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라틴 유럽·비잔틴·이슬람이 지중해를 나눠 가졌다. 카롤루스의 제국은 곧 쪼개졌고 바이킹과 마자르가 유럽을 휘저었다. 동아시아에서는 당이 무너지고 송이 섰다.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왜절도사가 변방 병력을 독점하면서 중앙보다 강해졌다. 양귀비 일족과의 갈등이 도화선이 됐다.
결과8년 만에 진압했지만 당은 회복하지 못했다. 인구 조사 인원이 5,300만에서 1,700만으로 줄었고, 이후 150년간 절도사가 사실상 독립한다.
「나라는 부서졌으나 산하는 남았다」— 이백이 하늘의 시인이라면 두보는 땅의 시인이었다.
아바스가 우마이야 일족을 몰살할 때 혼자 살아 다섯 해를 도피해 이베리아에 닿았다. 거기서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고 300년을 갔다.
관직에는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평생을 떠돌았다. 즉흥으로 지은 시 1,000여 편이 남았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도시 · 762 · 칼리파가 원형으로 설계한 도시
【그때 그 자리】
750년 아바스 왕조가 우마이야를 뒤엎었다. 우마이야의 수도는 다마스쿠스로, 지중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아바스는 페르시아계 개종자들의 힘으로 일어섰으므로 동쪽에 무게를 두어야 했다.
762년 칼리프 만수르가 티그리스강 서안에 새 수도를 세웠다. 자리를 고를 때 여러 곳에서 밤을 지내며 기후와 물과 모기를 살폈다고 전한다.
【왜 그렇게 됐나】
위치가 계산의 결과였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가 가장 가까워지는 지점이라 두 강의 물길을 함께 쓸 수 있었다. 페르시아만을 통해 인도양으로 나가고, 육로로 중앙아시아와 지중해로 이어졌다.
도시는 원형으로 설계됐다. 지름 2.7킬로미터의 이중 성벽 안에 네 개의 문을 두고, 한가운데에 궁전과 모스크를 놓았다. 완벽한 원이라 평화의 도시라 불렸다. 10만 명이 4년간 지었다.
【어떻게 흘렀나】
9세기에 인구가 100만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세계 최대 도시였다.
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든 것은 지혜의 집이다. 칼리프 마문이 세운 이 기관에서 그리스어와 산스크리트어와 시리아어와 페르시아어 문헌이 아랍어로 번역됐다. 번역가에게 책 무게만큼 금을 줬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갈레노스와 히포크라테스, 유클리드와 프톨레마이오스가 보존됐다. 유럽은 이 아랍어 판본을 라틴어로 다시 옮겨 자기 고전을 되찾는다.
만들어낸 것도 많다. 알콰리즈미가 대수학을 세웠고, 인도에서 온 숫자와 영의 개념이 정리됐다. 알하이삼이 실험으로 광학을 밝혔다. 세계 최초의 공공 병원과 약국이 여기 있었다. 종이 공장이 794년에 섰다. 종이가 있어 책이 많아졌고, 책이 많아 학문이 쌓였다.
천일야화의 배경이 이 도시다. 하룬 알라시드는 실존한 칼리프다.
【그래서】
9세기 후반부터 칼리프의 실권이 약해졌다. 튀르크 근위대와 부와이 가문이 실권을 쥐었다.
1258년 훌라구의 몽골군이 함락했다. 도서관의 책을 티그리스강에 던져 물이 잉크로 검게 물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관개 수로가 파괴돼 농업 기반이 무너졌고 회복에 수백 년이 걸렸다.
【남은 것】
496년간 세계 지식의 중심이었다. 이 시기를 이슬람의 황금기라 부른다.
유럽에서 12세기 이후 대학이 서고 아리스토텔레스가 다시 읽힌 것은 톨레도와 시칠리아에서 아랍어 책이 라틴어로 옮겨진 뒤다. 르네상스의 재료 상당 부분이 이 길로 왔다.
20세기 이후 이 도시는 다시 여러 차례 전쟁을 겪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때 국립박물관과 도서관이 약탈되고 불탔다. 1258년의 일이 745년 만에 되풀이됐다는 지적이 그때 여러 곳에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