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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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대항해와 인쇄

포르투갈과 에스파냐가 바닷길을 열어 아메리카를 유럽 경제에 편입시켰다. 인쇄술이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한반도

조선 전기

성리학을 국시로 삼은 새 왕조. 훈민정음과 측우기의 시대이자 사림과 훈구가 다투던 때다.

전쟁 3건

백년전쟁1337 – 1453
잉글랜드 vs 프랑스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주장한 잉글랜드 왕과, 대륙에 남은 잉글랜드 영지를 거두려는 프랑스 왕이 부딪혔다. 플랑드르의 모직 이권도 걸려 있었다.

크레시 1346푸아티에 1356아쟁쿠르 1415오를레앙 1429카스티용 1453

결과116년 만에 프랑스가 대륙에서 잉글랜드를 몰아냈다. 양국 모두 국민 의식이 생겨났다.

116년 · 흑사병과 겹쳐 양국 인구가 크게 줄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1453
오스만 (메흐메트 2세) vs 동로마

오스만이 발칸과 아나톨리아를 모두 차지하자 이 도시는 고립된 섬이 됐다. 메흐메트 2세가 거대 대포를 준비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포위 1453

결과1123년 버틴 성벽이 뚫리고 동로마가 끝났다. 지도에서 로마의 마지막 색이 사라진다.

53일 포위 · 병력 8만 대 7천, 거대 대포가 성벽을 뚫었다
장미전쟁1455 – 1487
랭커스터 vs 요크

백년전쟁 패배로 귀족들이 프랑스 영지를 잃고 국내로 돌아왔다. 헨리 6세의 정신 질환이 권력 공백을 만들었다.

타우턴 1461보즈워스 1485

결과보즈워스에서 리처드 3세가 전사하고 튜더 왕조가 열렸다. 대귀족이 서로를 소모시킨 끝에 왕권이 오히려 강해졌다.

32년 · 중세 잉글랜드의 끝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8명

메흐메트 2세장군1453 · 오스만 술탄
1432 – 1481

스물한 살에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함락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그의 대포에 뚫렸다.

  •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1453
  • 발칸과 아나톨리아 정복
  • 이스탄불 재건
히아와타정치1450 · 다섯 부족을 묶은 사람
15세기 무렵

서로 죽이던 다섯 부족을 하나의 연맹으로 묶었다. 만장일치로 정하고 전쟁은 함께 결정한다는 규칙을 조개구슬 띠에 새겨 전했다. 글자 없이 헌법을 남긴 것이다.

  • 이로쿼이 연맹
  • 대법 — 만장일치와 여성 장로의 추장 지명권
  • 프랭클린이 이 연맹을 본보기로 들었다
세종정치1443 · 조선 4대 왕
1397 – 1450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측우기와 자격루, 농사직설도 이 시대다.

  • 훈민정음 창제 1443
  • 측우기·자격루·칠정산
  • 4군 6진 개척
파차쿠텍정치1438 · 세상을 뒤집는 자
1418 무렵 – 1471 무렵

찬카족이 쳐들어왔을 때 아버지와 형은 달아났고 그는 남아 막았다. 그 뒤 90년 만에 에콰도르에서 칠레까지 4천 킬로미터를 아우르는 나라를 만들었다.

  • 쿠스코를 다시 설계
  • 4만 킬로미터 도로망
  • 마추픽추를 지은 것으로 본다
울루그 베그과학1437 · 천문대를 세운 정복자의 손자
1394 – 1449

티무르의 손자인데 별을 봤다. 반지름 40미터 육분의로 항성 1,018개의 자리를 재고 1년의 길이를 365일 6시간 10분 8초로 계산했다. 오차가 1분 이내다.

  • 사마르칸트 천문대
  • 항성 목록 1,018개
  • 종교 세력의 반발로 아들에게 살해
장영실과학1434 · 관노 출신의 기술자
1390 무렵 – ?

어머니가 관기였다. 세종이 신분을 넘어 썼다. 스스로 시각을 알리는 물시계와 비의 양을 재는 그릇을 만들었다.

  • 자격루 — 스스로 치는 물시계
  • 측우기 — 세계 최초의 정량 강우 측정
  • 혼천의·앙부일구
  • 임금의 가마가 부서져 파직된 뒤 기록이 끊긴다
황희정치1431 · 조선의 재상
1363 – 1452

18년을 영의정으로 있었다. 양녕대군 폐위에 반대해 유배됐다가 세종이 다시 불렀다. 반대했던 사람을 쓴 것이다.

  • 영의정 18년
  • 세종의 치세를 실무로 떠받침
  • 네 말도 옳고 네 말도 옳다
잔 다르크장군1429 · 오를레앙의 처녀
1412 – 1431

열일곱에 군을 이끌고 오를레앙의 포위를 풀었다. 2년 뒤 화형당했다.

