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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연표
한 시기 안으로 들어갑니다. 게이지가 그 기간만 담고, 그 시대의 인물과 전투가 모두 나옵니다.
유럽 대부분이 절대군주의 궁정 정치로 움직였다. 왕위 계승을 둘러싼 전쟁이 반복됐고, 그 아래 살롱과 백과전서에서 왕권을 의심하는 사상이 자랐다.
세도정치와 삼정 문란이 겹쳤다. 서양 선박이 연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지만 문을 닫아걸었다.
왜여성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기습 점령했다.
결과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빼앗으며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역사상 가장 많은 논문을 쓴 수학자
여자라는 이유로 유럽이 상속을 부정하자 헝가리 귀족 앞에 아기를 안고 나서 군대를 얻었다. 40년 동안 제국을 개혁했다.
슐레지엔을 빼앗고 7년전쟁에서 유럽 전체를 상대로 버텼다. 플루트를 불고 볼테르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국가의 제1 종복」을 자처했다.
라이프치히 교회의 음악 감독으로 매주 칸타타를 썼다. 살아서는 오르간 연주자로 유명했고 죽은 뒤 백 년 만에 「음악의 아버지」가 됐다.
생물 분류 체계를 세우다
준가르를 멸하고 신장을 얻어 청의 영토를 최대로 넓혔다. 「사고전서」를 편찬했으나 만년의 부패와 매카트니 사절 거절이 몰락을 예고했다.
「당신의 말에 반대하지만 말할 권리는 목숨 걸고 지키겠다」— 그의 이름과 함께 전해지는 이 정신이 표현의 자유의 표어가 됐다.
독일 출신 공주로 시집와 쿠데타로 남편을 폐위시키고 스스로 제위에 올랐다. 34년 재위 동안 영토를 크게 넓히고 계몽사상을 받아들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나 어디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다. 주권은 인민에게 있다는 그의 말이 프랑스 혁명의 구호가 됐다.
바스쿠 다 가마 이후 400년. 지중해를 거치지 않고 아시아에 닿는 길이 열리며 베네치아와 오스만이 밀려났다.
유럽의 공산품 → 아프리카의 노예 → 아메리카의 설탕·면화 → 유럽. 세 대륙이 하나의 경제로 묶였다.
전쟁 · 1740 ·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말로 시작된 전쟁
여성인 마리아 테레지아의 계승을 인정하지 않겠다며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기습 점령했다. 프로이센이 슐레지엔을 빼앗으며 강대국으로 떠올랐다.
【그때 그 자리】 1740년 신성로마 황제 카를 6세가 죽었다. 아들이 없었다.
생전에 오래 준비했다. 「국사조칙」을 만들어 딸 마리아 테레지아가 합스부르크 영토를 물려받도록 정했다.
유럽 각국에게 그것을 인정받으려 20년을 매달렸다. 영토와 특권을 내주며 서명을 받았다.
그가 죽자 서명이 종잇조각이 됐다.
【왜 그렇게 됐나】 프로이센의 프리드리히 2세가 즉위한 지 다섯 달째였다.
스물여덟이었고, 아버지가 남긴 훈련된 군대와 국고가 있었다.
선전포고도 없이 슐레지엔으로 들어갔다.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부유한 지방이다 — 직물 산업과 광산이 있었다.
명분은 오래된 계승권 주장이었다. 본인도 뒤에 회고록에 이렇게 적었다.
「야심과 이익과 명예욕이 나를 움직였다.」
【어떻게 흘렀나】 프랑스·바이에른·에스파냐가 따라 들어왔다. 합스부르크를 나눠 갖자는 것이다.
빈이 위태로웠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헝가리로 갔다.
헝가리 귀족들 앞에 갓 태어난 아들을 안고 서서 라틴어로 연설했다.
귀족들이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고 전한다. 「우리의 목숨과 피를 여왕 폐하께.」
헝가리 병력이 왔다. 그리고 영국이 오스트리아를 지원했다 — 프랑스가 커지는 것을 막으려는 것이다.
전쟁이 유럽 전역과 식민지로 번졌다. 북아메리카에서도 인도에서도 영국과 프랑스가 싸웠다.
8년을 끌었다.
【그래서】 1748년 엑스라샤펠 조약이다.
마리아 테레지아가 왕위를 지켰다. 다만 슐레지엔은 프로이센이 가져갔다.
그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행정과 세제를 뜯어고쳤다. 귀족과 성직자에게도 세금을 매기고 상비군을 두 배로 늘렸다.
그리고 외교를 뒤집었다. 200년 넘게 원수였던 프랑스와 손을 잡았다 — 「외교 혁명」이라 부른다.
1756년 7년 전쟁으로 슐레지엔을 되찾으려 했다. 실패했다.
【남은 것】 프로이센이 강대국이 됐다. 슐레지엔의 자원이 그 바탕이 된다.
그 프로이센이 100여 년 뒤 독일을 통일한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40년을 다스렸다. 아이를 열여섯 낳았고, 그 가운데 막내딸이 마리 앙투아네트다.
의무 교육을 도입하고 고문을 폐지했다.
여자는 통치할 수 없다는 전제로 시작된 전쟁이, 합스부르크에서 가장 유능한 통치자를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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