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이야의 이베리아 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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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의 정치

이슬람의 등장

아라비아에서 일어난 새 종교가 100년 만에 이베리아부터 인더스까지를 하나의 정치권으로 묶었다. 사산조는 사라지고 동로마는 영토의 절반을 잃었다.

한반도

남북국시대

신라가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통일했고 북쪽에는 발해가 섰다. 신라 말 호족이 일어나며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전쟁 1건

우마이야의 이베리아 정복711 – 718
우마이야 vs 서고트 왕국

서고트 왕위 다툼에서 밀린 쪽이 북아프리카에 원병을 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과달레테 711톨레도 함락 712

결과7년 만에 이베리아 대부분이 이슬람권에 들어갔다. 북쪽 산악의 작은 저항 거점에서 781년에 걸친 레콘키스타가 시작된다.

7년 · 유럽에 이슬람 세계가 서다

멸망

도시

퍼지는 중

이 막

세력

그때 그 사람 3명

대조영정치698 · 발해를 세운 사람
? – 719

당의 강제 이주지에서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빠져나갔다. 천문령에서 추격군을 꺾고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 천문령에서 당군 격파
  • 698년 진국(발해) 건국
  • 고구려 유민과 말갈을 아울렀다
측천무후정치690 · 중국 유일의 여황제
AD 624 – AD 705

후궁에서 시작해 황후가 되고 끝내 스스로 황제가 됐다. 나라 이름까지 주(周)로 바꿨다.

  • 과거를 확대해 귀족 대신 실무 관료를 씀
  • 밀고 제도로 반대파를 숙청
  • 무자비 — 자기 비석을 글자 없이 세우게 함
카를 마르텔장군732 · 망치라 불린 사람
AD 688 – AD 741

궁재로서 왕보다 실권을 쥐었다. 투르에서 우마이야 기병을 보병 방진으로 막아냈다.

  • 투르-푸아티에 전투 732
  • 교회 재산으로 기병을 육성
  • 카롤루스 대제의 할아버지

그 무렵의 사건

700
스리위자야의 번성
땅이 아니라 바닷길을 지배해 부를 쌓은 나라였다.
수마트라 팔렘방을 중심으로 말라카 해협을 장악해 인도와 중국을 잇는 배들에게 통행세를 물렸다. 7세기 중국 승려 의정은 이곳에 승려 1천 명이 공부하는 불교 학문 중심지가 있다고 기록했다. 농사보다 무역에 기댄 「바다의 나라」였던 셈이다. 1025년 인도 남부의 촐라 왕조가 함대를 보내 왕도를 약탈했다 — 남아시아 해군력이 동남아시아까지 미친 드문 사례다. 이후 항구에 토사가 쌓이고 다른 항구들이 크며 서서히 저물었다.
698
발해 건국
고구려 유민과 말갈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고구려 유민이 만주에 세운 나라. 스스로 고구려를 잇는다고 밝혔다.
682
신문왕의 왕권 강화
삼국통일 직후 즉위한 신라 신문왕은 반란을 진압해 진골 귀족 세력을 억누르고, 국학을 세워 왕권 중심의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신문왕은 즉위 직후 장인이자 유력 진골 귀족이던 김흠돌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것을 계기로, 이에 연루된 귀족 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했다. 귀족에게 지급하던 녹읍을 폐지하고 관료전을 지급해 귀족의 경제적 기반을 약화시켰으며, 유교 경전을 가르치는 국립 교육기관 국학을 세워 왕에게 충성하는 관료를 길러냈다. 지방을 9주 5소경 체제로 정비해 넓어진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릴 기반도 마련했다.
676
신라의 삼국통일
당을 몰아내고 대동강 이남을 확보했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한반도가 처음으로 하나의 정치권이 됐다. 다만 고구려 땅 대부분을 잃었다.
671
스리위자야
말라카 해협을 쥔 바다의 나라.
수마트라의 팔렘방을 중심으로 인도와 중국을 잇는 길목을 600년간 쥐었다. 당의 승려 의정이 이곳에 머물며 산스크리트를 배웠다. 성을 남기지 않아 오래 잊혔다가 20세기에 비문으로 확인됐다.
661
우마이야 칼리파국 성립
661년, 무아위야가 다마스쿠스를 수도로 삼아 세습 칼리파국을 열었다. 이슬람 최초의 정통 칼리파 시대가 끝나고 왕조 체제로 바뀌었다.
4대 칼리파 알리가 암살된 뒤, 시리아 총독이던 무아위야가 권력을 장악했다.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를 합의로 뽑던 관행이 세습으로 바뀐 이 전환은 훗날 순니-시아 분열의 먼 배경이 됐다.

