다시 다른 곳을 밀었다. 연쇄였다.
바다민족은 그 연쇄의 한 단계다.
【남은 것】 이집트가 막아 냈다. 그런데 회복하지 못했다.
람세스 3세 이후 이집트는 다시 강대국이 되지 못한다.
「펠레세트」가 팔레스타인 해안에 정착했다. 구약의 블레셋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지명이 그 이름에서 왔다.
청동기가 끝나고 철기가 왔다. 주석을 멀리서 들여와야 하는 청동과 달리 철광석은 어디에나 있었다.
무역망이 끊긴 것이 오히려 철기를 퍼뜨렸다.
지도에서 보기: BC 15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올메크 라피타의 항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