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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라인강 동쪽의 색슨족을 정복하고 기독교로 개종시키려 했다. 색슨은 30년 넘게 봉기를 반복했다.
결과4,500명을 하루에 처형한 베르덴 학살이 저항을 더 키웠다. 결국 정복했고, 이 정복으로 카롤루스는 800년 황제 대관을 받는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교황에게 황제관을 받았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 그의 궁정에서 그리스 학문이 아랍어로 옮겨졌고 카롤루스에게 코끼리를 선물로 보냈다.
나라의 큰 절들이 정치에 개입하자 수도를 헤이안쿄로 옮겼다. 새 도성에는 사찰을 함부로 못 짓게 했다. 이 도시가 이후 1,074년간 수도였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일했다. 알고리즘이 그의 이름에서, 알제브라가 그의 책 제목에서 왔다. 인도 숫자를 정리해 서쪽으로 넘긴 것도 그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800 · 메사 베르데와 차코
콜로라도의 절벽 아래 오목한 곳에 돌집을 층층이 올렸다. 사다리를 걷으면 아무도 못 들어온다. 13세기 말 큰 가뭄이 오자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후손이 오늘의 호피와 주니다.
【그때 그 자리】 AD 800년 무렵부터다. 지금의 미국 남서부 콜로라도·뉴멕시코·애리조나·유타가 만나는 곳이다.
「포 코너스」라 부른다.
고대 푸에블로인이 살았다. 오래 「아나사지」라 불렸는데, 나바호어로 「옛 적」이라는 뜻이라 지금은 쓰지 않는다.
후손인 호피와 주니 사람들이 그 이름을 거부한다.
【왜 그렇게 됐나】 먼저 차코 캐니언이다.
9~12세기에 거대한 건물들이 지어졌다.
「푸에블로 보니토」가 가장 크다. 방이 650개, 4~5층 높이다.
1250년대까지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
그런데 사람이 많이 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화덕과 쓰레기가 적다.
의례와 순례의 중심이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레이트 키바」라는 원형 지하 의례 공간이 있다.
도로가 놓였다. 폭 9m의 곧은 길이 사방으로 뻗는다. 총 길이가 600km가 넘는다.
수레도 짐승도 없는데 넓고 곧은 길을 만들었다.
지형을 무시하고 직선으로 갔다. 실용보다 의례적 의미가 있었다는 해석이 있다.
【어떻게 흘렀나】 천문과 맞물린다.
「파하다 뷰트」의 바위틈으로 든 빛이 나선 무늬 위를 지난다. 하지와 동지에 위치가 달라진다.
건물 벽이 정확히 동서남북에 맞춰진 것도 있다.
달의 18.6년 주기에 맞춘 정렬이 확인된 건물도 있다.
교역도 넓었다. 멕시코의 마코앵무 뼈와 카카오 흔적이 나왔다. 1,600km 떨어진 곳이다.
터키석이 대량으로 나온다.
【그래서】 12세기 말에 차코가 비었다.
사람들이 메사 베르데 쪽으로 옮겨 절벽 아래 움푹한 곳에 집을 지었다.
「클리프 팰리스」가 대표적이다. 방이 150개, 키바가 23개다.
왜 절벽으로 들어갔는가.
방어 때문이라는 설명이 오래 있었다. 접근하려면 사다리를 타야 한다.
기후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남향 절벽 아래는 겨울에 볕이 들고 여름에 그늘이 진다.
【남은 것】 그런데 100년도 안 살고 떠났다.
13세기 말 이 지역 전체가 비었다.
나이테 분석에서 1276~1299년에 큰 가뭄이 확인된다. 「대가뭄」이라 부른다.
폭력의 흔적도 나온다. 학살당한 유골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가뭄과 갈등이 겹친 것으로 본다.
사람들이 남쪽과 동쪽으로 갔다. 리오그란데 강 유역과 호피 메사에 정착했다.
그 후손이 지금의 푸에블로 부족들이다.
「사라진 문명」이 아니다. 옮겨 간 것이다. 그들의 구전에 이주 이야기가 남아 있다.
지도에서 보기: 8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카롤루스의 대관 발해의 전성기(해동성국) 지혜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