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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알렉산드로스가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고 죽자 부하 장군들이 제국을 나눠 가졌다. 셀레우코스·프톨레마이오스·안티고노스 왕조가 서로 싸우는 동안 서쪽에서 로마가 올라왔다.
청동기를 바탕으로 선 한반도 최초의 국가. 연·한과 부딪히며 요동에서 서북부에 걸친 세력을 유지했다.
왜시칠리아의 용병 집단이 로마와 카르타고 양쪽에 도움을 청하면서, 이탈리아를 막 통일한 로마가 처음으로 바다 건너에 발을 들였다.
결과로마가 함대를 새로 만들어 이겼다. 시칠리아가 첫 해외 속주가 됐다.
왜아소카가 동쪽 해안의 칼링가를 정복했다. 마우리아가 아직 삼키지 못한 마지막 큰 땅이었다.
결과10만이 죽고 15만이 끌려갔다. 아소카가 직접 새긴 비문에 깊이 슬퍼한다고 적혀 있다. 이긴 자가 자기 승리를 후회한 기록은 드물다. 그는 이 뒤로 불교로 돌아섰다.
칼링가 정복에서 10만이 죽는 것을 보고 무력을 버렸다. 이후 불교를 후원하고 바위와 돌기둥에 자기 반성을 새겼다.
코페르니쿠스보다 먼저 지동설을 말하다
사람의 본성은 악하니 예와 학문으로 다듬어야 한다. 그의 제자 한비와 이사가 법가로 갔다.
그림자만으로 지구 둘레를 재다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전쟁 · BC 261 · 이기고 나서 무기를 버린 왕
아소카가 동쪽 해안의 칼링가를 정복했다. 마우리아가 아직 삼키지 못한 마지막 큰 땅이었다. 10만이 죽고 15만이 끌려갔다. 아소카가 직접 새긴 비문에 깊이 슬퍼한다고 적혀 있다. 이긴 자가 자기 승리를 후회한 기록은 드물다. 그는 이 뒤로 불교로 돌아섰다.
【그때 그 자리】 BC 261년 무렵이다. 마우리아 제국의 아소카 때다.
할아버지 찬드라굽타와 아버지 빈두사라가 인도 대부분을 정복했다.
남은 곳이 칼링가였다. 지금의 오디샤 일대로, 벵골만에 면한 지역이다.
동남아시아로 가는 해상 교역을 쥐고 있었다. 부유했고 독립을 유지하고 있었다.
【왜 그렇게 됐나】 아소카는 형제들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는 전승이 있다. 「찬다 아소카 — 잔혹한 아소카」라 불렸다.
칼링가 정복은 제국을 완성하는 마지막 조각이었다.
【어떻게 흘렀나】 이겼다. 그리고 그 뒤가 특이하다.
그가 직접 새긴 비문이 남아 있다. 「제13 바위 칙령」이다.
「칼링가를 정복했을 때 15만 명이 끌려갔고, 10만 명이 죽었으며, 그보다 여러 배가 죽었다.」
이어지는 문장이 더 특이하다.
「신들의 사랑을 받는 자(아소카)는 칼링가를 정복한 뒤 깊은 후회를 느꼈다. (…) 정복되지 않은 땅을 정복할 때 사람들이 죽고 다치고 끌려가는 것을, 그는 매우 고통스럽고 무겁게 여긴다.」
정복자가 자기 승리를 후회한다고 돌에 새긴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유례가 거의 없다.
그리고 방향을 바꿨다. 「이제 유일한 참된 정복은 다르마에 의한 정복이다.」
【그래서】 불교를 받아들였다. 다만 강요하지는 않았다.
칙령을 바위와 돌기둥에 새겨 제국 곳곳에 세웠다. 지금까지 30곳 넘게 발견됐다.
내용이 종교 교리가 아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살생을 줄이고, 다른 종파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자기 종파를 높이려 남의 종파를 헐뜯는 자는 오히려 자기 종파를 해친다.」
실천도 했다. 왕실 주방의 도살을 줄이고, 사람과 짐승을 위한 의료 시설을 두고, 길가에 나무와 우물을 두었다.
사절을 밖으로 보냈다. 스리랑카·중앙아시아, 그리고 헬레니즘 왕국들까지다. 시리아와 이집트와 마케도니아 왕들의 이름이 칙령에 나온다.
【남은 것】 이 전환이 진심이었는지 통치술이었는지는 논쟁이 있다. 다만 군대를 해산하지는 않았고 사형도 폐지하지 않았다.
제국은 그가 죽고 50년 만에 무너졌다.
칙령은 남았다. 오래 읽히지 못하다가 1837년 제임스 프린셉이 브라흐미 문자를 해독하며 되살아났다.
인도의 국장이 사르나트의 사자 기둥이다. 국기 한가운데의 바퀴가 아소카의 법륜이다.
이긴 전쟁을 후회한 기록으로 이 비문이 지금도 인용된다.
지도에서 보기: BC 3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제1차 포에니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