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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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억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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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종교전쟁

가톨릭과 개신교가 국가 단위로 갈라져 싸웠다. 신앙이 곧 국제 정치였고 30년전쟁이 그 정점이었다.

한반도

양란 이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연달아 겪었다. 국토가 황폐해지고 명청 교체 속에서 북벌론과 실학이 함께 나왔다.

전쟁 3건

네덜란드 독립전쟁1568 – 1648
네덜란드 북부 7주 vs 스페인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의 중과세와 가톨릭 강요에 개신교(칼뱅파)가 강한 네덜란드 북부 주들이 반발했다.

레이던 공방전 1574위트레흐트 동맹 1579

결과80년에 걸친 전쟁 끝에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스페인이 네덜란드의 독립을 공식 인정했다. 흔히 '80년 전쟁'으로도 불린다.

80년 · 네덜란드 독립, 해상 무역 강국으로 성장
시베리아 정복1581 – 1639
러시아 코사크 vs 시비르 칸국·시베리아 원주민

우랄산맥 동쪽의 모피(담비 가죽)를 노린 스트로가노프 상단이 코사크 두목 예르마크를 고용해 시비르 칸국을 쳤다.

추바시곶 전투 1582카슐리크 함락 1582이르티시강 야습 1585

결과예르마크는 1585년 야습으로 죽었지만 정복은 멈추지 않았다. 코사크들은 강을 따라 요새(오스트로그)를 하나씩 세우며 동쪽으로 밀고 나가 1639년 태평양에 닿았다 — 우랄을 넘은 지 60년도 안 된 때다.

58년 · 대륙 하나를 가로지름
30년전쟁1618 – 1648
신성로마 황제·가톨릭 vs 개신교 제후·스웨덴·프랑스

보헤미아에서 개신교 귀족이 황제의 관리를 창밖으로 던졌다.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종교 갈등에 주변 강대국이 세력 다툼으로 끼어들었다.

백산 1620브라이텐펠트 1631뤼첸 1632로크루아 1643

결과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주권국가 체제가 자리 잡는다.

30년 ·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15명

허준과학1610 · 동의보감을 쓴 의원
1539 – 1615

서자 출신으로 어의가 됐다. 전쟁으로 약재가 끊긴 나라에서 우리 땅에서 나는 약으로 고치는 법을 정리했다.

  • 동의보감 25권 — 15년에 걸쳐 완성
  •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 백성이 스스로 찾아 쓸 수 있게 향약 이름을 한글로 달았다
케플러과학1609 · 타원 궤도를 찾은 천문학자
1571 – 1630

티코 브라헤의 관측 자료로 행성이 타원을 그리며 돈다는 것을 밝혔다.

  • 행성운동 제1·2법칙 1609
  • 제3법칙 1619
  • 뉴턴 만유인력의 토대
하비과학1628 · 피가 순환한다는 것을 밝히다
1578 – 1657

심장이 뿜는 피의 양을 계산해 혈액이 몸을 순환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 심장과 피의 운동에 관하여 1628
  • 혈액순환설 확립
  • 생리학의 출발점
리슐리외정치1630 · 왕권을 세우고 프랑스를 강국으로 만든 추기경 재상
1585 – 1642

위그노의 요새를 부수고 귀족의 성을 헐었으며, 가톨릭 추기경이면서 개신교 스웨덴에 돈을 대 합스부르크를 견제했다.

  • 루이 13세의 재상(1624–1642)
  • 라로셸 함락(1628), 위그노 정치권 박탈
  • 30년전쟁 개입, 국가이성 외교
구스타브 아돌프장군1631 · 30년전쟁에 뛰어들어 스웨덴을 강국으로 만든 「북방의 사자」
1594 – 1632, 재위 1611 – 1632

기동성 있는 보병과 경포병으로 근대 전술을 열었다. 브라이텐펠트에서 이기고 뤼첸에서 이기며 죽었다.

  • 30년전쟁 개입(1630)
  • 브라이텐펠트 승리(1631)
  • 뤼첸 전투 전사(1632)
세르반테스예술1605 · 「돈키호테」로 근대 소설을 연 작가
1547 – 1616

레판토에서 왼손을 잃고 알제에서 5년을 노예로 살았다. 감옥에서 구상한 미친 기사 이야기가 세계 문학의 첫 근대 소설이 됐다.

