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론의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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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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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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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폴리스의 성립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한반도

고조선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전쟁 1건

춘추시대의 패권 다툼BC 770 – BC 476
제·진·초·오·월 등 제후국

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성복 BC 632필 BC 597취리 BC 506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294년 · 170국이 십여 국으로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2명

솔론사상BC 594 · 빚을 지운 사람
BC 630 – BC 560

아테네가 부채 노예로 무너지기 직전 조정자로 뽑혔다. 부자와 빈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내전은 막았다.

  • 부채 노예 해방과 인신 담보 금지
  • 재산에 따른 참정권 — 귀족 독점을 깸
  • 법을 만들고 10년간 나라를 떠남
네부카드네자르 2세정치BC 586 · 바빌론을 다시 세운 왕
BC 634 – BC 562

43년을 다스리며 바빌론을 당대 최대의 도시로 만들었다. 이슈타르 문과 공중정원 전설이 그의 것이다.

  • 예루살렘 파괴와 바빌론 유수 BC 586
  • 이슈타르 문과 행렬 대로 건설
  • 공중정원 — 실재 여부는 아직 논쟁

그 무렵의 사건

BC 594
솔론의 개혁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을 모두 풀어줬다.
아테네의 부채 노예를 해방하고 인신을 담보로 잡는 것을 금지했다. 재산 규모로 참정권을 나눠 귀족 독점을 깼다. 민주정의 첫 발판이 여기서 놓였다.
BC 600
동선의 북
베트남에서 나온 청동 북이 인도네시아까지 퍼졌다.
홍강 유역에서 지름 1미터가 넘는 청동 북을 만들었다. 겉에 배와 새와 춤추는 사람이 새겨져 있다. 같은 북이 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 섬까지 나와, 문자 없이도 동남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바닷길로 이어져 있었음을 보여 준다.
BC 600
에트루리아 문명
로마보다 먼저 이탈리아를 다스린 사람들. 로마의 왕과 아치, 점술과 검투가 이들에게서 왔다.
토스카나 일대 12개 도시 연맹으로 철과 교역으로 부유했고 그리스 도기를 사들였다. 로마의 마지막 세 왕은 에트루리아인이었고, 타르퀴니우스가 쫓겨나면서 공화정이 시작됐다. 언어는 인도유럽어가 아니어서 지금도 절반만 읽힌다. 무덤 벽화의 연회와 춤, 부부가 나란히 누운 석관은 여성의 지위가 그리스보다 높았음을 보여준다. BC 3세기까지 로마에 흡수됐다.
BC 585
탈레스의 일식 예언
신화 대신 자연으로 세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밀레토스의 탈레스가 일식을 미리 맞혔다고 헤로도토스가 전한다. 만물의 근원을 물이라 한 그의 설명이 옳은지는 중요하지 않다 — 신의 뜻이 아닌 것으로 설명하려 한 태도가 철학과 과학의 시작이었다.
BC 621
드라콘 법
사소한 죄에도 사형 — 그래서 「가혹하다」는 말이 남았다.
아테네 최초의 성문법. 형벌이 지나치게 무거워 「드라콘 같다(draconian)」가 지금도 가혹함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 그래도 귀족의 자의적 판결보다는 나았다 — 적어도 적혀 있었으니까.
BC 528
석가의 깨달음
왕자가 고통의 원인을 묻고 답을 냈다.
생로병사를 보고 출가한 싯다르타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고통은 집착에서 오고 집착을 놓으면 벗어난다는 가르침이 인도를 넘어 동아시아 전체로 퍼진다.

교역로

해당 없음

솔론의 개혁

사건 · BC 594 · 빚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을 없앤 법

아테네의 부채 노예를 해방하고 인신을 담보로 잡는 것을 금지했다. 재산 규모로 참정권을 나눠 귀족 독점을 깼다. 민주정의 첫 발판이 여기서 놓였다.

【그때 그 자리】 BC 6세기 초 아테네다. 귀족과 평민의 갈등이 폭발 직전이었다.

가난한 농민이 땅을 담보로 빌린 뒤 갚지 못하면 소출의 6분의 5를 바쳐야 했다. 그래도 못 갚으면 자기 몸을 담보로 잡혔다.

그렇게 노예가 된 아테네인이 많았고, 밖으로 팔려 나간 사람도 있었다.

밭 곳곳에 「호로스」라는 담보석이 박혀 있었다. 이 땅이 저당 잡혔다는 표시다.

【왜 그렇게 됐나】 앞서 드라콘이 법을 성문화했다(BC 621년). 그런데 거의 모든 죄에 사형을 매겼다.

「드라콘의 법은 잉크가 아니라 피로 쓰였다」는 말이 남았다. 지금 영어 draconian이 여기서 왔다.

성문법이 생긴 것 자체는 진전이었다. 귀족이 자기 마음대로 판결하지 못하게 됐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를 풀지는 못했다.

BC 594년 양쪽이 솔론에게 조정을 맡겼다. 시인이자 상인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세이삭테이아 — 짐을 털어 냄」을 했다.

모든 빚을 무효로 하고 담보석을 뽑아 버렸다.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을 풀어 주고, 밖으로 팔린 사람은 국비로 사 왔다.

그리고 사람을 담보로 잡는 것 자체를 금지했다.

이어 시민을 재산에 따라 네 등급으로 나눴다. 곡물 생산량이 기준이다.

혈통이 아니라 재산으로 나눈 것이 요점이다. 귀족으로 태어나지 않아도 재산이 있으면 관직에 오를 수 있게 됐다.

민회를 모든 시민에게 열고, 민중 법정(헬리아이아)을 만들어 누구나 배심원이 될 수 있게 했다.

그리고 아무나 남을 대신해 고발할 수 있게 했다. 피해자 본인만 소송할 수 있던 것을 바꾼 것이다 — 약자를 위한 장치다.

【그래서】 양쪽 다 불만이었다.

가난한 쪽은 토지를 다시 나눠 주기를 바랐는데 하지 않았다. 귀족 쪽은 빚을 지운 것에 화가 났다.

그가 시로 적었다. 「나는 늑대들에게 둘러싸인 채 방패를 들고 양쪽 사이에 섰다.」

개혁을 마친 뒤 10년간 아테네를 떠났다. 법을 고치라는 압력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남은 것】 그가 떠난 뒤 다시 혼란이 왔고,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참주정이 들어섰다.

그래도 그가 놓은 것은 남았다. 아테네 시민은 다시는 빚으로 노예가 되지 않았다.

이 한 가지가 결정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시민이 자유를 유지했기에 뒤에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정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무엇이 가장 좋은 나라인가」라는 물음에 답했다고 전한다.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피해를 입은 사람만큼 화를 내고 처벌에 나서는 나라.」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동선의 북 에트루리아 문명 탈레스의 일식 예언 드라콘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