  • 오를레앙 포위를 풂 1429
  • 샤를 7세의 대관식을 성사
  • 루앙에서 화형

그 무렵의 사건

1453
계유정난
수양대군은 정변을 일으켜 어린 조카 단종을 보좌하던 김종서 등을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 뒤, 2년 후 스스로 왕위에 올랐다.
문종이 일찍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김종서와 황보인 등 원로대신이 국정을 이끌었다. 숙부인 수양대군은 이를 왕권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1453년 사병을 동원해 한명회 등과 함께 김종서를 살해하고 정적들을 숙청했다(계유정난). 그는 이 정변으로 병권과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고, 2년 뒤인 1455년 단종에게서 왕위를 넘겨받아 세조로 즉위했다. 성삼문 등 집현전 학사 출신 신하들(사육신)이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처형되었고, 단종 자신도 결국 유배지 영월에서 죽음을 맞았다. 세조는 이후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하는 등 중앙집권 체제를 다졌다.
1450
구텐베르크 인쇄술
활판 인쇄가 유럽에서 시작됐다. 지식의 복제 비용이 무너졌다.
지식의 복제 비용이 무너졌다. 60년 뒤 종교개혁을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
1450
팀북투의 책
어떤 상품보다 책이 큰 이익을 남긴다고 적혀 있다.
사막을 건너온 소금과 남쪽에서 올라온 금이 만나는 자리였다. 상코레에 학생 2만 5천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필사본 30만 점이 남아 있고, 2012년 무장 세력이 왔을 때 주민들이 상자에 담아 남쪽으로 빼돌려 지켰다.
1450
이로쿼이 연맹
글자 없이 헌법을 만든 사람들.
서로 죽이던 다섯 부족이 하나로 묶였다. 만장일치로 정하고, 여성 장로가 추장을 지명하고 잘못하면 물러나게 했다. 조개구슬 띠에 새겨 외워 전했다. 프랭클린이 이 연맹을 미국 연방의 본보기로 들었다는 점은 지금도 논쟁거리다.
1450
마추픽추
잉카 파차쿠텍이 안데스 능선 2,430m에 세운 도시. 에스파냐인은 끝내 찾지 못했다.
우루밤바 계곡 위 절벽에 돌을 깎아 맞춘 신전과 계단밭, 태양을 묶는 돌 인티와타나가 있다. 왕의 별장이자 종교 중심지였고 100년도 못 쓰고 버려졌다. 1911년 미국인 하이럼 빙엄이 원주민 안내로 「발견」해 세계에 알렸고 예일대가 가져간 유물은 100년 뒤 돌아왔다. 관광객 발길로 침하가 진행되어 입장을 제한한다.
1443
훈민정음
세종이 백성이 쓸 문자를 만들었다. 3년 뒤 반포한다.
글을 아는 사람의 범위가 근본적으로 넓어졌다.

교역로 2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콘스탄티노폴리스 함락

전쟁 · 1453 · 오스만 (메흐메트 2세) vs 동로마

오스만이 발칸과 아나톨리아를 모두 차지하자 이 도시는 고립된 섬이 됐다. 메흐메트 2세가 거대 대포를 준비했다. 1123년 버틴 성벽이 뚫리고 동로마가 끝났다. 지도에서 로마의 마지막 색이 사라진다.

【그때 그 자리】

1453년의 비잔티움 제국은 이름만 제국이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성벽 안과 펠로폰네소스 일부가 전부였고 도시 인구는 전성기 50만에서 5만 아래로 줄어 성 안에 밭을 갈고 있었다. 1204년 4차 십자군이 같은 기독교 도시인 이곳을 약탈한 뒤로 회복하지 못했다.

오스만은 반대 방향이었다. 1300년 무렵 아나톨리아의 작은 세력으로 시작해 1354년 유럽으로 건너갔고 1389년 코소보에서 세르비아를 꺾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는 이미 오스만 영토 한가운데 남은 섬이었다.

【왜 그렇게 됐나】

이 도시는 1,100년 동안 스무 번 넘게 포위됐지만 함락된 적이 거의 없었다. 테오도시우스 성벽 때문이다. 삼중 구조에 해자까지 있었다. 골든혼 입구에는 쇠사슬을 걸어 배가 못 들어오게 했다.

메흐메트 2세는 스물한 살이었다. 그는 성벽을 부술 수 있는 새 물건에 걸었다. 헝가리 기술자 우르반이 만든 대포는 포신 길이 8미터에 500킬로그램 돌을 쏘았다. 우르반은 원래 황제에게 먼저 갔다가 봉급을 줄 돈이 없어 거절당했다.

【어떻게 흘렀나】

1453년 4월 6일 포위가 시작됐다. 오스만 8만에 수비군 7천이었다. 대포는 하루 몇 발밖에 못 쐈고 성벽은 밤사이 메워졌다.

메흐메트는 배를 육지로 옮겼다. 기름칠한 통나무 위로 함선 70여 척을 언덕 너머로 끌어 골든혼 안쪽에 띄웠다. 쇠사슬이 무의미해졌다.

5월 29일 새벽 총공격이 있었다. 케르카포르타라는 작은 문이 잠기지 않은 채 열려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황제 콘스탄티노스 11세는 황제 옷을 벗고 싸우다 죽었다. 시신은 찾지 못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이 끝났다. 기원전 753년 로물루스의 도시에서 시작해 1453년 콘스탄티노스에서 끝난다고 셀 때 2,206년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모스크가 됐다. 도시 이름은 이스탄불이 됐고 오스만의 수도로 다시 커졌다.

【남은 것】

그리스 학자들이 필사본을 들고 이탈리아로 갔다. 이들이 옮긴 그리스어 원전이 르네상스의 재료가 됐다. 동시에 오스만이 동방 무역로를 쥐면서 유럽은 바닷길을 찾기 시작했다. 39년 뒤 콜럼버스가 서쪽으로 떠난다.

중세의 끝을 1453년으로 잡는 교과서가 많은 이유가 여기 있다. 다만 이 구분은 후대가 그은 선이고 당시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는 줄 몰랐다.

지도에서 보기: 14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장미전쟁 오닌의 난 그라나다 전쟁 후스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