  • 레판토 해전 참전(1571), 왼손 부상
  • 알제 억류 5년
  • 「돈키호테」 1부(1605)·2부(1615)
샤 자한정치1632 · 타지마할을 지은 황제
1592 – 1666

아내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무덤을 짓기 시작했다. 22년이 걸렸다.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 타지마할 22년 공사
  • 델리에 붉은 성
  • 아들에게 유폐된 채 죽음
갈릴레이과학1633 · 눈으로 본 것을 굽히지 않은 사람
AD 1564 – AD 1642

직접 만든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과 금성의 위상을 봤다. 지구가 중심이 아니라는 증거였고, 그 대가로 여생을 가택 연금으로 보냈다.

  • 목성의 위성 4개 발견 1610
  • 「두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로 종교재판
  • 실험과 수학으로 자연을 설명 — 근대 과학의 방법
도쿠가와 이에야스정치1603 · 260년 에도 막부를 연 쇼군
1543 – 1616

인질로 자라 인내로 천하를 얻었다. 세키가하라에서 이기고 오사카에서 히데요시의 아들을 없앤 뒤 일본을 250년 평화로 묶었다.

  • 세키가하라 전투 승리(1600)
  • 에도 막부 개창(1603)
  • 오사카 전투, 도요토미 가문 멸망(1615)
셰익스피어예술1600 · 「햄릿」「리어왕」의 극작가, 영어의 조각가
1564 – 1616

37편의 희곡과 154편의 소네트. 인간의 모든 얼굴을 무대에 올렸고 영어에 수천 개의 표현을 남겼다.

  • 「로미오와 줄리엣」「햄릿」「맥베스」
  • 글로브 극장의 배우 겸 극작가
  • 1623년 「퍼스트 폴리오」 출간
데카르트과학1637 · 의심에서 다시 시작한 사람
AD 1596 – AD 1650

확실한 것을 찾으려 모든 것을 의심했고, 의심하는 자신만은 의심할 수 없다는 데서 멈췄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 해석기하학 — 좌표로 도형을 다룸
  • 「방법서설」을 라틴어 아닌 프랑스어로 씀
아바스 1세정치1598 · 이스파한을 「세계의 절반」으로 만든 사파비의 대왕
1571 – 1629, 재위 1588 – 1629

키질바시 부족의 힘을 꺾고 노예 병사와 화약 무기로 군대를 재편했다. 오스만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고 이스파한을 수도로 꾸몄다.

  • 이스파한 천도(1598)
  • 오스만·우즈베크 격퇴, 바그다드 탈환
  • 굴람 군단 창설, 유럽·아르메니아 상인 유치
권율장군1593 · 행주대첩의 장군
1537 – 1599

행주산성에서 3천으로 3만을 막았다. 부녀자들이 치마에 돌을 날랐다는 이야기가 여기서 나왔다.

  • 1593년 행주대첩
  • 이치 전투에서 전라도를 지킴
  • 도원수로 조선군 전체를 지휘
이순신장군1592 · 삼도수군통제사
1545 – 1598

남해의 제해권을 지켜 일본군의 보급선을 끊었다. 23전 23승.

  • 옥포·한산도 대첩
  • 명량에서 13척으로 승리
  • 노량에서 전사
유성룡정치1592 · 임진왜란의 재상
1542 – 1607

이순신과 권율을 발탁했다. 전쟁이 끝난 뒤 파직되어 고향에서 징비록을 썼다 — 다시는 이러지 말자는 기록이다.

