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팔렌 조약

3000
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 왼쪽 · 오른쪽 ▶
지도에 표시
주요 국가
오른쪽 게이지를 끌거나 키보드 ↑↓로 5천 년이 흐릅니다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주요 공격
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종교전쟁

가톨릭과 개신교가 국가 단위로 갈라져 싸웠다. 신앙이 곧 국제 정치였고 30년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한반도

양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전쟁 3건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 – 1648
네덜란드 북부 7주 vs 스페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과세와 가톨릭 강요에 개신교(칼뱅파)가 강한 네덜란드 북부 주들이 반발했다.

레이던 공방전 1574위트레흐트 동맹 1579

결과80년에 걸친 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다. 흔히 '80년 전쟁'으로도 불린다.

80년 · 네덜란드 독립, 해상 무역 강국으로 성장
30년전쟁1618 – 1648
신성로마 황제·가톨릭 vs 개신교 제후·스웨덴·프랑스

보헤미아에서 개신교 귀족이 황제의 관리를 창밖으로 던졌다.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종교 갈등에 주변 강대국이 세력 다툼으로 끼어들었다.

백산 1620브라이텐펠트 1631뤼첸 1632로크루아 1643

결과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주권국가 체제가 자리 잡는다.

30년 ·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영국 내전1642 – 1651
의회파 vs 왕당파

찰스 1세가 의회 없이 세금을 걷고 국교회를 강요하자 의회가 군대 통제권을 요구했다. 왕이 노팅엄에서 깃발을 올렸다.

에지힐 1642마스턴무어 1644네이즈비 1645찰스 1세 처형 1649

결과크롬웰의 신형군이 왕당파를 꺾었고 왕은 재판 끝에 참수됐다. 공화정과 호국경 독재를 거쳐 1660년 왕정이 돌아왔지만, 의회 없는 왕은 다시 없었다.

9년 · 국왕 처형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1명

크롬웰장군1649 · 왕의 목을 자른 사람
AD 1599 – AD 1658

시골 젠트리 출신으로 내전에서 철기병을 길러 왕당파를 꺾었다. 왕을 처형했지만 스스로 왕에 가까운 권력을 쥐었다.

  • 찰스 1세 처형 1649 — 유럽 최초의 왕 재판
  • 호국경으로 사실상 독재
  • 아일랜드 원정의 학살은 지금도 상처
파스칼과학1654 · 수학자·철학자
1623 – 1662

도박에서 확률론을 끌어내다

  • 파스칼의 삼각형
  • 확률론의 기초 수립
  • 파스칼의 원리 발견
아우랑제브정치1658 ·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지만 갈등의 씨도 뿌린 황제
1618 – 1707, 재위 1658 – 1707

형제들을 제거하고 아버지 샤 자한을 유폐시킨 뒤 제위에 올랐다. 남인도까지 정복해 무굴 제국을 최대 영토로 넓혔으나, 이슬람 정통주의 정책으로 힌두교도와의 갈등을 키워 제국 쇠퇴의 씨앗도 함께 뿌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 무굴 제국 최대 영토 달성
  •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인두세(지즈야) 부활
  • 사후 제국이 빠르게 분열되기 시작
데카르트과학1637 · 의심에서 다시 시작한 사람
AD 1596 – AD 1650

확실한 것을 찾으려 모든 것을 의심했고, 의심하는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데서 멈췄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해석기하학 — 좌표로 도형을 다룸
  • 「방법서설」을 라틴어 아닌 프랑스어로 씀
루이 14세정치1661 · 태양왕, 절대왕정의 상징
1638 – 1715, 재위 1643 – 1715

재상 없이 직접 통치하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렸다. 베르사유 궁전을 지어 귀족을 곁에 묶어두고 왕권을 절정으로 끌어올렸다.

