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투어 · 아무 곳이나 누르면 멈춤
지도에 표시
지도는 휠·더블클릭·드래그 · PgUp/PgDn은 스냅샷 이동
게이지를 Shift+드래그하면 10배 정밀 · 오른쪽 눈금은 인물·전쟁·사건이 있는 자리
틀린 데나 빠진 데를 알려주시면 확인하고 고칩니다.
이 브라우저에만 저장됩니다. 서버로 아무것도 보내지 않습니다.
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그리스 각지에 도시국가가 섰다. 왕정이 귀족정으로, 다시 참주정과 민주정으로 갈라졌다. 인구가 늘어 흑해와 시칠리아까지 식민시를 세웠다. 같은 무렵 이탈리아에서는 로마가 왕을 몰아내고 공화정을 세운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주 왕실이 힘을 잃자 제후들이 「왕을 받든다」는 명분으로 서로를 쳤다. 실제로는 패자 자리를 다툰 것이다.
결과170여 나라가 십여 개로 줄었다. 전쟁이 잦아지자 병법과 외교술이 발달했고, 그 혼란 속에서 공자와 제자백가가 나왔다.
왜메디아를 무너뜨린 키루스가 서쪽 리디아와 남쪽 바빌로니아로 방향을 돌렸다.
결과8년 만에 근동 전체를 손에 넣었다. 정복민의 종교를 인정하고 유대인을 귀환시킨 관용 정책이 통치 비용을 크게 낮췄다.
작은 속국에서 시작해 20년 만에 근동 전체를 손에 넣었다. 정복민의 신과 관습을 인정한 것이 통치 비용을 크게 낮췄다.
숫자가 만물의 근원이라 믿은 사람
석가족 왕자로 나 스물아홉에 집을 나섰다. 극단적인 고행도 답이 아니라고 보고 가운데 길을 택했다. 그가 말한 것은 신이 아니라 원인이었다.
부처와 같은 시대, 같은 지역에서 브라만의 권위를 부정했다. 어떤 생명도 해치지 말라는 불살생을 끝까지 밀고 갔다.
해당 없음
전쟁 · BC 547 · 정복하고 돌려보낸 왕
메디아를 무너뜨린 키루스가 서쪽 리디아와 남쪽 바빌로니아로 방향을 돌렸다. 8년 만에 근동 전체를 손에 넣었다. 정복민의 종교를 인정하고 유대인을 귀환시킨 관용 정책이 통치 비용을 크게 낮췄다.
【그때 그 자리】 BC 6세기 중엽이다. 오리엔트가 넷으로 갈려 있었다.
메디아·리디아·신바빌로니아·이집트다.
페르시아는 그 가운데 메디아의 속국이었다. 안샨의 작은 왕국이다.
【왜 그렇게 됐나】 BC 550년 키루스 2세가 메디아를 무너뜨렸다.
외할아버지 아스티아게스를 친 것이라고 헤로도토스가 적었다. 손자가 자기를 몰아낼 것이라는 꿈을 꾸고 죽이라 명했는데 살아남았다는 이야기다.
탄생 설화의 전형이라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확실한 것은 메디아군이 싸움 도중에 왕을 배신하고 키루스 쪽으로 넘어갔다는 점이다.
【어떻게 흘렀나】 다음이 리디아다. 왕 크로이소스는 부유하기로 유명했다 — 「크로이소스만큼 부자」라는 표현이 지금도 있다.
그가 델포이 신탁에 물었다. 「페르시아를 치면 어떻게 되겠는가.」
답이 왔다. 「큰 제국이 무너질 것이다.」
그것이 자기 제국이었다. BC 547년 사르디스가 함락됐다.
이때 낙타를 앞세워 리디아의 기병을 무력화했다고 전한다. 말이 낙타 냄새를 싫어했다는 것이다.
BC 539년 바빌론이다. 유프라테스강의 물길을 돌려 수위를 낮추고 강바닥으로 들어갔다는 기록이 있다.
거의 싸우지 않고 들어갔다. 바빌론 사제들이 자기네 왕 나보니두스에게 불만이 컸기 때문이다 — 그가 마르두크 대신 달의 신을 높였다.
【그래서】 다스리는 방식이 달랐다.
「키루스 원통」이 남아 있다. 점토 원통에 아카드어로 적은 문서다.
자기가 마르두크의 뜻으로 왔다고 하고, 신상을 원래 신전으로 돌려보냈으며, 끌려온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아가게 했다고 적었다.
그 가운데 유대인이 있었다. 바빌론 유수가 끝나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세워진다.
구약이 그를 「기름 부음 받은 자(메시아)」라 불렀다. 이방인 왕에게 그 말을 쓴 유일한 사례다.
【남은 것】 「키루스 원통」이 「세계 최초의 인권 선언」이라 불리기도 한다. 1971년 이란이 유엔에 사본을 기증했다.
학계는 그 표현을 과하다고 본다. 정복 군주가 정통성을 세우려 낸 선전 문서라는 것이다.
그래도 방식은 분명히 달랐다. 아시리아가 사람을 옮겨 섞었다면, 페르시아는 제자리에 두고 자기 신을 섬기게 했다.
그 관용이 제국을 200년 유지시켰다. 세금만 내면 언어와 종교와 관습을 그대로 두었다.
무덤이 파사르가다에에 있다. 알렉산드로스가 그곳에 들렀다가 도굴된 것을 보고 복구를 명했다는 기록이 있다.
지도에서 보기: BC 700년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