교역로 3개

실크로드BC 130 – 1500

장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까지. 톈산과 쿤룬 사이 오아시스를 징검다리 삼아 사막을 건넜다. 산맥이 길을 정했다.

오간 것비단·도자기·향신료가 서쪽으로, 유리·금은세공·말이 동쪽으로. 종이와 불교와 역병도 함께 갔다.
거점장안 · 둔황 · 카슈가르 · 사마르칸트 · 메르브 · 바그다드 · 콘스탄티노폴리스
초원길BC 500 – 1400

유목민의 길. 스키타이·흉노·돌궐·몽골이 이 초원을 따라 동서로 움직였다.

오간 것말과 모피와 노예. 물건보다 사람과 기술이 더 빨리 오갔다.
거점흑해 북안 · 카스피 북안 · 알타이 · 몽골고원 · 대도
해상 실크로드100 – 1500

광저우에서 말라카를 거쳐 페르시아만까지. 도자기와 향신료가 이 길로 움직였다.

오간 것도자기와 차, 향신료와 향목. 배 한 척이 낙타 수천 마리 몫을 실었다.
거점광저우 · 참파 · 말라카 · 스리랑카 · 캘리컷 · 호르무즈 · 바스라

우마이야의 이베리아 정복

전쟁 · 711 · 7년 만에 얻고 780년 걸려 잃다

서고트 왕위 다툼에서 밀린 쪽이 북아프리카에 원병을 청한 것이 시작이었다. 7년 만에 이베리아 대부분이 이슬람권에 들어갔다. 북쪽 산악의 작은 저항 거점에서 781년에 걸친 레콘키스타가 시작된다.

【그때 그 자리】 711년이다. 이베리아반도를 서고트 왕국이 다스렸다.

300년 된 나라인데 안이 갈려 있었다. 왕위가 세습이 아니라 선출이라 다툼이 잦았다.

왕 로데리크가 즉위한 것을 두고 전왕의 아들들이 반발했다.

그리고 유대인이 박해받고 있었다. 강제 개종령이 여러 번 내려졌다.

【왜 그렇게 됐나】 북아프리카를 정복한 우마이야가 지브롤터를 건넜다.

타리크 이븐 지야드가 이끌었다. 베르베르계 해방 노예 출신이다.

「지브롤터」가 「자발 타리크 — 타리크의 산」에서 왔다.

배를 태웠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뒤에는 바다, 앞에는 적」이라는 연설과 함께 전하는데, 뒤에 만들어진 것으로 본다.

【어떻게 흘렀나】 711년 과달레테에서 로데리크가 전사했다.

그 뒤가 빨랐다. 3년 만에 반도 대부분이 넘어갔다.

저항이 적었던 이유가 있다.

도시들과 협정을 맺었다. 세금(지즈야)을 내면 종교와 재산과 법을 그대로 두었다.

테오데미르라는 서고트 귀족이 맺은 협정문이 남아 있다. 그가 일곱 도시를 다스리는 것을 인정하고, 교회를 부수지 않으며, 개종을 강요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서고트 왕실의 세금이 오히려 무거웠다. 농민에게는 지배자가 바뀌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유대인들이 협력했다는 기록이 있다. 박해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피레네를 넘어 갈리아로 들어갔다.

732년 투르-푸아티에에서 카롤루스 마르텔에게 막혔다.

오래 「유럽을 구한 전투」로 불렸다. 지금은 그 평가가 과하다는 견해가 많다 — 대규모 원정이 아니라 약탈대였다는 것이다.

다만 그 뒤 피레네 이북으로 다시 오지 않았다.

756년 학살에서 살아남은 우마이야 왕족 압둘 라흐만 1세가 코르도바에 나라를 세웠다.

【남은 것】 780년이 걸렸다. 1492년 그라나다가 함락되며 끝난다.

그 사이 코르도바가 유럽에서 가장 큰 도시가 됐다. 도서관의 장서가 40만 권이었다.

그리스 철학이 아랍어로 보존되고 다시 라틴어로 넘어갔다. 유럽이 아리스토텔레스를 되찾은 통로가 여기다.

「레콩키스타(재정복)」라는 이름 자체가 뒤에 만들어진 것이다. 780년 동안 기독교 왕국과 이슬람 세력이 서로 동맹을 맺고 싸운 일도 흔했다.

스페인어에 아랍어에서 온 낱말이 4,000개 가까이 남아 있다. 「알」로 시작하는 말들이 대개 그렇다.

지도에서 보기: 700년의 세계 · 같은 시대: 투르-푸아티에 전투 카르발라 전투 탈라스 전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