  • 베르사유 궁전 건설
  • 짐이 곧 국가라는 말로 상징되는 절대왕정
  • 잦은 전쟁으로 재정을 크게 소모
보일과학1662 · 화학자
1627 – 1691

근대 화학의 문을 열다

  • 보일의 법칙 발표
  • 회의적 화학자 저술
  • 왕립학회 설립에 기여
갈릴레이과학1633 · 눈으로 본 것을 굽히지 않은 사람
AD 1564 – AD 1642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을 봤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증거였고, 그 대가로 여생을 가택 연금으로 보냈다.

  • 목성의 위성 4개 발견 1610
  •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로 종교재판
  • 실험과 수학으로 자연을 설명 — 근대 과학의 방법
샤 자한정치1632 · 타지마할을 지은 황제
1592 – 1666

아내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무덤을 짓기 시작했다. 22년이 걸렸다.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 타지마할 22년 공사
  • 델리에 붉은 성
  • 아들에게 유폐된 채 죽음
구스타브 아돌프장군1631 · 30년전쟁에 뛰어들어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북방의 사자」
1594 – 1632, 재위 1611 – 1632

기동성 있는 보병과 경포병으로 근대 전술을 열었다. 브라이텐펠트에서 이기고 뤼첸에서 이기며 죽었다.

  • 30년전쟁 개입(1630)
  • 브라이텐펠트 승리(1631)
  • 뤼첸 전투 전사(1632)
리슐리외정치1630 · 왕권을 세우고 프랑스를 강국으로 만든 추기경 재상
1585 – 1642

위그노의 요새를 부수고 귀족의 성을 헐었으며, 가톨릭 추기경이면서 개신교 스웨덴에 돈을 대 합스부르크를 견제했다.

  • 루이 13세의 재상(1624–1642)
  • 라로셸 함락(1628), 위그노 정치권 박탈
  • 30년전쟁 개입, 국가이성 외교
하비과학1628 · 피가 순환한다는 것을 밝히다
1578 – 1657

심장이 뿜는 피의 양을 계산해 혈액이 몸을 순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 1628
  • 혈액순환설 확립
  • 생리학의 출발점

그 무렵의 사건

1648
베스트팔렌 조약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지금 국가 체제의 기원이다.
1632
타지마할
아내의 무덤을 짓는 데 22년이 걸렸다.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샤 자한이 짓기 시작했다. 흰 대리석에 페르시아와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섞였다. 그는 말년에 아들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1627
정묘호란
후금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을 문제 삼아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실리를 좇는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를 명분 삼아 1627년 후금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했다(정묘호란). 후금군은 평안도 일대를 휩쓸며 빠르게 남하했지만, 명과의 전쟁도 함께 치르고 있던 후금 입장에서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결국 양측은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그러나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군신 관계(사대)를 요구하자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10년 뒤 병자호란이 다시 벌어지게 된다.
1609
망원경과 현미경
네덜란드 안경 장인의 렌즈 두 장이 하늘과 세포를 열었다. 갈릴레이는 목성의 달을, 레이우엔훅은 미생물을 보았다.
1608년 미델뷔르흐의 리페르스헤이가 망원경 특허를 냈고 이듬해 갈릴레이가 20배로 개량해 달의 산과 목성의 위성을 보았다 — 천동설의 근거가 무너졌다. 현미경은 1660년대 훅이 코르크의 「세포」를 이름 붙였고 델프트의 포목상 레이우엔훅이 물방울 속 미생물과 정자를 처음 보았다. 두 기구가 인간의 눈이 닿는 범위를 우주와 미시 세계로 넓혔다.
1608
대동법 시행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베·동전으로 통일해 걷은 대동법은 100년에 걸쳐 전국으로 확대되며 조세 제도를 크게 바꿨다.
조선 전기의 공납 제도는 각 고을에 정해진 특산물을 바치게 했는데,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배정되거나 상인(방납업자)이 대신 납부하며 폭리를 취하는 등 폐단이 극심했다. 이이 등이 대안으로 수미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임진왜란 이후 재정이 파탄 나자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부터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대동법은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대동미)이나 베, 동전을 걷어 국가가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하도록 했는데, 이는 토지를 많이 가진 지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었다. 지주들의 반발로 확대에 시간이 걸려, 전국 시행까지는 100년이 걸려 숙종 34년(1708)에야 완료되었다. 대동법 시행으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대는 공인이라는 어용상인이 성장했고, 이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688
명예혁명
1688~89년, 잉글랜드 의회가 가톨릭 왕 제임스 2세를 몰아내고 그의 딸 메리와 사위 윌리엄을 공동 왕으로 앉혔다. 유혈 충돌 없이 이뤄졌다.
이듬해 권리장전이 제정되며 의회가 왕권 위에 있다는 원칙이 확립됐다. 절대왕정에서 입헌군주정으로 넘어가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꼽힌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베스트팔렌 조약

