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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중앙아시아 패권을 두고 서진하던 당과 동진하던 아바스가 처음으로 마주쳤다.
결과당이 패해 중앙아시아에서 물러났다. 포로를 통해 제지술이 이슬람권에 전해졌다.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도시 · 750 · 스뱌토슬라프가 지운 하자르의 도읍
키예프 루스의 스뱌토슬라프가 지웠다
볼가강 하구, 카스피해로 흘러드는 삼각주 지대에 자리했다. 7~10세기 튀르크계 유목국가 하자르 칸국의 도읍으로, 동서 교역로가 만나는 지점이라 크게 번성했다.
하자르 지배층 일부가 유대교로 개종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 — 정확한 개종 시기와 범위(지배층 전체인지 왕실 중심인지)를 둘러싸고는 사료가 부족해 논쟁이 있다 — 중세 튀르크계 국가 중 이례적인 사례로 다뤄진다.
965년 무렵 키예프 루스의 스뱌토슬라프 1세가 하자르를 원정해 이 도읍을 함락하고 크게 파괴했다. 이 타격으로 하자르 칸국은 사실상 국가로서 기능을 잃고 쇠퇴했다.
정확한 유적 위치는 볼가강 삼각주의 퇴적과 수위 변화로 아직 확실히 특정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