  • 이순신·권율 천거
  • 훈련도감 설치
  • 징비록 — 스스로를 벌하는 기록

그 무렵의 사건

1609
망원경과 현미경
네덜란드 안경 장인의 렌즈 두 장이 하늘과 세포를 열었다. 갈릴레이는 목성의 달을, 레이우엔훅은 미생물을 보았다.
1608년 미델뷔르흐의 리페르스헤이가 망원경 특허를 냈고 이듬해 갈릴레이가 20배로 개량해 달의 산과 목성의 위성을 보았다 — 천동설의 근거가 무너졌다. 현미경은 1660년대 훅이 코르크의 「세포」를 이름 붙였고 델프트의 포목상 레이우엔훅이 물방울 속 미생물과 정자를 처음 보았다. 두 기구가 인간의 눈이 닿는 범위를 우주와 미시 세계로 넓혔다.
1627
정묘호란
후금이 광해군을 몰아낸 인조 정권의 친명배금 정책을 문제 삼아 조선을 침공했고,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는 조건으로 강화했다.
광해군은 명과 후금(훗날의 청) 사이에서 실리를 좇는 중립 외교를 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선은 명을 가까이하고 후금을 배척하는 친명배금 정책으로 돌아섰다. 이를 명분 삼아 1627년 후금의 군대가 조선을 침공했다(정묘호란). 후금군은 평안도 일대를 휩쓸며 빠르게 남하했지만, 명과의 전쟁도 함께 치르고 있던 후금 입장에서 조선을 완전히 정복할 여력까지는 없었다. 결국 양측은 조선과 후금이 형제 관계를 맺는다는 조건으로 강화를 맺었다. 그러나 후금이 청으로 국호를 바꾸고 군신 관계(사대)를 요구하자 조선이 이를 거부하면서, 10년 뒤 병자호란이 다시 벌어지게 된다.
1608
대동법 시행
특산물을 현물로 바치던 공납을 쌀·베·동전으로 통일해 걷은 대동법은 100년에 걸쳐 전국으로 확대되며 조세 제도를 크게 바꿨다.
조선 전기의 공납 제도는 각 고을에 정해진 특산물을 바치게 했는데, 생산되지 않는 물품이 배정되거나 상인(방납업자)이 대신 납부하며 폭리를 취하는 등 폐단이 극심했다. 이이 등이 대안으로 수미법을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다가, 임진왜란 이후 재정이 파탄 나자 광해군 즉위년(1608)에 경기도부터 대동법이 시행되었다. 대동법은 토지 결수를 기준으로 쌀(대동미)이나 베, 동전을 걷어 국가가 필요한 물품을 직접 구매하도록 했는데, 이는 토지를 많이 가진 지주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방식이었다. 지주들의 반발로 확대에 시간이 걸려, 전국 시행까지는 100년이 걸려 숙종 34년(1708)에야 완료되었다. 대동법 시행으로 국가에 필요한 물품을 대는 공인이라는 어용상인이 성장했고, 이는 조선 후기 상품 화폐 경제 발달의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1632
타지마할
아내의 무덤을 짓는 데 22년이 걸렸다.
뭄타즈 마할이 열네 번째 아이를 낳다 죽자 샤 자한이 짓기 시작했다. 흰 대리석에 페르시아와 인도와 이슬람 양식이 섞였다. 그는 말년에 아들에게 갇혀 그 무덤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죽었다.
1603
에도 막부 성립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쇼군이 되어 에도에 막부를 열었다. 260년 평화와 쇄국의 시작이다.
세키가하라에서 이긴 이에야스는 천황에게 정이대장군 칭호를 받아 에도에 정부를 세웠고 2년 만에 아들에게 물려줘 세습을 굳혔다. 다이묘는 격년으로 에도에 살아야 했고 처자는 인질로 남았다. 1630년대에는 기독교를 금하고 해외 도항을 막아 나가사키의 네덜란드·중국 상인만 남겼다. 이 긴 평화 속에 조닌 문화와 우키요에가 꽃폈다.
1602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설립
1602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이자 사실상 준국가적 권한을 가진 무역회사 네덜란드 동인도회사(VOC)가 설립됐다.
여러 소규모 무역상사를 하나로 통합해 만들어진 이 회사는 자체 군대와 함대를 두고 조약을 맺을 권한까지 가진, 오늘날 기업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향신료 무역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며 오늘날 인도네시아 지역에 광범위한 식민 지배 체제를 구축했고, 이는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로 이어졌다. 암스테르담 증권거래소에서 이 회사 주식이 거래된 것은 근대 주식시장의 출발점 중 하나로도 꼽힌다.