사건 · 1648 ·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종교가 아니라 주권이 국제 질서의 단위가 됐다. 지금 국가 체제의 기원이다.

【그때 그 자리】

1618년 시작된 30년전쟁이 유럽을 갈아엎었다.

보헤미아의 종교 갈등으로 시작해 덴마크와 스웨덴과 프랑스가 차례로 들어왔다. 가톨릭 국가 프랑스가 개신교 편에 선 시점에서 종교 전쟁의 외피가 벗겨졌다. 합스부르크의 포위를 막는 것이 프랑스의 목적이었다.

병력 대부분이 용병이었다. 급여가 밀리면 스스로 약탈했다. 군대가 지나간 곳에 역병과 기근이 따랐다.

독일 지역 인구가 30퍼센트 안팎, 일부 지역은 절반 넘게 줄었다.

【왜 그렇게 됐나】

1643년부터 협상이 시작됐다. 5년이 걸렸다.

장소부터 문제였다. 가톨릭 측과 개신교 측이 한자리에 앉기를 거부했다. 베스트팔렌 지방의 두 도시 뮌스터와 오스나브뤼크에서 따로 회의를 열고 사절이 오갔다.

참여한 세력이 190개가 넘었다. 유럽 거의 전부다. 이만한 규모의 다자 회의가 처음이었다.

의전도 문제였다. 누가 먼저 들어가고 누가 상석에 앉는가로 몇 달을 다퉜다. 그래서 모두가 동시에 여러 문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고안하기도 했다.

【어떻게 흘렀나】

1648년 10월 조약이 맺어졌다.

내용은 이렇다.

칼뱅파를 공인했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에서 빠졌던 것이다. 각 영방의 군주가 종교를 정하되, 이번에는 주민이 다른 신앙을 가져도 사적 예배를 허용했다.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을 승인했다.

프랑스가 알자스 일부를, 스웨덴이 북부 독일 영토를 얻었다.

신성로마제국의 300여 영방에 사실상 주권을 인정했다. 각자 외교와 동맹을 맺을 수 있게 됐다. 황제의 권한이 껍데기가 됐다.

【그래서】

조항보다 전제가 중요하다.

각 나라가 자기 영토 안에서 최고 권한을 갖고, 다른 나라가 그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 종교가 다른 나라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한 체제 안에 공존한다.

이 원칙이 문서로 굳었다. 오늘날 주권국가 체제의 출발점으로 이 조약을 드는 이유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10세가 이 조약을 무효라고 선언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교황의 말이 국제 정치에서 힘을 잃은 순간으로 인용된다.

【남은 것】

유엔에서 나라마다 한 표를 갖는 것, 내정 불간섭 원칙, 국경의 불가침이 이 계보 위에 있다.

동시에 이 체제의 한계도 함께 논의된다. 주권을 절대적으로 보면 한 나라 안에서 벌어지는 학살에 밖이 개입할 근거가 없어진다. 20세기 후반 인도적 개입 논쟁이 여기서 나온다.

독일 지역은 300개 영방으로 쪼개진 채 굳었다. 통일이 200년 넘게 늦어졌고, 그 지연이 19세기 독일 민족주의의 강렬함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유럽이 종교로 서로를 죽이는 일을 멈춘 것은 관용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30년을 죽인 뒤 더는 그럴 힘이 없어서였다는 지적도 함께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1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타지마할 정묘호란 망원경과 현미경 대동법 시행 명예혁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