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경용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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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AD 2025
시대
주요 공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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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지질시대

기후

조산운동

생물과 공룡

대멸종

인류의 이동

그 해의 정치

세 개의 세계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1건

안사의 난755 – 763
당 vs 안녹산·사사명

절도사가 변방 병력을 독점하면서 중앙보다 강해졌다. 양귀비 일족과의 갈등이 도화선이 됐다.

장안 함락 756낙양 공방

결과8년 만에 진압했지만 당은 회복하지 못했다. 인구 조사 인원이 5,300만에서 1,700만으로 줄었고, 이후 150년간 절도사가 사실상 독립한다.

8년 · 당의 등뼈가 부러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4명

압둘 라흐만 1세정치756 · 몰살을 피해 도망친 왕자
731 – 788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 5년의 도피
  • 코르도바 후우마이야 건국
  • 코르도바 대모스크 착공
이백예술750 · 술과 달의 시인
AD 701 – AD 762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 당시(唐詩)의 정점 — 「시선」이라 불림
  • 안사의 난에 휘말려 유배
  • 물에 비친 달을 잡으려다 죽었다는 전설
두보예술760 · 안사의 난의 고통을 시로 남긴 시성(詩聖)
712 – 770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 「춘망」「석호리」 등 사회시
  • 안사의 난 중 유랑과 성도 초당 생활
  • 율시의 완성자
카를 마르텔장군732 · 망치라 불린 사람
AD 688 – AD 741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
  • 교회 재산으로 기병을 육성
  •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그 무렵의 사건

800
카롤루스의 대관
교황이 프랑크 왕에게 황제관을 씌웠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한다.
서유럽이 로마의 후계를 자처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황제의 오랜 다툼도 여기서 싹튼다.
800
절벽 위의 마을
푸에블로 사람들이 벼랑에 집을 지었다.
콜로라도의 절벽 아래 오목한 곳에 돌집을 층층이 올렸다. 사다리를 걷으면 아무도 못 들어온다. 13세기 말 큰 가뭄이 오자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후손이 오늘의 호피와 주니다.
700
스리위자야의 번성
땅이 아니라 바닷길을 지배해 부를 쌓은 나라였다.
수마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말라카 해협을 장악해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물렸다. 7세기 중국 승려 의정은 이곳에 승려 1천 명이 공부하는 불교 학문 중심지가 있다고 기록했다. 농사보다 무역에 기댄 「바다의 나라」였던 셈이다. 1025년 인도 남부의 촐라 왕조가 함대를 보내 왕도를 약탈했다 — 남아시아 해군력이 동남아시아까지 미친 드문 사례다. 이후 항구에 토사가 쌓이고 다른 항구들이 크며 서서히 저물었다.
698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고구려 유민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818
발해의 전성기(해동성국)
발해는 선왕 때에 이르러 옛 고구려와 부여의 영토 대부분을 아우르는 최대 영역을 이루며 전성기를 맞아, 중국으로부터 '바다 동쪽의 융성한 나라'라는 뜻의 해동성국이라 불렸다.
발해는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세운 나라로, 스스로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식을 분명히 했다. 9세기 선왕 때에 이르러 만주 대부분과 연해주, 한반도 북부에 걸친 최대 영토를 확보하고 지방 행정 제도를 5경 15부 62주로 정비해 안정적인 통치 체제를 갖췄다. 당시 당나라를 비롯한 주변국들은 발해의 융성함을 인정해 '해동성국'이라 부르며 대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했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상경용천부

도시 · 755 · 거란에 함락됐다

【그때 그 자리】

발해의 다섯 수도 가운데 가장 오래 쓰인 곳이다. 지금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이다.

698년 대조영이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다. 이후 중경현덕부로 옮겼다가, 3대 문왕이 755년 무렵 상경으로 옮겼다. 785년 동경으로 갔다가 794년 다시 상경으로 돌아와 926년 멸망까지 여기 있었다.

수도를 여러 번 옮긴 것은 나라의 무게중심이 이동했다는 뜻이다. 초기의 군사적 방어에서 통치와 교역 중심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왜 그렇게 됐나】

상경은 목단강 유역의 넓은 분지에 있다. 농사지을 땅이 넓고, 강을 따라 이동이 가능하다.

2대 무왕은 당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732년 산둥의 등주를 바다 건너 쳤다. 3대 문왕은 방향을 바꿔 당의 제도와 문물을 받아들였다. 이 전환에 맞춰 새 수도가 필요했다.

【어떻게 흘렀나】

상경성은 당의 장안을 본떠 지었다.

외성이 동서 4.6킬로미터, 남북 3.4킬로미터의 직사각형이다. 북쪽 가운데 궁성이 있고 그 앞으로 주작대로에 해당하는 큰길이 남문까지 뻗는다. 안을 바둑판처럼 나눴다.

규모로 보면 당시 당의 장안과 낙양 다음가는 도시였다. 인구는 십만 안팎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장안을 본뜨면서도 다른 점이 있었다. 궁전터에서 온돌이 나왔다. 중국 궁궐에는 없는 것이다. 고구려에서 이어진 난방 방식이 발해의 궁궐에 깔려 있었다.

무덤도 두 계통이 섞였다. 정혜공주 묘는 고구려식 굴식돌방무덤에 모줄임 천장이다. 정효공주 묘는 당식 벽돌무덤인데 벽화의 인물들이 고구려 복식을 하고 있다.

이불병좌상도 나왔다. 두 부처가 나란히 앉은 형식으로 고구려에서 유행하던 것이다.

【그래서】

발해는 일본에 200년간 34번 사신을 보냈다. 상경에서 동해를 건너 일본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일본에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 칭했다.

926년 거란에 멸망했다. 거란은 이 자리에 동란국을 두었다가 곧 주민을 남쪽으로 옮기고 도시를 불태웠다.

【남은 것】

발해를 누구의 역사로 볼 것인가는 지금도 갈린다. 한국은 고구려 계승국으로, 중국은 당의 지방정권으로, 러시아는 연해주 원주민의 나라로 본다.

상경성 유적이 그 논쟁의 한가운데 있다. 도시 설계는 당을 본떴고, 난방과 무덤과 불상은 고구려를 이었다. 두 가지가 한 도시에 있다.

이것을 두고 당의 지방정권이라 읽을 수도, 고구려를 이으면서 당의 제도를 빌려 쓴 독립국이라 읽을 수도 있다. 스스로 고려를 칭한 국서와 독자 연호를 쓴 기록이 후자를 뒷받침한다.

유적 대부분이 중국과 러시아 땅에 있어 한국 연구자가 발굴에 참여하기 어렵다. 이 논쟁이 자료로 결판나지 못하는 현실적 이유가 여기 있다.

지금 남은 것은 궁성터의 주춧돌과 석등, 그리고 흥륭사의 석불이다. 절터의 돌등은 높이 6미터로 발해 석조 유물 가운데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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