교역로 2개

희망봉 항로1500 – 1900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오간 것후추와 면직물, 그리고 나중엔 차와 아편. 지중해를 거치지 않는 길이 베네치아와 오스만을 밀어냈다.
거점리스본 · 카나리아 · 희망봉 · 모잠비크 · 고아 · 말라카
대서양 삼각무역1600 – 1850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오간 것유럽의 총기·직물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1,200만 명이 대서양을 건넜다.
거점리버풀 · 리스본 · 기니만 · 카리브 · 버지니아

30년전쟁

전쟁 · 1618 · 신성로마 황제·가톨릭 vs 개신교 제후·스웨덴·프랑스

보헤미아에서 개신교 귀족이 황제의 관리를 창밖으로 던졌다. 신성로마제국 내부의 종교 갈등에 주변 강대국이 세력 다툼으로 끼어들었다. 독일 인구의 3분의 1이 사라졌다.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주권국가 체제가 자리 잡는다.

【그때 그 자리】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로 신성로마제국의 종교 문제가 봉합돼 있었다. 각 영방의 군주가 가톨릭이냐 루터파냐를 정하고 백성은 따른다는 원칙이었다. 개인의 신앙 자유가 아니라 영주의 선택권이었다.

이 봉합에는 구멍이 있었다. 칼뱅파가 빠져 있었다. 그런데 60년 사이 칼뱅파가 크게 늘었다.

제국은 300개가 넘는 영방으로 쪼개져 있었고 황제는 합스부르크 가문이 세습했다. 합스부르크는 에스파냐 왕가와 한 집안이라, 제국 문제가 곧 유럽 문제였다.

【왜 그렇게 됐나】

1618년 보헤미아에서 시작됐다. 개신교 귀족들이 프라하 성에서 황제의 관리 둘을 창밖으로 던졌다. 20미터 아래 거름더미에 떨어져 살았다. 가톨릭 쪽은 천사가 받았다 했고 개신교 쪽은 거름 덕이라 했다.

보헤미아 귀족들이 칼뱅파인 팔츠 선제후를 왕으로 뽑자 황제가 군대를 보냈다.

【어떻게 흘렀나】

종교 전쟁으로 시작했지만 곧 다른 것이 됐다.

덴마크가 개신교를 돕는다며 들어왔다.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가 들어와 이겼는데, 그 배후에서 돈을 댄 것이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였다. 프랑스 재상 리슐리외는 추기경이었다. 그가 개신교 편에 선 이유는 신앙이 아니라, 합스부르크가 프랑스를 동서로 둘러싸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이 순간 종교 전쟁의 외피가 벗겨졌다.

전쟁 방식도 참혹했다. 병력 대부분이 용병이었고 급여가 밀리면 스스로 약탈했다. 발렌슈타인은 전쟁으로 전쟁을 먹인다는 원칙으로 군대를 운영했다. 1631년 마그데부르크에서 인구 3만 중 2만 5천이 죽었다.

군대가 지나간 곳에 역병과 기근이 따랐다. 독일 지역 인구가 30퍼센트 안팎, 일부 지역은 절반 넘게 줄었다.

【그래서】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끝났다. 협상에 5년이 걸렸고 유럽 거의 모든 세력이 참여했다.

내용은 이랬다. 칼뱅파를 인정하고, 각 영방이 종교를 정하며, 스위스와 네덜란드의 독립을 승인하고, 프랑스와 스웨덴이 영토를 얻고, 황제의 권한이 크게 줄었다.

【남은 것】

이 조약이 중요한 이유는 조항보다 전제에 있다. 종교가 다른 나라들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한 체제 안에 공존하기로 한 것이다. 각 나라가 자기 영토 안에서 최고 권한을 갖고, 다른 나라가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여기서 문서가 됐다.

오늘날 주권국가 체제의 출발점으로 이 조약을 드는 이유다. 유엔에서 나라마다 한 표를 갖는 것도 이 계보 위에 있다.

동시에 독일 지역은 300개 영방으로 쪼개진 채 굳었다. 통일이 200년 넘게 늦어졌고, 그 지연이 19세기 독일 민족주의의 강렬함으로 이어졌다는 해석이 있다.

유럽이 종교로 서로를 죽이는 일을 멈춘 것은, 관용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30년을 죽인 뒤 더는 그럴 힘이 없어서였다는 지적도 함께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16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세키가하라 전투 병자호란 영국 내전 임진왜란 명청 교체 영국-에스파냐 전쟁과 무적함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