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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인구 압력과 흘수 얕은 롱십이 결합했다. 강을 거슬러 내륙까지 들이닥칠 수 있는 배가 결정적이었다.
결과약탈로 시작해 정착과 건국으로 끝났다. 노르망디·러시아·아이슬란드가 이들의 손에서 생겼고, 북아메리카에도 콜럼버스보다 500년 먼저 닿았다.
바그다드 지혜의 집에서 일했다. 알고리즘이 그의 이름에서, 알제브라가 그의 책 제목에서 왔다. 인도 숫자를 정리해 서쪽으로 넘긴 것도 그다.
당에서 군인으로 성공한 뒤 돌아와 청해진을 세웠다. 신라·당·일본을 잇는 해상 교역을 손에 넣었다.
교황에게 황제관을 받았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아바스 왕조의 전성기. 그의 궁정에서 그리스 학문이 아랍어로 옮겨졌고 카롤루스에게 코끼리를 선물로 보냈다.
나라의 큰 절들이 정치에 개입하자 수도를 헤이안쿄로 옮겼다. 새 도성에는 사찰을 함부로 못 짓게 했다. 이 도시가 이후 1,074년간 수도였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사건 · 818 · 발해 선왕과 해동성국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했다.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해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갖췄다.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발해의 융성함을 인정해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대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했다.
발해는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옛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영역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는 고구려 유민 대조영이 말갈족 일부를 이끌고 세운 나라로,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고구려 국왕'이라 칭할 만큼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이 뚜렷했다.
선왕은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했다. 그는 넓어진 영토를 5경 15부 62주라는 체계적인 지방 행정 제도로 정비해 효율적으로 다스렸다.
이 시기 발해는 당나라와도 활발히 교류하며 대등한 관계를 인정받았고, 유학생을 보내 당의 빈공과(외국인 대상 과거)에 급제시키는 등 국제적 위상도 높였다. 신라와는 때로 경쟁하고 때로 교류하며 공존했는데, 이처럼 남쪽의 신라와 북쪽의 발해가 함께 존재했던 이 시기를 오늘날 역사학계는 '남북국시대'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