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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고구려가 낙랑을 몰아내고 남하했다. 광개토대왕·장수왕 대에 최전성기를 맞았고 백제와 신라가 동맹으로 맞섰다.
왜동로마와의 소모전과 왕위 다툼으로 사산조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무슬림 군대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결과400년 이어진 페르시아 제국이 사라지고 이란이 이슬람권으로 편입됐다.
10년 만에 시리아·이집트·페르시아를 정복했다. 정복지의 세금·군대·달력 제도를 세워 아랍 부족 연합을 제국으로 바꿨다.
국법을 어기고 서역으로 나가 17년 만에 경전 657부를 싣고 돌아왔다. 그의 여행기는 인도 역사의 1급 사료다.
신라 진골 성골 혈통이 끊길 위기에서 즉위한 한국사 최초의 여왕. 첨성대를 세우고 황룡사 9층 목탑을 건립하는 등 불교를 통해 왕실의 권위를 세우려 했다.
딸이 죽은 대야성 함락 뒤 고구려와 일본을 거쳐 당으로 갔다. 진골로서 처음 왕이 됐다.
형제를 죽이고 아버지를 밀어내 즉위했지만, 신하의 간언을 듣고 돌궐을 꺾어 「천가한」으로 불린 황제가 됐다.
가야 왕족의 후손으로 신라군을 이끌어 백제와 고구려를 무너뜨렸다.
황산벌에서 5천으로 신라 5만을 맞았다. 네 번 이기고 다섯 번째에 무너졌다. 떠나기 전 자기 가족을 죽였다고 전한다.
당으로 가던 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돌아섰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렸다는 깨달음이다. 이후 시장과 마을을 돌며 글 모르는 사람에게 불교를 전했다.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여름 남서풍에 인도로, 겨울 북동풍에 돌아왔다. 계절풍을 읽어낸 것이 로마와 인도를 직접 이었다.
전쟁 · 642 · 400년 왕조가 10년 만에
동로마와의 소모전과 왕위 다툼으로 사산조는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무슬림 군대가 그 틈을 파고들었다. 400년 이어진 페르시아 제국이 사라지고 이란이 이슬람권으로 편입됐다.
【그때 그 자리】 628년이다. 동로마와의 26년 전쟁이 끝났다.
사산조가 졌다. 호스로 2세가 아들에게 살해됐다.
그 뒤 4년 동안 왕이 열 명 넘게 바뀌었다. 여왕이 둘 있었고, 며칠 만에 죽은 왕도 있었다.
재정이 바닥났고 귀족들이 갈렸다.
【왜 그렇게 됐나】 632년 야즈데게르드 3세가 즉위했다. 여덟 살이었다.
같은 해 아라비아에서 무함마드가 죽고, 아부 바크르가 첫 칼리프가 됐다.
아랍 부족들이 처음으로 하나로 묶였다. 그리고 밖으로 나갔다.
동로마와 사산조 양쪽으로 동시에 갔다.
【어떻게 흘렀나】 636년 카디시야다.
사산군이 코끼리를 앞세웠다. 아랍군이 코끼리의 코와 눈을 창으로 찌르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나흘을 싸웠다. 셋째 날 밤 아랍의 지원군이 도착했는데, 사막에서 오는 먼지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많아 보였다.
사산군이 무너졌다. 총사령관 로스탐이 죽었다.
수도 크테시폰이 함락됐다. 유명한 「호스로의 봄 양탄자」를 잘라 병사들에게 나눠 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642년 니하완드가 결정타였다. 「승리 중의 승리」라 불린다.
야즈데게르드 3세가 동쪽으로 달아났다. 651년 메르브 근처에서 물방앗간 주인에게 살해됐다 — 옷과 보석을 노린 것이었다.
【그래서】 왜 그렇게 빨랐는가.
동로마와의 전쟁으로 이미 탈진해 있었다.
귀족들이 왕에게 협조하지 않았다. 각자 자기 영지를 지키려 했다.
조로아스터교 사제 계급의 특권이 무거워 민심을 잃었다. 인두세를 내면 종교를 유지할 수 있다는 아랍의 조건이 오히려 가벼웠다.
그리고 국경 지역의 아랍계 주민들이 이미 있었다. 지리를 알았다.
【남은 것】 이란이 이슬람권이 됐다. 다만 아랍화되지는 않았다.
언어를 지켰다. 이집트와 시리아와 북아프리카가 아랍어로 바뀐 것과 다르다.
페르시아어가 아랍 문자로 적히며 살아남았고, 10세기에 피르다우시가 「샤나메」를 써서 옛 왕들의 이야기를 되살렸다. 아랍어 낱말을 되도록 쓰지 않고 지었다.
그리고 시아파가 이란에 자리를 잡았다. 16세기 사파비 왕조 때 국교가 된다.
조로아스터교도 일부가 인도로 건너갔다. 그 후손이 파르시다 — 타타 그룹의 창업 가문이 그중 하나다.
「400년 제국이 10년 만에」라는 표현이 자주 쓰이는데, 실제로는 그 앞의 26년이 이미 무너뜨려 놓은 뒤였다.
지도에서 보기: 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야르무크 전투 백제·고구려 멸망 나당전쟁 카르발라 전투 비잔티움-사산 최후의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