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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베스트팔렌 조약이 종교가 아니라 주권을 국제 질서의 단위로 삼았다. 절대왕정이 상비군과 관료제로 국가를 다졌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왜오스만이 빈을 두 번째로 포위했다. 유럽 각국이 교황의 중재로 신성동맹을 맺었다.
결과폴란드 기병의 돌격으로 포위가 풀렸고, 카를로비츠 조약으로 오스만이 헝가리를 잃었다. 오스만의 팽창이 여기서 멈추고 이후 200년의 후퇴가 시작된다.
하늘과 땅이 같은 법칙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수식으로 보였다.
8세에 즉위해 61년을 다스렸다. 타이완을 얻고 러시아와 국경을 정했으며 서양 선교사에게 수학을 배웠다.
정부는 생명·자유·재산을 지키기 위한 계약이고, 이를 어기면 국민은 저항할 수 있다. 미국 독립선언은 그의 문장을 거의 그대로 옮겼다.
뉴턴과 별개로 미적분을 완성하다
오스만이 빈을 두 달째 포위했을 때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왕이 날개 단 기병을 이끌고 언덕에서 내려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기병 돌격으로 꼽힌다.
직접 서유럽에서 조선술을 배워왔다. 늪지에 새 수도를 세우고 바다로 나갔다.
흩어진 아칸족 도시들을 쿠마시를 중심으로 통합했다.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황금 의자가 지금도 왕권의 상징이다.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사건 · 1688 · 피 한 방울 없이 왕을 갈아치우다
이듬해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의회가 왕권 위에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그때 그 자리: 1688년 11월, 네덜란드 총독 오라녀공 윌리엄이 군대를 이끌고 잉글랜드에 상륙했다.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는 별다른 저항 없이 프랑스로 망명했다.
왜 그렇게 됐나: 제임스 2세가 가톨릭 부흥 정책을 펴며 의회와 충돌하던 중, 아들이 태어나 가톨릭 왕조가 계속될 가능성이 커지자 의회 지도자들이 제임스의 딸이자 개신교도인 메리와 그 남편 윌리엄에게 개입을 요청했다.
어떻게 흘렀나: 1689년 의회는 메리와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추대하는 동시에 권리장전을 제정해 왕이 의회의 동의 없이 법을 만들거나 세금을 걷을 수 없도록 못박았다.
그래서: 이로써 잉글랜드는 절대왕정에서 의회가 실질적 권력을 쥔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갔다.
남은 것: '명예혁명'이라는 이름 자체가 유혈 사태 없이 이뤄졌다는 뜻을 담고 있다(다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서는 이 과정에서 유혈 충돌이 있었다). 이 체제는 이후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혁명 사상가들에게도 영향을 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